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영원한 행복이 없듯

영원한 불행도 없는 거야.

언젠가 이별이 찾아오고,

또 언젠가 만남이 찾아오느니

인간은 죽을 때,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 거야.

 

 

 

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일본 작가 쓰지 히토나리가 쓴 연애 소설 『안녕, 언젠가』한 대목이다.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면 과연 나는 ‘사랑받기’와 ‘사랑하기’ 중 어느 쪽의 인생을 마주하게 될까.

 

 

 

 

 

 

얼마 전 SNS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사진을 보게 됐다. ‘노부부의 동심’이라는 제목이 달린 여러 장의 사진이다. 사진 속,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부는 놀이터에서 그네와 회전 뱅뱅이 등 놀이기구를 함께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노부부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지만 사진 속 상황만으로도 이들의 즐거운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노부부는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 그 때 서로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노부부만의 행복한 시간을 몰래 촬영하는 건 좋지 않지만, 이 장면을 우연히 발견한 익명의 촬영자는 멀리서 지켜보는 내내 흐뭇했을 거다. 이런 아름다운 장면의 사진이라면 여러 사람이 보면 좋다. 노년의 사랑을 조명한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한 심리학자는 말한다. “젊어서의 사랑은 자신의 행복을 원하는 것이고, 황혼의 사랑은 다른 누군가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이라고. 그 차이는 ‘사랑받기’와 ‘사랑하기’의 거리이기도 하다.

 

 

 

 

 ♣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황혼’에는 자연의 황혼과 인생의 황혼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1.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 2. 사람의 생애나 나라의 운명 따위가 한창인 고비를 지나 쇠퇴하여 종말에 이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이육사의 「황혼」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오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그가 노래하는 것은 인생의 황혼이다. 비록 한창 고비를 지났지만 아직도 정성된 마음으로 맞아들일 대상이 남아있다. 황혼이 곧 종말이라는 부정적인 관념, 특히 외로움으로 대표되는 골방의 커튼을 걷고 인생을 다시 보아야 한다. 모든 사물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삶이라는 본질은 달라진 것이 없다.

 

딱히 몇 살부터를 황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인생은 60부터’라는 말과 상관이 있어 보인다. 황혼기에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살라고 격려하는 뜻에서 생겨난 말일 것 같다. 이 황혼기가 머지않아 거의 30년 기간이 될 것인데 “이처럼 긴 시간들을 어떻게 아름답고 의욕적으로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질문이다.

 

 

 

 

 

 

 

 

 

정두영 목사 작곡의 성가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는 성경의 고린도전서 13장에 곡을 붙인 것이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리고 전 생애를 통하여 추구해야 할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 내일을 향한 소망, 그리고 서로를 아끼고 베풀며 따뜻하게 보듬는 사랑이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며 특히 황혼기에 가장 절실한 것이 바로 이러한 사랑이다.

 

 

 

 

 ♣ 사랑하면서 함께 늙어가기

 

 

 

청춘의 사랑이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이라면 황혼의 사랑은 화롯불같이 불씨를 품고 안으로 타오르는 열정이다. 후반부에서의 사랑은 그저 만화나 소설에서 꾸며 낸 이야기라고 치부하는 이라면 앙드레 고르가 쓴 『D에게 보낸 편지』가 시각 교정에 도움이 된다.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는 9월에 불치병으로 고통 받아 온 아내와 동반자살로 삶을 마감해 전 세계를 울렸다. 죽을 때조차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쇼’를 했다는 냉소적인 시각도 있겠지만, 어차피 인생이란, 삶이라는 무대에서 어떤 식으로든 연출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감동의 드라마 아닌가. 83세의 앙드레 고르는 자다가 깨어나 82세의 아내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 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저무는 세밑의 끝자락, 다들 아쉽고 뜻대로 안 된 일도 많을 터다. 그래도 곰곰 생각해 보면 숨이 남아 있는 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바로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영혼이 굳어지지 않고 사랑하며 늙어 간다면 나이 먹는 것도 그다지 불평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 꼭 늙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젊은 연인들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유치환 「행복」)는 시 구절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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