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인데르트 호베마 「미델하르니스의 길」 1689년
길을 그리기 위해 나무를 그린 것인지
나무를 그리기 위해 길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또는 길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를 그리기 위해
길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길과 나무는 서로에게 벽과 바닥이 되어왔네
길에 던져진 초록 그림자,
길은 잎사귀처럼 촘촘한 무늬를 갖게 되고
나무는 제 짐을 내려놓은 듯 무심하게 서 있네
그 평화를 누가 베어낼 수 있을까
그러나 시간의 도끼는
때로 나무를 길 위에 쓰러뜨리나니
파르르 떨리던 잎사귀와 그림자의 비명을
여기 다 적을 수는 없겠네
그가 그린 어떤 길은 벌목의 상처를 지니고 있어
내 발길을 오래 머물게 하네
굽이치며 사라지는 길을 끝까지 따라가게 하네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마음의 지평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
누군가 까마득히 멀어지는 풍경,
그 쓸쓸한 소실점을 끝까지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나는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 하네
- 나희덕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
서로 마주 보고 나란히 선 가로수가 만든 선을 연장하면 한 점에서 만나게 된다. 이 점이 소실점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차 레일을 멀리서 보면 평행선이 만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처럼.
인생은 길과 같다. 길이 마치 소실점 같은 끝이 있어서 어느 지점에서 목적지를 찾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길을 떠나는 누구나가 길 끝에서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만나게 되기를 기원하는 것처럼.
인생의 길에서 중요한 것은 소실점에 급히 도달하고 싶은 열망이 아니다. 길은 목적지에 이르는 통로가 아니다. 소실점을 끝까지 바라보면서 한 걸음씩 자신을 찾아 걷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