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런 - 뉴욕 파슨스대 최고 명강의
에린 조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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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 시절만 해도, 필름을 끼워넣는 사진기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 중에서도 필름은 '코닥'이라는 인식이 뇌리 속 깊게 박혀있었다. 그도 그럴 만했던 게 어른들이 필름을 사오라고 할 땐, "코닥 필름 한통 사오라"고 했으니, 코닥은 필름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코닥은 '조지 이스트먼'이란 사람이 1888년에 세운 사진의 혁명을 이끈 회사다. 1976년 코닥은 필름 시장에서 90%, 카메라 시장에선 85%의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 공룡 기업이었다. 그랬던 코닥이 2012년 맨하탄 법정에 파산신청을 낸다. 필름을 넘어 사진의 대명사로 불리우던 코닥이 디지털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결국 파산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 중 하나가,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만든 곳이 바로 코닥이라는 사실이다. 코닥의 수뇌부들은 카메라 산업에서 디지털 시장이 커질 것을 누구보다 먼저 예측해 1975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다. 이는 소니보다 6년이나 빠른 시점이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 있었다. 코닥은 경쟁 회사들보다 소극적인 마인드로 스스로 처음 만든 디지털카메라가 기존의 자신들이 선점하고 있던 필름 시장을 잠식할 것을 우려했다. 코닥은 미래에도 사람들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현상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어쩌면 끊임없이 자기최면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코닥은 오히려, 디지털카메라 기술은 꽁꽁 숨겨둔 채, 필름 카메라의 연구 개발에 더욱 몰두했다.

 

당시 코닥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던 일본 후지필름은 미국에 생산 라인을 구축하며 시장 파이를 늘려갔다. 코닥은 이런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그저 앞만 보고 달릴 뿐, 그 이상의 것들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일까. 1980년대 후반부터 소비자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움직이고 있다는 시장의 신호를 무시하다가 소니 등 새로운 경쟁자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오자 1990년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헐레벌떡 뛰어든다.

 

창고 속 깊숙이 숨겨뒀던 15년전 디지털 카메라 기술로는 이미 시장을 선점한 경쟁자들과 싸움이 되지 않았다. 필름 비즈니스에 대한 미련과 업계 최고라는 오만함이 코닥을 나락의 길로 인도한 셈이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를 간다는 속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132년이나 고공 비행하던 코닥의 몰락은 이처럼, 그리 길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비즈니스 업계의 화두는 단연코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혁신’이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유사 브랜드, 지나치게 다양한 대체 상품, 빠르게 싫증내는 소비자 등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맞게 비즈니스를 성장시키고 차별화할 수 있는 무기가 바로 혁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소비자의 가치를 바꾸고 리드하려는 노력보다는 기존의 것에서 기능적으로 편하게, 디자인적으로 예쁘게 개선하는 정도로만 점진적으로 혁신을 진행해왔다. 이에 대해 뉴욕 파슨스대학교 에린 조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 기업들이 간과해왔던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관행적으로 해왔던 기존의 혁신 방향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린 조의 『아웃 런』은 우리가 지금까지의 시장, 브랜드, 소비자 심리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던 점들을 조목조목 예시하면서, 기존의 혁신 방향을 뒤집어 마켓 리더가 된 다양한 기업들의 ‘디자인적 사고’가 어떻게 변화된 세상을 만드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영원한 승자가 없는 세상에서 후발주자였던 기업이 어떻게 군림하던 선두주자 기업을 물리치는지, 한물갔다고 평가된 기업이 어떻게 잃어버린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지,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한 기업이 어떻게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해나가는지 등을 다양한 아이디어와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 기업들이 제대로 된 혁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냉철하게 꼬집는다.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 판단하고 의존하는 방식, 과거 양적인 데이터에 근거해 미래를 내다보는 방식, 기존의 관념이나 체계를 그대로 따르며 가정하는 방식 등 오늘날 대다수의 기업들이 비즈니스 세계의 절대적 지침처럼 여겨왔던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아울러 ‘성능의 향상’이라는 기술적인 관점에서만 혁신을 개발하고 진행하는 것이 얼마나 차별화 없는 경쟁력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기술의 발전이 일정 궤도에 오르고 나면 각 브랜드마다 성능이 어떻게 다른지 소비자들 스스로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의 해법은 ‘경험의 의미’를 창조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는 경험이 얼마나 새롭고 의미 있느냐에 따라 혁신의 성공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의 혁신 방향인 ‘급진적 혁신, 의미의 혁신’의 대안으로서 꼭 알아둬야 할 개념이 ‘디자인 경영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안하는 ‘디자인적 경영 전략’이란 무엇인가? 저자가 주장하는 ‘디자인적 경영 전략’은 경영자가 경영 전략을 짜고 의사결정을 하는 데 디자인적 마인드와 프로세스를 적용해, 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브랜드 전략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다른 관점으로 사물을 인지하고 추구하려는 노력, 즉 디자인적 사고 과정을 통해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주는 혁신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혁신을 디자인으로 승부해야 한다거나 디자이너가 경영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관점의 디자인 경영과는 확연히 다른 차별화된 전략이다.

 

저자는 풍부한 글로벌 기업 사례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문제인식부터 접근, 수행에 이르기까지 뼛속까지 독자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확대할 수 있는 ‘디자인적 경영 전략’의 방법론을 공감대 있게 제시한다.

 

혼자서 할 수밖에 없는 외로운 ‘러닝’의 개념을 뒤집어 함께 뛰는 느낌을 공유하고(나이키플러스), 이미지 관리를 위해 할인판매를 하지 않던 명품브랜드의 관점을 역으로 이용해 급매 처분하고(길트닷컴), 골치 아픈 러시아산 작은 다이아몬드를 처리하는 방안으로 결혼기념일 반지라는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이터너티 링) 등,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상식과 경험을 뒤집는 것이 어떻게 차별화된 혁신 전략의 밑그림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혁신이 세계적 화두지만, 거기엔 기술을 넘어 경험의 의미가 담겨져야 한다. 단지 새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는 시대는 끝났고 다시 오지도 않을 것이다. 혁신은 사람에 관계된 일이고, 삶의 질을 풍부하게 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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