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의 창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삶에 안주하는 사람과 성취하는 사람의 차이는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안주하는 사람은 설령 성공 가능성이 99%라고 하더라도 1%의 실패 가능성에 연연한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는 자기 방어적인 시나리오로 최악의 결과를 그려보고는 모험 자체를 시도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어떤 일로 성공을 거두더라도 감격보다는 안도감만 느낀다. 성취하려는 사람은 용기가 있고 자신이 직면한 문제에 도전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비행기가 발명되고 우주선도 탄생할 수 있었다. 성취하려는 사람은 안주하는 사람과 달리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실수한 적이 없는 사람은 결코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을 했다.

 

 

 

 

 

 

 

 

 

 

 

 

 

 

 

 

『노자』 52장에 보면 ‘견소왈명(見小曰明) 수유왈강(守有曰强)’으로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밝음(明)이라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함(强)이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사소한 변화를 감지하는 명철한 지혜와 날카로운 통찰력을 의미한다. 작은 것을 본다는 것은 자신의 시야에 갇혀 좁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세심하게 감지함으로써 크게 보는 통찰력이다.

 

우리 앞에 닥쳐온 고난 극복에 실로 큰 힘이 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지혜다. 지혜가 기다림의 대상이 아닌 적극적인 훈련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지혜의 본질이 우리 마음의 한계를 지각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지혜는 우리가 추구하는 대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지혜는 끊임없는 훈련의 대상이기도 하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어떤 일에 깊이 몰입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이 없어지는 상태를 'Flow'라 부르고, 플로 상태가 행복과 성취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창구가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지혜는 우리에게 이런 자기중심성이 만들어내는 환상 앞에서 철저하게 겸손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현대사회는 단순한 똑똑함보다는 지혜로움이 더 중요하고, 삶은 단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나'의 존재와 '우리'라는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항상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처럼 진정한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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