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
미하엘 유르크스 지음, 김수은 옮김 / 예지(Wisdom)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Scene #1  평화를 위한 간절함이 느껴지는 크리스마스 캐럴

 

마법을 부려도 좋다. 환상도 상관없다.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연속이면 또 어떠랴. 그것으로 가슴이 따뜻해지고, ‘거짓’임을 알망정 잠시나마 우리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크리스마스가 있는 이맘때 한번쯤은 ‘기적’이 일어나도 괜찮다. 내가 아니라도 좋다. 거창하게 세상이 뒤바뀌는 것이 아닌 작은 만남, 성공, 사랑, 기쁨이라도 좋다.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 ‘기적’ 얘기를 꺼낸다면 황당무계하게 여겨지고 코웃음 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 자신이 지금까지 살면서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본 경험이 있었을까.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처럼 기적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삶의 특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기적을 바라고 그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단순히 신비주의자들에게 어울릴 법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비록 짧지만 실제로 한 사람의 사소한 간절함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마저 커다란 삶의 변화를 가져다준 기적으로 만든 일이 있었으니까.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24일 밤. 일촉즉발의 긴장이 감도는 서부전선 어디선가 낯선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불과 50m 떨어진 독일군 참호에서 흘러나온 크리스마스 캐럴에 영국군은 당황했다. 처음엔 독일군의 심리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래가 끝난 뒤 건너편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우린 쏘지 않겠다. 너희도 쏘지 마라!”

 

곧이어 어둠 저편에서 독일 병사 한 명이 일어나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바짝 긴장한 영국군은 그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이 병사는 촛불을 켠 조그만 크리스마스트리를 양측 참호 사이 무인지대에 놓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의 외침이 들려왔다 “서로 총을 쏘기보다는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또다시 캐럴이 이어지고 이번엔 영국군도 따라 합창했다. 삭막한 전선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 트리를 중심으로 양측 병사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한 병사들은 곧 담배를 나눠 피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들은 전쟁터에 투입되기 전에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보낸 시간들이 그리웠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다면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양측 병사들은 자신의 심장에 총알이 언제 박힐지도 모르는 살벌한 공포의 참호 속에서도 전쟁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독일군 병사는 간절히 원하는 소망을 담아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을 것이다.

 

전선의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찾아왔다. 양측은 크리스마스 전후에 그동안 무인지대에 방치됐던 시체를 거둬 장례식을 치르기로 합의했다. 시체를 수습하는 동안 서로 일손을 나누고 장례식에서 기도해주는 등 친교를 쌓았다. 시체를 치운 자리에선 축구 시합이 열리고 군수품과 음식물이 교환됐다. 더 이상 전장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Scene #2  ‘전쟁의 개’들이 망쳐놓은 크리스마스의 기적

 

감동이 느껴지는 한 편의 영화 같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런 기적이 서부전선 서북단 예페르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은 자발적 평화운동은 서부전선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주도한 사람은 없었지만 동참하는 사람은 많았다. 병사들이 만든 평화는 크리스마스를 넘어 연말까지 이어졌고 일부에선 수개월간 지속됐다. 타의에 의해 전장에 내몰린 대부분 병사들은 살생을 싫어했고 인간을 사랑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병사들이 만든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쟁의 개’들이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각국 지도자들은 전장의 친교를 극도로 싫어했다. 이들은 평화가 자신들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그들은 평화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친교를 막기 위해 참호를 떠나는 행동을 금지했고, 이를 어기면 군법회의에 회부했다. 전투가 독려됐다. 어제까지 같이 공을 차던 친구에게 총을 쏘고 담배를 나눠 피우던 이웃의 등에 칼을 꽂았다. 참호는 다시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됐고, 무인지대는 다시 시체로 뒤덮였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밀려 휴전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전쟁은 이후 44개월이나 더 계속됐고 9백만 명 이상이 죽었다. 이 책에 나온 위대한 휴전의 주인공들 상당수도 살아남지 못했다. 이들이 무의미한 참호전 속에 목숨을 놓은 날에도 전선의 지휘소에서 본국 대본영에 보낸 전문에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쓰여 있었을 것이다.

 

 

 

 Scene #3  ‘평화’라는 절박함이 총 대신 사랑으로 무장하다

 

예수가 마법과 상상, 환상과 우연을 아무리 동원한들 기적에 관한한 양국 병사들의 공통된 간절함에서 비롯된 평화로운 시간의 기록을 따를 자가 있을까. 물론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전쟁사에 축도 들지 못하는 소사(小史)도, 예수의 기적도 다 환상이고 우연일 뿐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 기적이란 없는지 모른다.

 

아름다웠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나버린 몇 개월간의 평화. 이 이야기가 어쩌면 완충지대의 평화가 단 하루의 몽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암시할 수도 있겠다. 크리스마스의 휴전과 그 이후로 잠깐으로나마 지속된 평화의 시간이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기록한 전쟁이라는 참혹한 서사와 비교하면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적이라고 하는 것도 ‘불가능의 가능’이 아니라, 단지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의 실현.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눈물과 정성 그리고 사랑이 쌓여 이뤄진 결과일 수 있다. ‘기적’에도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간절함. 성서에서도 ‘간절히 원하면 주신다’고 했다. 간절함이란 모든 마음과 노력을 쏟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이야기가 방점을 찍는 부분은 이 현실적 결말이 아닌 환상적 화해의 공간이다. 병사들의 감각을 얼어붙게 만드는 거대한 포탄 소리와 총소리가 가득하고, 앞날을 기약하지 못하는 적막한 전선의 기운은 ‘가족’과 ‘사랑’, ‘신의 은총’이라는 대의 명제 앞에서 휘발된다. 총과 군모 대신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윤리와 도덕 그리고 사랑으로 무장했다. 양국 병사들은 서로 적을 향해 총구를 겨냥해야 자신들이 원하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이들은 단순히 총을 내려놓고 크리스마스 연휴를 즐기고 싶었을까. ‘평화’라는 절박한 마음이 ‘살인병기’였던 군인들이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게 만들었다. 만약에 전쟁이 좀 더 일찍 끝냈더라면 전쟁이 만든 명분 없는 증오가 아닌 사랑이 승리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보는 이들의 내면적 갈등을 잠재운다. 사람이란 욕망과 윤리, 당위와 선택 가운데서 흔들리는 존재라는 것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역사의 상흔은 거시적 담론의 폭력으로 전도되고 그 가운데 개인들은 선량한 피해자로 채색된다.

 

책 마지막 장 소제목으로 인용된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좋은 전쟁은 없다. 그리고 나쁜 평화도 역시 없다. 평화를 위해 반드시 거창한 이론이나 조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때로 작은 행동만으로 충분하다. 크리스마스를 맞은 북프랑스 전선에서 살벌하게 대치하던 독일, 프랑스,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가지고 있던 진영논리나 국수주의,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을 순식간에 녹인 것은 의외로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다. 독일군 참호에서 흘러나온 캐럴은 전선에서 오래전에 죽어버린 감정을 일깨웠다. 그가 부른 노래에는 유럽 젊은이들의 공통적 문화와 가치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공감대가 이루어지면서 적국임에도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거룩한 밤에 깊은 어둠을 뚫고 들려온 평화의 노래는 일시 전쟁의 위력을 잃게 만들었다.

 

어느 역사가는 진정한 20세기의 시작은 1914년 12월 14일이라고 말했다. 제국주의의 광기가 유럽 대륙을 휘몰아치던 시기, 유럽의 어느 들판에서 전쟁의 당사자인 젊은 병사들이 맺은 이 작은 휴전은 우리들로 하여금 전쟁과 평화의 의미에 대해서 곱씹어보게 한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소사일 수도 있겠지만 전쟁의 험상궂은 표정을 드러내 전쟁을 혐오하게 만드는 대신, 잠시나마 세상에 강림한 평화를 보여줬다. 이를 갈망하게 만드는 짧지만, 강렬했던 역사의 한 장면이다. 프로이트와 전쟁을 주제로 서신을 교환하던 아인슈타인이 남긴 다음의 말처럼. “우리 평화주의자들은 전쟁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나머지 인류도 평화주의자가 될까요?”

 

‘Freedom and peace are not free.’ 자유와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기다린다고 해서 평화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꼭 무기에 의지한 희생에 의해서 평화를 얻는 것도 아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무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담대한 용기와 증오의 벽을 스스로 허무는 노력만 있다면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희생 없는 평화가 단지 현실 불가능한 이상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