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지 길이 있다. 문을 열고 나서면 여러 길들은 손을 내민 채 떠나고 만나는 사람들을 기다린다.
길은 시각의 감정을 먼저 열어준다.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여 순간 어떤 본능적인 갈망들이 교차하다가 이내 선택한 희망을 믿고, 따라나서게 하는 힘이 있는듯하다.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채플린의 엔딩에서 보여주는 길의 풍경이 그러했다. 가난과 희망의 조화를 안은 채 연인과 함께 적막한 길을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게 남았다면... 펠리니의 영화 '길'에선 안소니 퀸과 줄리에타 마시니가 고집스럽고 순수한 삶의 전향을 떠올리게 하는 그들의 길을 짙은 향수로 전해주었다.
나는 어디에 서있는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서 어색하지 않은 자기 의자에 앉은 것 같이 흔쾌히 길을 나서게 될까. 수없이 많은 질문과 대답들은 잊혔다가도 한 번씩 되돌아오는 부메랑이 되어 묻는 것 같다.
누구든지 각자의 길이 있다. 가보고 싶은, 가야만하는, 갈 수 없는 길까지...
망설이다가 각자의 주사위를 던지고 떠나지 않는가. 그러면 길은 거대한 수평선의 고요함이 되어 현대인의 고립된 방을 만들어 주다가도, 뒤흔드는 파도를 만들어 어디론가 다시 떠나가도록 돛단배 한 척을 내던져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길위에 서면 덩그러니 비어 있는 끝없이 먼 대지가 다가온다. 그것은 텅비어 있는 도로가에서 향기가 피어나는 것 같은 어떤 세계로 인도한다. 희망의 안단테가 들려오는 곳으로 말이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기형도의 시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가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