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 - 출간기념50주년 제4판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홍성욱 옮김 / 까치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비트겐슈타인의 오리? 토끼?

 

 

만일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식생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이 우리의 ‘젓가락’을 보았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손으로 식사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민족은 젓가락을 공사 중에 사용하는 삽과 같은 도구로 생각하고 불필요한 물건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신들이 가진 문화 안에서 젓가락과 가장 비슷하게 생긴 대상을 떠올리고 그 대상에 해당되는 단어를 사용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오리라고 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이것을 토끼라고 볼 수 있다. 그림은 불변하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관점의 차이에 의해 해석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을 보고 비트겐슈타인은 인간은 각자 나름대로의 해석의 틀이 있고 그 틀 위에서 사물을 새롭게 이해하고 재정립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7’이란 수를 동양에서는 좋은 수로 생각하지만, 서양에서는 좋지 않은 수로 생각하는 것은 사물을 이해하기 전에 사물을 해석하는 사회적인 틀이 각 사람마다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현상과 사물이라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현상과 사물을 보는 눈이 서로 다른 사람이 있다면 패러다임(Paradigm)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에 보는 시각에 변화가 있으면 패러다임이 전환(Paradigm Shift)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세상이 바뀐 것이 아니라 관점이 바뀐 것이다.

 

 

 

 ♣ 과학은 발전되는 것이 아니다

 

‘패러다임’이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적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를 말한다. 1962년 미국의 철학자 토머스 쿤이 그의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라는 책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주변 세상을 지각하고 이해하며, 해석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토머스 쿤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찰스 다윈의 말을 인용한다.

 

나는 이 책(『종의 기원』)에서 제시된 견해들이 진리임을 확신하지만, … 오랜 세월 동안 나의 견해와 정반대의 관점에서 보아왔던 다수의 사실들로 머릿속이 꽉 채워진 노련한 자연사학자들이 이것을 믿어 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 그러나 나는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는데, 편견 없이 이 문제의 양면을 모두 볼 수 있을 젊은 신진 자연사학자들에게 기대를 건다. (262~263쪽)

 

 

다윈은 왜 이렇게 이야기했을까? 쿤은 왜 이 이야기를 인용했을까? 다윈은 지금까지 쌓아 왔던 모든 지식체계를 완전히 뒤바꾸는 학설을 발표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윈 스스로 이 이야기를 과학자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토마스 쿤은 다윈이 완전히 새로운 주장을 제시하면서 기존의 사고 틀을 뒤집었던 것처럼 과학이 발전해 왔다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결국, 과학은 ‘발전해 온’ 것이 아니고 ‘이어져 온’ 것이다.

 

과학과 지식은 일반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이어져 왔을까? 정상과학의 시기에는 하나의 패러다임 하에서 연구 작업이 이루어진다. 패러다임이란 기본형, 표준형이다. 패러다임이란 말은 원래 쿤이 언어학에서 차용한 용어인데, 한 동사의 기본형에서 온갖 활용어가 파생되듯이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여러 가지 과학적 인식과 모델이 생겨난다. 따라서 과학적 인식뿐만 아니라 과학적 이론, 나아가 과학자 집단의 공유된 관념과 가치관, 관습까지도 모두 그 지배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한 패러다임을 의문시하는 과학적 증거들이 누적되고 시기가 무르익으면 그 모순은 곪아터지게 된다. 이렇게 과학혁명은 정상과학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나거나 새로운 것이 발견되었을 때 촉발된다.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정상과학에서 누적된 성과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과학혁명은 정상과학을 연장하는 선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불연속적으로, 비약적으로, 단절적으로 일어난다. 이때 기존의 것은 철저하게 부정된다.

 

다윈 이전에도 진화론과 비슷한 학설은 많았다. 그런데 다윈 이외의 학자들은 ‘생명체는 어떤 목적을 향해서 발전해 온 것이며, 어떤 미개한 존재가 인간으로 된 것 역시 발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윈이 그것은 ‘발전’이 아니고 순전히 ‘자연의 선택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이려면 생명체에 대한 개념 규정을 새로 해야 하고,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인간의 정체성 또한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존의 사고 체계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웬만해선,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을 때까지 새로운 학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우리에게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는 쿤의 과학관

 

장기 게임을 예로 든다면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것은 ‘게임에서 이기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다. ‘장기의 규칙을 통째로 바꾸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을 단순히 ‘발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쿤이 말했듯이 발전이라는 것은 기존의 어떤 것을 더 개선시키는 일이고, 결국은 과거의 어떤 것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전혀 새로운 이론을 등장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것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결국 과학은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 변환된다. 그래서 과학은 ‘발전이 아닌, 완전히 뒤바뀌는 혁명’을 거듭하는 전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역사는 마치 계속 발전해 온 것처럼 포장되고, 과학 교과서는 이렇게 왜곡된 형태로 기술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지금까지 과학의 업적을 인정받을 수 있고, 젊은 과학도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게 할 수 있으니까. 과학이 발전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발전이 아니라는 사실’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도 있겠다.

 

쿤은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전혀 해답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출간 50주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쿤의 과학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이 책을 읽고, 연구하는 과학자나 독자들은 지금도 쿤이 이 책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과학이 이렇게 패러다임의 전환을 거듭해 간다면, 과학의 목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과거와 연결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이론의 등장이 과학사를 통째로 뒤바꾼다면 과학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패러다임이 전환 가능하다면 도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궁금하다면 그 답은 책을 읽는 우리가 찾아야한다. 출간 100주년에 이를 즈음에 미래의 독자와 연구가들은 쿤의 과학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표시하고,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탐구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쿤의 과학관을 논하는 이 과정 또한 ‘패러다임 전환’으로 볼 수 있겠다.

 

우리는 ‘패러다임’이라는 꽤 정의하기 어려운 말을 마구 쓴다. 심지어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나 역사 전체를 구성하는 과정을 설명할 때도 사용한다. 또 행정학에서도 ‘패러다임’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게 사용한다. 그러나 이 책을 단 한 번이라고 읽은 사람들 중에 ‘패러다임’의 진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현재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의 서문이 추가되고, 새롭게 개정된 번역본을 읽었지만, 여전히 ‘패러다임’이라는 단어 속에 있는 방대한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버겁게 느껴진다. 개정판을 읽으면서 ‘패러다임’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