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01-293] 위대한 개츠비

 

 

 

 

 

 Scene #1 ‘개츠비’라는 이름의 별을 만난 적이 있나요?

 

겨울밤이 깊어간다. 피츠제럴드를 읽는다. 아니 개츠비를 만난다. 그는 초록색 빛으로 반짝이는 별이 되어 밤하늘에 떠 있다.

한때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먼 우주의 한 공간에서 빛이 되어 있을 개츠비는 오늘도 희망을 간직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어디선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는 누군가의 간절한 열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어느 날 기적처럼 소원을 이루어주는 별이 되었을 것이다.

짙푸른 어스름이 깔리는 고즈넉한 저녁 무렵에 아무런 이유 없이 파란만장했던 개츠비를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얀 설탕가루를 뿌려 놓은듯한 별이 묻어 있는 밤하늘을 보노라면 어김없이 유독 초록색 빛을 발하는 그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내 영혼 깊숙한 곳에 매복해 있다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불쑥 튀어나온다. 내 손목을 잡고 뉴욕 웨스트에그에 위치한 자신의 호화로운 저택에 있는 푸른 정원으로 나를 데려가곤 한다. “내가 개츠비야.” 백만장자라고 믿기 어려운 젊은 남자가 친근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Scene #2 사랑밖에 모르는 남자

 

『위대한 개츠비』는 한 남자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이다. 톰은 데이지를 사랑한다. 그리고 톰은 머틀을 사랑한다. 머틀은 톰을 사랑한다. 윌슨은 머틀을 사랑한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한다. 작중 화자인 닉은 베이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야말로 사랑 투성이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 개츠비와 같이 한 사람만을 일편단심 바라보는,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꿈꾸는 그런 낭만적인 사랑도 존재한다. 저 안개 너머로 비치는 녹색 불을 갈망하면서도 섣불리 다가갈 수 없어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맹목적인 사랑이다. 그녀를 얻기 위한 일념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한다. 신분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동등한 위치에 서서 그녀를 바라볼 수 있도록.

 

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데이지는 순수함을 잃고 향락과 허영에 빠진 여자가 되어버린다. 데이지 그 자체만을 바라보는 개츠비와 달리, 데이지는 그의 수많은 영국산 셔츠를 사랑하는 여자로 변했다. 개츠비도 깨닫는다. 돈으로 충만한 그녀의 목소리를. 그럼에도 개츠비는 데이지를 열망한다. 설사 변해버렸다고 해도 그녀는 그의 삶의 모든 것이었기 때문에.

 

사랑이 순수함을 잃는 순간 사람은 병들어 간다. 데이지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톰처럼, 윌슨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머틀처럼 말이다. 톰은 데이지의 허영을 비웃고, 머틀은 윌슨의 무능력함을 비웃는다. 톰과 머틀은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그 또한 병든 사랑이다. 머틀은 톰의 거대한 부를 사랑하며, 톰은 그러한 부를 맘껏 뽐낼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병든 사랑의 끝은 언제나 아프다. 사랑의 상실은 광기로 번져 결국 살인에 이르게 되고 만다. 개츠비의 사랑을 질투한 톰은 개츠비의 죽음을 재촉하는데 일조했다. 사랑은 사람을 이기주의자로 만든다. 톰은 데이지를 뺏기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향락에 빠져있는 뉴욕, 그러나 그 불빛이 모두 꺼지고 남은 것은 허무뿐이었다.

 

 

 

 Scene #3 개츠비는 위대하다

 

개츠비의 삶의 동력은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곧 '사랑'이다. 인생이란 어찌 보면 가혹함으로 가득한 일장춘몽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뻔해진다. 좌절하든지 혹은 비관하든지. 혹은 소설에 등장하는 톰이나 데이지처럼 그냥 주어진 대로, 되는 대로 살 수도 있다.

 

개츠비의 인생 자체는 좌절하든지 비관하든지 혹은 그냥 방관하더라도 될 정도로 힘들고 가혹했다. 그럼에도 그는 삶을 구성하고 있는 조건을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을 위해 이용하고 변화시키며 감내한다. 그리고 그 ‘희망’이 되는 게 더군다나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희망’과 ‘사랑’을 인생의 목표로 삼을 줄 아는 개츠비는 위대하다.

 

개츠비가 상상하고 꿈꾼 세상에 그녀가 없다면 그것은 미완성에 그치고 만다. 즉흥적으로 제 감정을 좇을 뿐인 부박한 여자 데이지가 '돈으로 충만한 목소리'를 가졌다는 걸 알면서도 개츠비는 그녀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 오리가 처음 본 대상을 어미라고 생각하듯 일방적인 집착. 누군가는 그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희망’이나 ‘사랑’이란 어찌 보면 추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추상적’이라는 평가로 끝내버릴 수 없는 말들이다. 겉으로 보면 톰과 데이지가 누리는 물질풍요의 삶이나 개츠비가 벌이는 호화파티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시종일관 톰과 데이지의 생활은 그 물질이란 것에 고착되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물질적이기는 하나 진정한 삶은 아닌 것들’이 시대의 대세를 형성하고, 그걸 삶의 목표로 여기게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별다른 문제의식 없는 사람들은 육체를 물질로 채우며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진정한 삶’으로 채워져야 할 영혼과 마음을 가진 존재다. 육체를 채우는 물질을 넘어, 사랑과 희망에 목말라하며 자신의 삶을 사랑과 희망으로 채우고자 했던 개츠비는 위대하다. 그나마도 데이지를 비롯한 더없이 속물 그 자체로만 살아갔던 당시의 사람들에 비해서는 조금 낫다. 그의 일생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잡을 수 없는 모래알갱이처럼 허망하게 살다가 스러져 갈 뿐이었다.

 

누구의 인생인들 모두 끝난 후에 허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살아있는 동안에 자신의 지향점을 향해 전력투구하고 이후 그 모든 결과에 대해서도 자신이 책임지고 감내하고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에 가까운 삶의 행위다. 그래서 개츠비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받을 만한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Scene #4 당신의 초록 불빛은 어디서 반짝이고 있나요?

 

대저택의 불은 꺼지고,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사랑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나처럼 개츠비를 찾을 것이고, 어디선가 개츠비를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풀이 자라고, 파도가 출렁이고, 높이 뜬 달이 바다를 비춘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흔히들 희망에 가득 차면 행복하고, 낙담하면 불행할 거로 생각한다. 실은 그렇지 않다. 꿈을 꾸는 사람은 몰락을 두려워하고, 절망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마음을 추스를 수 있다. 후자가 절망 속에서도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면 위대한 것이다. 그런 사람은 투철한 의지로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

 

개츠비는 자신의 신념을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줄 허망함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갔다. 그의 영혼은 생전에 두 팔을 뻗어 하염없이 바라보던 부두 맨 끝에 조그맣게 반짝이는 초록 불빛이 되었다.

 

이것은 허무로 가득한 마음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 청춘에 향하는 무언의 외침이기도 하다. 허무를 딛고 일어서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야 한다고.

 

나는 삶 전체를 관통하고 견인해가는 각자의 ‘초록 불빛’이 있다고 믿는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저 멀리 자신만을 위해 반짝이고 있는 불빛은 삶의 울퉁불퉁함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다시 한 번 달음질하게 하는 원동력이 돼준다. 안개 너머 비치는 희미한 녹색 불빛을 의지한 채 그 하나만을 바라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 수 있었던 믿음. 누구나 그 위대함을 가슴에 품을 자격이 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스치는 오늘 밤에도 ‘개츠비’라는 이름의 별이 빛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넨다.

 

“당신의 초록 불빛은 어디서 반짝이고 있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