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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집 이층 ㅣ 창비시선 370
신경림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평점 :
동네 서점에 시집을 사러 갔더니 매대에 신경림 시인의 신작 시집이 없었다. 지방도시라서 아직 시집이 오지 않았나 해서 서점 주인장에게 여쭈어봤다. 보내온 시집이 다 팔려 재고가 없다고 한다. 질박한 서정과 꾸밈없는 언어로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다독이는 시를 써온 그를 지역의 독자들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다른 서점으로 가서 시집을 샀다.
올해 여든,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 원로 시인의 문장은 여전히 따뜻했다. 언 손을 녹일 수 있는 것이 작은 핫팩이라면, 시인의 시집은 겨울바람 같은 냉소에 얼얼해진 심장을 녹이는 따뜻한 문장들로 채운 핫팩이다. 하룻저녁 내내 아껴가며 읽은 시집에는 사실 새로울 것도, 유별난 것도 없었다. 현란한 비유도 없고, 어려운 축약도 없다.
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
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
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
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한 후보 앞에서 갈채했다
그래서 나는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다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32쪽) -
이 시는 시인이 1993년 펴낸 시집 『쓰러진 자의 꿈』에 실으려다 마음에 차지 않아 빼 놓았다가 다시 써 낸 것이다. 그래도 시인은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는 시인 신경림이 아직 살아 있음을 독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보여 준다. 그의 삶은 중국 시성(詩聖) 두보를 닮았다. 인간의 고통를 늘 가슴에 품어 연민의 시어로 위로하고, 평탄치 않은 삶의 불우에 매몰되지 않아 '우리시대의 두보'라 불린다.
나는 깨지 않으리 이 꿈에서,
비록 이 꿈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일지라도.
- 「몽유도원」 마지막 부분 (39쪽) -
시인은 이미 인생의 먼 길을 와서 ‘사불휴(死不休, 시로 독자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죽어서도 쉬지 않겠다는 두보의 말)’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름다운 시는 오만과 독선을 버린 시”라는 팔순 시인의 시집을 읽어 보면 오히려 그의 눈이 맑아지고 귀는 순해졌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이웃 가게들이 다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난 뒤까지도 그애는 책을 읽거나 수를 놓으면서 점방에 앉아 있었다. 내가 멀리서 바라보며 서 있는 학교 마당가에는 하얀 찔레꽃이 피어 있었다. 찔레꽃 향기는 그애한테서 바람을 타고 길을 건넜다.
꽃이 지고 찔레가 여물고 빨간 열매가 맺히기 전에 전쟁이 나고 그애네 가게는 문이 닫혔다. 그애가 간 곳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오랫동안 그애를 찾아 헤매었나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애가 보이기 시작했다. 강나루 분교에서. 아이들 앞에서 날렵하게 몸을 날리는 그애가 보였다. 산골읍 우체국에서, 두꺼운 봉투에 우표를 붙이는 그애가 보였다. 활석 광산 뙤약볕 아래서, 힘겹게 돌을 깨는 그애가 보였다. 서울의 뒷골목에서, 항구의 술집에서, 읍내의 건어물점에서, 그애를 거듭 보면서 세월은 가고, 나는 늙었다. 엄마가 되어 있는, 할머니가 되어 있는,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있는 그애를 보면서 세월은 가고, 나는 늙었다.
하얀 찔레꽃은 피고,
또 지고.
- 「찔레꽃은 피고」 (22~23쪽) -
한국인의 정서에 각인된 찔레꽃의 이미지는 순박, 소박, 고향, 슬픔이다. 때로는 그 옛날 어린 시절 가난한 고향의 산야에서 만났던 순한 첫사랑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찔레꽃을 소재로 만들어진 노래도 많다. 향기가 진해서 오히려 서러운 찔레꽃! 그래서 장사익은 목이 터지도록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라고 노래를 불렀던 것일까?
장사익의 찔레꽃은 노래를 듣고 있는 당신이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야말로 순박한 찔레꽃이라고 자꾸 최면을 걸어쌓니 거기에 안 넘어가고 배기겠는가. 신경림의 찔레꽃은 순박했던 첫사랑을 가슴 속에 품은 당신이다.
찔레꽃을 담은 장사익은 찔레꽃 가시로 우리들의 가슴을 찔렀다면, 시인은 찔레꽃 향기로 세월의 모진 풍상에 찌든 우리들의 가슴을 살짝 건드린다. 몇 달 뒤에 피게 될, 세월에 잊고 있었던 그 아름다운 찔레꽃 향기의 감각을 살린다.
찔레꽃이 슬픔의 이미지로 한국인들에게 각인된 것은 전쟁이 갈라놓은 생이별, 그리고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저 홀로 고고하게 하얗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찔레꽃. 세월의 바람에 첫사랑의 기억과 함께 점점 희미해져만 가는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프다. 한국인의 감성 유전자에 그렇게 새겨놓은 것일 게다.
그의 가난과 추위가 어디 그만의 것이랴.
그는 좁은 어깨와 야윈 가슴으로 나의 고통까지 떠안고
역 대합실에 신문지를 덮고 누워 있다.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간혹 스치는 것은 모멸과 미혹의 눈길뿐
마침내 그는 대합실에서도 쫓겨나 거리를 방황하게 한다.
찬 바람이 불고 눈밭이 치는 날 그의 영혼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걸어올라가 못 박히는 대신
그의 육신은 멀리 내쫓겨 광야에서 눈사람이 되겠지만.
그 언 상처에 손을 넣어보지도 않고도
사람들은 그가 부활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다시 대합실에 신문지를 덮고 그들을 대신해서 누워 있으리라는 걸.
그들의 아픔, 그들의 슬픔을 모두 끌어안고서.
- 「나의 예수」 (85쪽) -
석가모니도, 예수도 길에서 태어나고 길에서 생을 마감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보여 주었던 그 삶은 역시 그들이 가려는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이다. 시인은 서울에 예수가 있다고 믿는다. 한 달 전에 이성의 지식인이라는 사람은 집 없는 사람들을 '좀비'라고 돌직구 같은 말을 했다면, 감성의 지식인은 이 세상의 고통을 떠안고 아파하는 '예수'라고 표현했다.
비탄과 절망의 현실을 뻔히 눈뜨고 보면서도 도리어 선을 긋고 침묵하고 고개 돌리고 저 멀리 비켜간다면, 자기 말과 행위의 진정성과 인간애를 진실하게 살피며 새롭게 살기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과연 이 시대에 소통을 갈구하는 것은 잘한 일일까? 상처 입고 고통 받는 모든 존재들을 외면하는 것은 소통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음으로 통하는 소통이 아니라 냉소적인 외면일 뿐이다. ‘나의 예수’는 이 땅의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해 연민의 손길마저 내밀지 못하는 이 시대, 이 땅에서 ‘가난과 추위’와 동거하는 그들의 아픔, 슬픔을 끌어안을 수 있는지 독자들에게 자문하게 만든다.
시인은 언어를 잃어도 맨 몸뚱어리로 세상에 부딪히는 사람들이다. ‘늙은 시인’이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우리 나이로 팔순을 맞이한 시인의 나이를 감안하면 새로운 시집 출간을 향한 축복보다 “이번이 마지막 작품이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앞서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시인이 말미에 남긴 “얼마 남지 않은 내일에 대한 꿈도 꾸고 내가 사라지고 없을 세상에 대한 꿈도 꾼다”는 고백은 그래서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추억과 따뜻함 그리고 인간애를 동반한 애틋함이다.
짧은 인생 동안 정들었던 수많은 거리와 인연을 다 음미하고 또 가슴에다 남겨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말 소중한 것은 적어도 가슴 한 켠에 남아서 가끔 슬퍼지거나 외로워질 때 순간순간 떠오르게 된다. 흑백사진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루하지는 않고, 조금은 코끝이 찡해지는 그런 순간들이다. 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 시절이기에 시인은 시로 그 시절 그 사람들을 다시 불러내 살려낸다. 망각의 강 속에서 시인은 추억의 시어(詩語)를 건진다. 추억의 시어는 어느새 냉소로 트다 못해 갈라진 우리들의 마음에 바르는 ‘희망’이라는 연고가 된다. 이 ‘희망’의 연고가 세상과 세월의 풍파 앞에 ‘쓰러진 자들’의 아픔, 슬픔 모두 끌어안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