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라지지 마 - 노모, 그 2년의 기록
한설희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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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큼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부르게 되는, 항상 부르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부르지 못한 것만 같은 그 이름, 엄마. 엄마의 모습을 자신만의 피사체로 담아낸 사진집 <엄마 사라지지 마>는 예순아홉, 노년에 접어든 주부 사진가가 처음으로 사진기로 표현하는 시각적 사모곡이자, 내밀한 고백이다. 2010년부터 2년간 매일 경기도 용인 자신의 집에서 서울 어머니의 집을 오가며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하루하루를 카메라에 담았다. 하얀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나기 시작할 정도로 노년으로 접어든 자녀는 이미 백발이 성성한 93세의 노모를 바라볼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사진가는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세월 동안 ‘엄마 바라보기’를 게을리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 긴 시간, 한 번도 그녀에 대한 진솔한 마음을 드러낸 적은 없다. ‘엄마, 사라지지 마.’



사진가는 ‘엄마’를 이렇게 정의한다. 「주름 골이 깊고 검버섯이 핀 여자. / 흐트러진 백발과 초점 없는 눈으로 침묵하는 여자. / 고단한 세월이 옹이처럼 얼굴에 박힌 여자. / 혼자 누워 있거나 밥을 먹는 여자.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자.」(p 33)

그것은 사진가 자신의 어머니인 동시에, 우리 시대 모든 어머니들이 살아낸 모성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길고 긴 산고를 겪고, 제 젖을 물리고, 제 살을 떼어주며 우리를 키워낸 엄마. 그 촌스럽고 어리석고 못난 이름, 한 남자만을 평생 바라보기로 약속한 순간 ‘여자’이기를 포기해버린 이름. 그래서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다. 카메라 셔터의 손끝에서 더욱 미련하고 촌스럽게, 그래서 더욱 아프게 그려진다.



어두컴컴한 바다 깊숙이 사는 심해어는 햇빛이 들어오는 해수면 위로 오르면 오래 살지 못한 채 죽고 만다. 엄마는 빛이 전혀 투과되지 않은 고독의 심연 속에서 산 심해어다. 사진가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품은 채 살았던 ‘엄마’를 세상의 빛이 비치는 양지로 머물도록 소리 내어 불러본다.

「엄마, 이거 봐요. 빛이 이렇게 좋아요. / 누가 밖에서 보면 어떡하니. / 구십 넘은 할머니를 누가 훔쳐본다고 그래요.」(p 55)




「저 하늘에 해와 달은 변함없이 비치지만 / 사랑하는 우리 엄마 어느 곳에 계시나요. / 비 옵니다. 비 옵니다.....」(p 79)

살아가면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잘 와 닿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잘 알지만, 어쩐지 막연하게 엄마와 나는 헤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는 착각에 빠져 살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종종 ‘엄마’에 관한 것은 ‘2순위’가 되곤 한다. ‘다음에 해도 되니까, 나중에 봐도 되니까’라는 말로 엄마보다는 연인을, 친구를, 그리고 나 자신을 앞세우고 살지는 않았던가. 그래도 언제나 이해해줄 것만 같고, 언제나 기다려줄 것만 같은 사람도 바로 엄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이 스마트폰으로 향할수록 정작 가까이에 있는 것을 놓칠 때가 있다. 바로 엄마다. 혼자 있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 시간은 물 흐르듯이 지나간다. 그러나 엄마 곁에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공중으로 금방 증발되는 아세톤처럼 줄어든다. 그래서 우리는 바보같이 정말 소중하면서도 가까운 존재의 부재를 너무 뒤늦게 깨달아버린다.

「늦든 빠르든 우리는 언젠가 고아가 된다. / 내 머리 위를 받치고 있던 커다란 우산이 순식간에 거두어지고. /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비와 눈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 것. / 그것이 부모를 잃는 경험이 아닐까.」(p 20)




한평생, 무겁고 가혹한 삶에 억눌려 살아온 사람이 명줄만은 질기게 길어 아흔 해를 사는 엄마. 그 긴 세월을 자식한테 행여 누가 될까 뒷전에서 숨죽여 바라보며 가슴 속 응어리마저 삭히며 살아온 그녀는 사람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쓸쓸한 무인도가 되었다. 그 모습이야말로 지은 죄도 없는데 평생 자신을 희생하며 우리를 키워낸 우리들의 엄마일지 모른다.




이 사진집을 읽는 도중에 문득, 엄마 생각이 나면 가슴이 뻥 뚫린 듯 명치끝이 아려왔다. 분명 내 옆에 있는데도 말이다. 엄마의 따스한 감촉을 잃은 지 어언 10여 년이 지났다. 이제야 엄마와 함께 보낸 하루하루가 ‘행복’이었음을 깨닫는다. 「엄마가 거기에 있다는 것, / 그 사실이 새삼 고맙다.」(p 60) 사진가의 솔직한 고백은, 사실 우리 모두의 고백이다. 마음껏 표현하고 사랑할 수 있는 엄마가 계신 지금, 미루지 말고 함께 행복을 나눠보도록 아들인 내가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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