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 파탈 - 치명적 여인들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
이명옥 지음 / 시공아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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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자에게 가장 약한 존재는 남자다. 남자는 아름다운 여자만 보면 사랑하고 싶은 본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남자는 아름다운 여자와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싶어 하고 때문에 미모의 여자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남자의 유혹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여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과 맞설 수 없었다. 때문에 여자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세상을 쥐고 흔드는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그녀들에게 미모는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미모의 여자들은 남자의 소유욕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쉽게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보면 유독 아름다운 여자가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 여자들을 팜므 파탈(Femmes fatales)이라고 한다.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레이디 릴리트」 1868년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였던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1868년 작 「레이디 릴리트」는 19세기말 유럽 문화를 지배했던 팜므 파탈의 원조 격 그림으로 꼽힌다. 릴리트는 태초에 이브가 생겨나기 전에 아담의 여자다. 릴리트는 이브처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지지 않고 흙으로 빚어졌다. 그녀는 정숙한 아내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했다. 음탕한 릴리트의 유혹을 걱정한 하나님은 아담을 보호하고자 그녀에게 벌을 내려 낙원에서 추방해버린다. 그리고 아담에게 이브를 선사한다. 유대신화 속 최초의 여성인 릴리트가 거울을 보며 화장하는 모습의 이 그림은 오늘의 영화 및 광고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팜므 파탈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콜리어  「릴리트」  1892년 

 

 

존 콜리어의 ‘릴리트’는 낭만파 시인 키츠의 《라미아》라는 시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작품이다. 키츠는 그의 시에서 릴리트를 황금빛과 초록빛 그리고 청색의 무늬가 있는 뱀으로 비유했는데 콜리어는 릴리트의 악녀 이미지를 뱀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으로 묘사했다.

 

이 그림에서 아름다운 육체를 소유하고 있는 벌거벗은 릴리트는 뱀에게 몸이 감긴 채 황홀경에 빠져 있다. 시각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여자와 뱀을 함께 그려 넣었다. 그는 릴리트의 유혹을 갈망하면서도 거부하고 싶은 남자의 이중성을 표현했다. 뱀은 인간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동물이지만 뱀과 여자를 연결시켜 성적인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1614~1620년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인 유디트는 음탕한 릴리트와는 전혀 다른 여인이다. 잔인하고 야만적인 앗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는 이스라엘의 도시 베툴리아를 침략한다. 마을이 홀로페르네스 군대에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름다운 미망인 유디트는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기로 한다. 유디트의 미모와 달콤한 말에 속아 홀로페르네스는 그녀를 연회에 초대한다. 홀로페르네스에게 술을 먹여 유혹한 유디트는 그가 잠들자 칼을 꺼내 그의 목을 베어버린다. 이스라엘은 그녀의 행동에 용기를 얻어 앗시리아 군대를 물리친다.

 

 

 

 

 

구스타프 클림트 「유디트 1」 1901년

 

 

나라를 구한 여인 유디트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화가들이 즐겨 찾는 주제였지만 구스타프 클림트는 유디트를 성적 대상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는 작품 「유디트 1」에서 유디트를 남자의 목숨을 빼앗은 요부로 표현했다. 이 작품 속의 유디트는 왼쪽 가슴을 노출한 채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들고 있다. 넓은 금빛 목걸이를 하고 있는 유디트의 얼굴은 굳어 있지만 몸은 여성으로서 매력을 뽐내고 있다. 클림트는 이 작품의 제목을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라고 표시했지만 그가 표현한 유디트는 사실 살로메에 가깝다. 목이 베인 세례 요한의 입술에 키스를 하는 살로메의 모습과 섹스를 무기로 적의 머리를 베어버린 유디트의 모습이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살로메 - 사랑하는 남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파멸의 여자

 

 

 

 

 

오브리 비어즐리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삽화 」 1894년

 

 

 

《구약성서》에서 유디트가 나라를 위해 남자를 유혹했다면 살로메는 사랑을 소유하기 위해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했다. 헤롯왕의 의붓딸 살로메는 그가 베푸는 만찬에서 매혹적인 춤을 춘다. 그 춤에 반한 헤롯왕은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한다. 성서에서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 것은 어머니 헤로디아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1854~1900)의 희곡 《살로메》에서는 주인공 살로메가 세례 요한을 사랑하지만 세례 요한은 그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 복수심에 불탄 살로메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헤롯왕을 유혹하고 그 대가로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다.

 

 

 

 

 

귀스타브 모로 「환영」 1875년

 

 

오스카 와일드의 영향을 받아 사랑하는 남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살로메를 표현한 최고의 작품이 귀스타브 모로(1826~1898)의 「환영」이다.

 

이 그림에서 살로메는 가슴을 노출한 대담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춤을 추면서 화면 중앙에 있는 세례 요한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공중에 떠 있는 세례 요한은 피를 흘리며 살로메를 바라보고 있다. 세례 요한의 얼굴 주변에는 금빛 후광이 둘러져 있다. 화면 왼쪽 살로메의 매력에 빠져 있는 헤롯왕은 의자에 앉아 있다. 이 작품에서 살로메는 비극적 사랑에 빠진 냉혹한 여인의 모습보다는 이국적인 배경 위에 농염한 아름다움과 유혹적인 춤으로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모습으로 표현됐다.

 

 

 

 

 

사실 팜므 파탈은 사회적으로는 여성을 옥죄던 관습과 도덕에서 벗어나 권리와 욕망을 요구하기 시작한 새로운 여성상에 대한 남성중심사회의 반발이자 두려움의 표현이었다. 그저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수동적 존재였던 여성이 그러나 실제로 거부할 수 없는 마력으로 남성을 주도해 치명적 불행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남성의 공포가, 세기말 유럽사회를 달구었던 팜므 파탈 논의에 담겨있다.

 

20세기에 이르러 여성들의 목소리가 수면에 올라오면서 특히 지식인과 예술가 사이에서 여성 혐오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남성우월에 초점을 맞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여성을 혐오하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을 근거로, 여성의 열등성과 그들이 남성에게 미치는 치명적 영향력에 대한 이론이 난무했다.

 

특히 사진과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가 출현해 팜므 파탈 이미지는 문학과 미술보다 더 큰 대중적 영향력을 획득한다. 이에 따라 팜므 파탈은 자연스럽게 그림에서 스크린으로 옮겨간다.

 

마릴린 먼로는 할리우드 팜므 파탈의 전설적인 존재다. 먼로는 "나를 숭배하던 남자들은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내게 키스하고, 품에 안고 싶어 안달하는 것은 모두 내 탓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먼로는 남성들의 우상이었고, 섹스의 화신이었다. 먼로는 에로틱한 요부, 백치미의 표본으로 각인돼 있다. 많은 영화에서 섹시하지만 머리는 텅 빈 금발미녀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팜므 파탈의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악이 공존한다. 우선 남성을 단번에 사로잡는 외모, 성적 매력을 갖고 있다. 또 내면에 뜨거운 욕망을 갖고 있다. 그 욕망은 악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현모양처, 청순미인과는 정반대로 '나쁜 여자'들이다.

 

이렇게 팜므 파탈이 출현했던 시기와 배경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현대의 대중들이 19세기 말에 창조된 팜므 파탈에 열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팜므 파탈은 성적 금기를 깨는데 따르는 희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인간은 금지된 성에 탐닉할 때 죽음보다 강렬한 쾌감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굳이 바타유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성욕은 억압할수록 커지며 두려움은 욕망에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역사와 예술에서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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