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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 -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
말콤 글래드웰 지음, 선대인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권투 시합에서 왠지 계속 질 것 같아 보이는 인간 샌드백,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쳇바퀴 돌 듯 시장을 뺏기는 중소기업들, 공권력에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폭력조직, 미국과 붙어서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도발을 감행하는 중동 국가들.
이런 존재들을 통칭하는 단어가 바로 언더독(Underdog)이다. 투견대회에서 항상 패배하는 개들을 지칭했던 이 말은 거대한 존재 앞에서 한 없이 작아 보이는 존재들을 일컫는 보통명사가 됐다.
과연 언더독들은 거대한 권력과 맞붙어 얼마의 비율로 승리를 거뒀을까? 말콤 글래드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놀랍게도 10번 중 3~4번은 언더독들이 이기는 것으로 관찰됐다. 1등은 강자고 꼴찌는 약자다. 둘이 경쟁하면 1등이 이긴다. 그러나 세상엔 약자가 반드시 약자가 아니며 강자가 항상 강자가 아니다. 강자가 우리가 생각하듯이 항상 힘 센 자가 아니다. 강한 힘은 오히려 그 원천이 유약함일 수도 있다.
3000년 전 이스라엘의 양치기 소년 다윗은 돌팔매질 하나로 블레셋의 210㎝ 거인전사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흔히 약자와 강자의 무모한 또는 의미 있는 싸움을 일컫는 대명사. 사실 약자와 강자가 붙을 땐 강자가 이기는 것이 공식이다. 하지만 반전은 있다. 허를 찌르는 약자의 전술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저자가 비중을 둔 건 ‘강자의 한계’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꼼꼼히 들여다보니 골리앗의 육중한 몸을 감싼 45㎏짜리 갑옷이 걸리더라는 거다. 차라리 질곡이던 그 갑옷 탓에 다윗의 민첩성은 무기가 될 수 있었다는 논지다.
『다윗과 골리앗』은 약자가 어떻게 강자를 이길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권력과 자본에서 배제되거나 장애를 가진 이들이 그 모든 것을 갖춘 이들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를 파고 든다. 또한 힘의 한계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영국군은 북아일랜드 구교도와 신교도 사이의 내전을 중재한다는 명분으로 구교도를 무력으로 억압했다. 그들은 시민들을 집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고 통행을 금지했다. 잠옷 차림으로 산책하던 노인, 십대 청소년 가릴 것 없이 총으로 사살했다. 무력은 북아일랜드 구교도들의 분노를 키웠다. 북아일랜드에 주둔한 총사령관 이언 프리랜드는 점점 더 강경하게 대처했다. 몇 달 만에 끝날 줄 알았던 상황은 30년 내전으로 번졌다.
저자는 힘과 성취의 관계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U자형 곡선(∩)으로 설명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힘과 성취가 정비례 관계를 취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학생수가 적은 학급이 높은 학습효율을 보이는 것이 많지만 일정한 지점을 지나 학생 수가 너무 적어지면 학생들끼리 배울 것이 적어 오히려 학습효과가 떨어진다. 또 돈이 많은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시켜줄 수 있는 것은 맞지만, 너무 돈이 많은 부모의 자녀는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성취율이 떨어질 수 있다. 실제 돈 많은 부모들이 하는 걱정이다. 저자는 강경한 체벌이 사회의 법과 질서를 바로 잡아준다는 통념에도 뒤집어진 U자형 곡선을 적용한다. 특정지점 이후엔 효과가 없거나,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무력으로 인한 통치보다 약자들을 포용하고 지원하는 정책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다윗’을 굳이 약자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 부당한 대우, 열악한 조건, 강고한 편견 등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의 긍정성에 따르면 이는 ‘바람직한 역경’일 뿐이다. 세상이 발전하는 건 상처받은 다윗에 의해서지 잘난 골리앗 덕분이 결코 아니라고 했다. 지금 당신 눈앞에 포진한 강적들. 그들의 치명적 약점은 ‘강하다’일 수 있단 얘기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처럼 시련과 역경이 꼭 우리를 성장시키기만 할까. 때로는 약화시키고 파괴하기까지 하는 것 아닐까.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점점 주제와의 연관성이 흐려지면서 작가의 주장을 애써 강요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속담이 있다. 키가 작은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내용이다. 골리앗과의 싸움에 앞서 사울 왕이 갑옷을 입혀줬을 때 다윗은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다며 벗어 던지고, 자신의 주특기인 돌팔매에 쓸 강가의 돌을 골라 들었던 사실을 기억하자. 다윗처럼 삶에서 약점을 강점화 하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평범한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바꿔놓은 사람들이 있다.
강자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약자 다윗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커버할 나름대로의 비책을 준비하지 않으면 결코 승산이 없다. 강자 골리앗의 힘이 영원하지 않듯이 약자 다윗의 지혜도 변화하지 않으면 영원히 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