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의 저자인 박웅현은 소설가 김훈을 이렇게 표현한다. ‘미친 사람’ 김훈. 박웅현은 김훈 덕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김훈의 문장마다 감탄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줄 쳐놓은 김훈의 문장을 『책은 도끼다』에서도 인용한다. 박웅현이 감탄했던 김훈의 문장 하나 소개해본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김훈 『자전거 여행』중에서)

 

무엇을 보든 천천히 본다는 김훈다운 관찰의 힘과 탐사정신이 빛나는 문장이다. 박웅현은 "줄을 치고 또 쳐도 마음을 흔드는 새로운 문장들이 넘쳐나는 게 김훈의 책"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문장마다 빛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발견되기 때문에 김훈의 책은 될수록 천천히 읽고 음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미친 사람’ 김훈의 책을 천천히 읽고 음미하기가 쉽지 않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김훈 특유의 문장의 맛을 단번에 느끼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일반 서점에 김훈의 책 몇 권은 구입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자전거 여행』이 그중 하나다. 김훈은 자전거 마니아로 잘 알려졌다. 자전거와 함께한 여정을 기록한 글 일부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쉽게 읽을 수 있다. 『자전거 여행』은 2002년에 처음으로 출간되어서 2년 뒤에 2권이 나오기도 했다. 출간 당시, 『칼의 노래』와 더불어 많은 독자로부터 큰 인기를 받은 책이었으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두 권 다 절판되었다. 김훈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유명한 책이 서점에서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책은 도끼다』에 소개된 김훈의 문장에 푹 빠져서 김훈의 책을 사고 싶은 마음에 당장 서점에 간 독자들은 낭패를 봤을 것이다. 꽤 많은 책을 보유하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가봤자 소용없다. 재고가 없으니까.

 

 

 

 

 

 

 

 

 

 

 

 

 

 

 

 

『자전거 여행』『칼의 노래』 등 김훈이 쓴 다수의 책은 ‘생각의 나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지만, 2011년에 부도가 나는 바람에 책이 하나둘씩 품절되고 절판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히도 『칼의 노래』는 ‘문학동네’가 재출간해서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읽히고 있고, 최근에 문학동네 창립 20주년을 맞아 출간된 한국문학 전집 시리즈에 포함되었다.

 

 

 

 

 

김훈의 책 중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던 책이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생각의 나무’판 『칼의 노래』였다. 그러다가 어제 정말 운 좋게도 알라딘 중고샵에서 『자전거 여행』1권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어제 저녁에 친분이 있는 지인들을 동대구역으로 가는 방향에 있는 평화시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그만 시장 이름을 착각하고 말았다. 대구역에 있는 번개시장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엉뚱하게 약속 장소가 아닌 대구역에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약속 시간까지 알라딘 중고샵에 책 구경을 할 생각이었다. 알라딘 중고샵 대구점은 대구역에서 도보로 출발하면 10분도 채 안 걸린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그곳에서 마침 『자전거 여행』1권을 발견했습니다. 새 책이나 다름없었고, 거기에 한정특별판 1쇄였다.

 

나는 깨끗한 상태의 책보다는 초판본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무조건 맨 처음 나온 게 제일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평소에 서점에 가면 시중에 구하기 어려운 책을 잘 찾을 정도로 책 구입만큼은 촉이 좋은 편이다. 만약에 약속 장소를 정확하게 안 상태에서 동대구역으로 갔더라면 『자전거 여행』을 구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헌책방이나 알라딘 중고샵에서 절판본 몇 권을 구입했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기분은 짜릿하게 느껴진다.

 

중고가로는 4500원. 정가가 비하면 상당히 저렴하게 구입했는데 절판본을 이렇게 싼 가격으로 판매되는 경우는 자주 오는 건 아니다. 인터넷 서점 온라인 중고샵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자전거 여행』한정특별판 1권을 정가(11000원)보다 더 부풀려서 팔고 있다. 18000원에서 크게는 89000원까지 책정된 것도 있다.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 쓴 절판본의 ‘미친 가격’이다. 이래서 터무니없는 금액으로 책을 ‘고가의 상품’처럼 파는 일부 회원들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1권을 가지고 이상, 이제 2권도 마저 구입하는 일만 남았는데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운이 따라줘야 하는 ‘촉’에 맡길 수밖에 없다. 좋은 책이 출판사를 만나지 못해 한순간에 독자들의 시선에서 사라져, 독자들의 손에서 영영 멀어지는 상황이 너무 아쉽기만 하다. 그저 『자전거 여행』이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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