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구석본
그가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한 남자가 죽어 있다
죽은 남자가 웃는다 ‘웃음’이 죽었다
‘좋은 아침’이라고 죽는 남자가 말하자
‘좋은 아침’이 죽었다
남자는 ‘웃음’과 ‘좋은 아침’의 죽음을 보지 못한 채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향수를 뿌리고
로션을 가볍게 바르고는 다시 웃는다
웃음이 두 번 죽지만 남자는 여전히 보지 못한다
이번에는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이 핑그르 돌다가 죽어버린다
남자는 쌓이고 쌓인
그들의 죽음을, 남자의 죽음을, 오늘의 죽음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떠난다
남자가 떠난 후,
시취(尸臭)가 향수처럼 한동안 맴돌다가 사라지자
비로소 거울 속에는 복제된 어제의 풍경들이
속속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제 죽음은 일상에 미만해 있다. 일상의 죽음은 그렇게 거울 속 허상에게도 검은 손아귀를 내민 셈이다. 가히 ‘죽음의 죽음’이라 할 사건이 우리가 아침마다 마주하는 거울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웃음’이 죽고, ‘좋은 아침’도 죽었다. 그가 부는 휘파람마저 “핑그르 돌다가 죽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내 이 모든 죽음을 끝내 보지 못하고 떠난다. 그는 이 모든 죽음의 근원이자 이유를 알지 못하고 떠나지만, 우리는 그 답을 시의 결미에서 보게 된다. 이 모든 죽음은, 그러니까 모든 것이 “복제된 어제의 풍경들”이라는 점이 근본 이유이다. 즉, 실체는 이미 죽어 부재하며, 거울 속 같은 허상들만 속속 살아나고 있는 것이 우리가 매일 죽음처럼 반복하는 일상이라는 전언이다.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 연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