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쓰고 싶은 그리운 이름 하나 없을까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바람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동안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

 

 

 

가을이 오면 ‘편지를 쓰고 싶은 그리운 이름 하나 없을까’하고 감상적인 행동을 해보고 싶은데 시간을 먹어 갈수록 편지를 쓰고 싶은 간절한 이름 하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때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지인이 몇 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수 쓰지도 않겠지만. 요즘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저 멀리 있는 지인에게 간단한 인사나 안부 정도 할 수 있다. 오히려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편지를 보낸다면 받는 사람은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처럼 옛날에는 편지를 주고 받는 것 또한 당연한 건데 말이다. 그만큼 삭막해지고 마음의 물기가 말라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편지는 또한 공감 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 누군가에는 정말 간절한 편지

 

 

 

 

 

 

마음과 마음의 소통이 있고 무엇인가 서로가 나눌 수 있는 공통점이나 발전이 있을 때 지속되게 만들 수 있다. 소통할 수 없는 편지는 독백이며 메아리와 같다. 각자 수녀원과 수도원에 들어가 살았던 중세의 연인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편지를 주고받는 것으로써 그리움을 달래며 신앙에 정진했다고 전해진다. 엘로이즈가 처음 아벨라르에게 보낸 편지는 ‘무엇이든 나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편지를 써 보내 주세요’라고 보낸 편지였다.

 

 

 

 

 

 

 

 

 

 

 

 

 

 

 

 

 

 

 

 

 

 

 

 

 

 

 

시인 김남조는 '편지'라는 시에서 '한 구절을 다시 쓰면, 한 구절을 읽는 당신,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라고 쓰고 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게 된 계기는 괴테가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어 고민 하다가 우연히 끔찍한 사건(유부녀를 사랑한 남자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권총 자살)의 소식을 들었던 것에서 시작된다.

 

그는 거기서 소설의 실마리를 찾고 영감을 얻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3개월 만에 썼다. 그 소설을 샤를로테한테 편지와 함께 보낸다. 하지만, 그들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그토록 많은 독자들이 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권총 자살 유행까지 만들어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서간체 소설이다. 처음, 괴테가 자기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함께 띄운 편지는 '잘 있어요. 사랑하는 로테, 당신에게 나와 많은 점에서 비슷한 친구 한 사람을 보내 드립니다. 당신이 그를 잘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이름은 베르테르라고 합니다'였다.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 되자 유럽은 물론 온 세상 사람들이 열광하며 달려들었다. 어쩌면, 모든 문학 즉, 시, 소설 등은 누군가에게 띄우는 공개된 편지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간절한 이름 하나에게 닿기를 바라는 연서(戀書)이다.

 

 

 

 ♣ 가을에 도스또예프스끼를 읽어보자

 

소통 부재의 시대를 사는 이들이 그 누군가를 만나 마음과 영혼의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는 공개된 연서인 것이다. 끊임없이 그 마음의 문을 노크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한 공감, 완전한 소통, 완전한 사랑을 위해 끊임없이 시와 소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도서관의 장서에 들어있는 책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편지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 먼지 쌓여 가면서 소통 할 수 있는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진정한 소통 부재의 현실 속에서 이 가을에 마음의 문을 조심스레 열며 소통의 통로를 마련해 주는 이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연서를 띄우고 싶다. 열린 문과 닫힌 문 사이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이 가을에 누군가에게 보낸 연서(책)를 발견하고 가슴 떨리는 감동을 가지고 읽으며, 또 누군가에게 닿을 연서를 띄운다. 글을 쓴다. 책 즉, 연서는 고독한 영혼이 고독한 영혼을 향한 선물이며, 문을 두드림이며 진정한 소통에의 갈망이다.

 

이 가을에 기억의 창고에 아직도 남아 있는 그리운 이름 하나에게 편지를 띄워보자. 오래된 수첩 속에 빼곡하게 적힌 이름들 중에 소통의 이름 하나 찾아보자. 그리고 누군가에게 띄웠을, 혹시 당신에게 띄웠을지도 모르는 책 한권을 읽어보자.

 

혹시 나처럼 ‘편지를 쓰고 싶은 그리운 사람’ 하나 없다면 책을 읽음으로써 감성으로 마음을 살찌워보는 것도 좋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신호에는 ‘어떤 글’을 읽는 것이 지적 능력과 감성 능력, 주변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 등을 발달시키는데 좋은지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실렸다. 여기서 말하는 ‘그 어떤 글’이 뭔지 아시는가. 그것은 바로 러시아 출신 소설가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와 극작가 안톤 체호프다.

 

 

 

 

 

 

 

 

 

 

 

 

 

 

 

 

심리학자들은 이번 연구를 위해 독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다른 글을 읽게 했다. 한쪽에는 체호프, 도스또예프스끼 등 유명작가의 작품을 읽게 했고, 다른 쪽은 최신 베스트셀러 등을 읽도록 했다. 이후 두 그룹은 얼굴 표정 사진을 보고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할지를 예측하는 등의 테스트를 거쳤다. 지능·감성·사회관계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다. 그랬더니 유명 문학작품을 읽은 그룹의 점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서로 읽은 작품의 특성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신작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작가가 흥미를 더하기 위해 작품 내용을 특정방향으로 통제해 독자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는 특성이 있다. 반면에 유명 문학작품은 등장인물 고유의 특성에 따라 작품이 전개되는 다양성을 띠고 있어 실생활과 유사하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유명 문학작품을 읽은 독자는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작품에 몰입하게 돼 감성, 지성, 사회관계의 정도가 발달된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만 따져놓고 본다면 모든 ‘신작 베스트셀러’가 우리의 감성 범위를 제한시키는 건 아니다. 어차피 ‘베스트셀러’에도 도스또예프스끼에 꿀리지 않은 좋은 작품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먼지 앉은 채 당신의 손길이 닿기를 기다릴 지도 모르는 책을 찾아보자. 이 가을날에. 잠시 잊고 있었던 도스또예프스끼 전작 독서를 시작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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