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수록 더하는 ‘빈익빈 부익부’

 

 

 

 

 

 

 

 

 

 

 

 

 

 

 

 

 

세계개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 인구 중 최상위 1% 부자들의 부의 총합은 하위 50%에 속한 이들의 2000배가 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20대 80’을 넘어 ‘0.1대 99.9’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부자 중에서도 최상위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최하위 빈자들이 더 가난해지는 상황을 “협력, 상호 신뢰, 공유, 인정, 존중 등을 토대로 하는, 공생에 대한 인간적인 갈망을 경쟁과 경합으로 대체한데서 비롯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플루토크라트(Plutocrat)는 용어가 회자되고 있다. 그리스어로 부를 의미하는 plutos와 권력을 의미하는 kratos가 합쳐진 말로, ‘부와 권력을 다 가진 부유층’을 뜻한다. 전 세계 상위 0.1%를 차지하는 글로벌 슈퍼리치(Super rich)가 플루토크라트다. 그들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있고, 점점 더 끼리끼리 뭉치며, 갈수록 그 나머지 사람들과 동떨어진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점점 이들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로 나뉘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격차를 통해 슈퍼리치는 점점 더 부유해지는데, 더욱 커진 파이로부터 이익을 얻을 뿐 아니라 그 파이에서 다른 동료들에 비해 더욱 큰 조각을 차지한다. 문제는 나머지 사람들이 이런 현실에 별 불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인데, 왜냐면 그들도 슈퍼리치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 개인화된 희망과 욕망 그리고 야망

 

 

 

 

 

 

 

극심한 불평등의 현장, 인도 뭄바이의 빈민촌 안나와디에 사는 주민들도 그렇다. 안나와디는 새로운 부의 상징이 된 뭄바이 사하르 공항 인근, 초특급 호텔 5개가 에워싸고 있는 빈민촌이다. 이곳에 사는 누군가는 “우리 주변은 온통 장미 꽃밭이고 우리는 그 사이에 있는 똥 같은 존재”라고 자조한다. 대부분은 넝마주의로 생계를 이어간다.

 

아침마다 공항 일대에 넓게 흩어져, 내다팔 만한 것들을 찾아다니는 넝마주이는 수천 명에 달했다. 그들은 뭄바이에서 매일 쏟아지는 8000톤의 쓰레기에서 다만 몇 킬로그램을 건지려고 돌아다닌다. 까만 차장 안에서 내던지는 구겨진 담뱃갑을 주우러 달려가고, 물통과 맥주병을 찾아 하수구를 훑고 쓰레기 하치장을 뒤진다. 저녁이 되어 폐품을 담은 삼베 포대를 짊어지고 빈민촌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흡사 돈벌이에 이가 다 빠지도록 혈안이 된 산타 행렬 같았다. (캐서린 부 『안나와디의 아이들』반비, 15쪽)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이자 그만큼 불평등도 심각한 도시, 인도의 뭄바이. 뭄바이의 화려한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공항과 특급 호텔들의 그림자 뒤에는 그 성장과 발전에서 비껴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토착민과 이주민, 무슬림과 힌두교도 간의 갈등이 곳곳에 도사리고, 전통과 현대 사이에 낀 여성들의 젠더 갈등도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고속 성장시대 특유의 한탕주의와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

 

신분 승상을 위해 극우 정당의 하수인이 된 여성 아샤, 폐품 분류에 대한 천부적 재능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무슬림 소년 압둘,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인재가 되고자 영어 공부에 매진하는 대학생 만주 등 안나와디 사람들은 각자의 앞에 놓인 삶을 버티기 위해 모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빈곤의 고통에 벗어나 '중산층'이 되길 바라는 '야망'도 있다. 그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쓰레기를 줍는 생활로 연명하는 것도 버거운데 신분 상승까지는 힘들다.

 

그 곳은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을 살고 싶은 ‘희망’과 ‘욕망’ 그리고 '야망'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집단의 정체성이 희미해지면서, 안나와디 사람들의 공통된 ‘희망’과 ‘욕망’이 개인화되었다.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타인에게 무심할 정도로 고통에 공감할 여지가 없을 만큼 참혹한 삶이 빈민촌 사람들의 도덕관념을 위축시켰다.

 

 

  

 ♣ 낯익은 세상

 

 

 

 

 

 

 

 

 

 

 

 

 

못 쓰는 물건들과 못 쓰는 물건을 수집해 먹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인도 안나와디 사람들의 삶은 남의 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흉물스러운 쓰레기매립지 ‘꽃섬’에도 자본주의 욕망과 그로 인한 희생의 현실을 볼 수 있다. 정말 ‘낯익은 세상’이다.

 

인도보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대한민국, 그것도 쓰레기매립지 그곳에서도 사람이 산다. 쓰레기 더미를 뒤져 주워 먹을 것을 찾아 달려드는 사람들이다. 반입되는 쓰레기차에 따라 구획이 나뉘어져 있어 권리금을 내야하고 등록증도 갖춰야 한다. 치열한 경쟁은 물론이고 권력의 질서마저 존재한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

 

쓰레기를 뒤져본 적이 있는 자는 안다. 악취 나는 오물 속에서 금은보화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꽃섬’ 오두막 동네는 버려진 각목과 판자, 깔판으로 만든 집이 많다. ‘꽃섬’ 사람들은 구역별로 나눠 쓰레기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재활용품을 모아, 이를 되판다. 그 돈으로 하루를 일하고 하루를 먹고 산다.

 

"내가 도시 외곽의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는 삶의 목적이 되었고 온 세계가 그것을 위하여 모든 역량과 꿈까지도 탕진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풍경은 세계의 여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이다."

 

그렇다. 자본주의의 참혹한 풍경은 인도 안나와디에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황석영 작가의 말처럼 『낯익은 세상』을 읽는 동안 우리는 지속적으로 ‘낯익은 세상’과 만난다. 단지, 그 불편한 세상을 일부러 외면해서 못 보고 있을 뿐이다. 난지도와 같은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가 없어졌지만 지금도 우리는 쓰고 버리고, 재생하고, 쓰고 버리고 또 재생하고. '꽃섬'에는 꽃이 없다. 그 주변에만 온통 장미 꽃밭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본주의의 생산과 소비가 만들어 낸 영양분으로 '행복'이라는 장미가 자라나고 있다.

 

 

 

 ♣ 쓰레기가 되는 삶들

 

 

 

 

 

 

 

 

 

 

 

 

 

 

자주 입에 꺼내기가 쉽지 않은 ‘쓰레기’ 얘기. 새로운 제품 광고와 소비 욕구가 판을 치는 환락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얘기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바로 우리들 얘기다. 우리 주변의 낯익은 세상이다.

 

쓸모 때문에 생겨난 게 쓰레기다. 당초에는 긴요한 물건이었을 테고 사랑도 받았을 것이다. 버려지기 전까지 최적의 효용을 자랑했겠지만 쓸모를 잃어버린 순간, 쓰레기가 되고 만다. 쓰레기 없는 세상이 있겠는가. 문명은 풍요를 가져다주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폐기물 더미에 인간을 몰아넣고 운명처럼 살아가도록 했다.

 

종전까지 인간은 쓰레기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이 쓰레기의 피해자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간 자체가 쓰레기화되고 있다. 모든 상품이 1회용으로 둔갑하면서 1회용 사랑과 1회용 만남이 끊이지 않는다. 하다못해 입양한 아이조차 버리는 일도 발생한다. 아무런 역할도 담당하지 못한 채 과잉, 잉여, 초과 인구가 되는 인간이 늘고 있다. 말 그대로 사회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우만은 ‘버려지는 쓰레기화되는 인간들’이 생겨나는 것은 디지털 첨단화와 자본주의로 인한 지구화의 필연적 결과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자본의 눈에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인간은 불량품이나 쓰레기로 비친다. 쓰레기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사회에서 점차 배제되고 격리된다.

 

저자에 따르면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쓰레기화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가난한 국가의 난민들이 자본주의의 중심부를 향해 합법적 혹은 불법적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국가는 이 이주민들을 이른바 게토(Getto)로 몰아내거나 통제하는 등 영토를 요새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의 안나와디와 한국의 꽃섬과 같은 빈민촌이 늘어난다. 반면 자국민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저렴한 노동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으니 아이러니다.

 

자본주의는 빈민촌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으며 전 세계적 불황과 비정규직화, 무한 경쟁은 안 그래도 불안한 빈민들의 삶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인간마저 쓰레기가 되는 이 낯익은 세상에 인간은 뒷전으로 물러난 채 물질이 주체의 자리에 올라서 있다. 극히 예외적인 상황으로 여겨졌던 이와 같은 현상은 이제 ‘일상’이 돼버린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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