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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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의지'(Free Will)의 차이?

 

작년에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말 중에 ‘의지의 차이’라는 것이 있다. 작년에 모 아이돌 여성 그룹 가수의 왕따설에서 비롯된 말이다. 한 멤버가 다리 부상 때문에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때로는 의지만으로 무리일 때가 있다.”는 글을 남겼다. 그 당시 스무 살도 안 된 멤버는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쁜 각종 연예 활동 스케줄에 몸과 정신은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트위터에 정신이 육체를 넘어서지 못하는 현실적 한계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글로 남겼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의 트위터는 부상으로 쉬고 있는 멤버를 향해서 어떠한 위로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각자의 트위터에 “의지의 차이^^ 우리 모두 의지를 갖고 파이팅!” 또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의지가 사람을 만들 수도 있는 건데... 에휴 안타깝다” 등의 글을 남겼다. 부상으로 잠시 쉬고 있는 멤버를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의지 부족으로 보는 듯한 뉘앙스가 있었다. 네티즌들은 특정 멤버 한 사람을 겨냥한 왕따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한순간에 ‘왕따설’ 논란이 일어나게 되자 트위터에 남긴 문제의 해당 글은 삭제되었다.

 

왕따 가해자로 의혹을 받은 가수는 살인적인 활동 스케줄에 지쳐서 힘든 상태를 트위터에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의 시선은 다르게 봤다. 나머지 멤버들은 첫 데뷔를 하면서 지금까지 쭉 아파도 참으면서까지 연예 활동에 매진했다. 그렇기에 막내 멤버의 심경은 ‘의지 부족에서 비롯된 태만’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표면으로 드러난 사건의 모습만 가지고 나머지 멤버들의 태도가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 없다. 문제의 멤버가 나쁜 마음을 가진다고 상상해보자. 다리 부상을 핑계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의지’를 느낄 수도 있다. 다른 멤버는 특정 멤버의 태도 문제를 근거로 들어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자유 의지(Free Will)의 차이'가 있을까? 자유 의지란, 어떠한 행동이 자기 자신의 의지 명령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는 우리 자신의 의지에 따라 실행되기 때문에 비도덕적이거나 비이성적 행동에 관해서 도덕적 책임을 수반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원한으로 의도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사람들은 나의 살인 행위를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의식적 의도를 이유로 비난한다. 왜냐하면, 사람을 죽이는 행위 그리고 그 행위 근저에 흐르는 사고 속에는 의식적 원천, 즉 '나는 그 사람을 싫으니까 죽이고 싶다'라는 자유 의지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은 자유 의지가 아니다

 

자유 의지는 인간의 내면에서 비롯된 형태이기 때문에 행위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필연적인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자유 의지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끊임없이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신경 과학자인 샘 해리스는 자유 의지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대표적인 학자. 그는 자유 의지를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두 가지 가정을 반박한다. 자유 의지가 있는 이상 우리는 과거에 이미 했던 행동이 잘못되었다면 그것 대신에 다른 행동을 취하게 된다. 그러한 행동을 이끌어 내는 의식적 원천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 두 가지 가정만 따져 본다면 자유 의지를 비판하는 입장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자유 의지의 허구성을 입증해주는 흥미로운 실험 하나를 소개하겠다. 신경과학자 벤저민 리벳은 피실험자들이 손을 움직이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피실험자들에게 자신들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갑자기 손이나 손가락을 움직이고 동시에 언제 그 결정을 내리는지 시계를 보고 측정하도록 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손을 움직이겠다는 의지가 발동한 후에 운동피질이 작동하리라고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의외의 실혐 결과가 나왔다. 피실험자들의 운동피질이 먼저 활성화된 후에 운동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진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이 실험을 통해서 0.3초의 시간 간격을 두고 뇌는 이미 운동을 결정하고, 그 과정이 시작된 후에야 인간은 그것을 깨닫는 과정의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명령하는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주관적인 사실에 의식한 착각일 뿐이다. 1분 뒤에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할 것이며 무슨 생각을 할 것인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모든 행위는 뇌에서 미리 결정된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는 우발적인 행위는 자유 의지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유 의지'라는 환상의 역설

 

샘 해리스는 자유 의지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 의지'라는 환상 속에서 우리 자신의 경험을 오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자신이 자유 의지의 힘으로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과정을 '외재적 요인에 구속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의미와 함께 놓고 본다면 모순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샘 해리스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을 입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유 의지의 잣대로 보는 인식의 관점 또한 의문을 제기한다. 자유 의지라는 믿음이 있기에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은 가해자의 의식적 결정에서 비롯된다고 보게 된다는 것이다. 샘 해리스는 우리가 타인의 잘못된 행동을 비난하는 이유를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믿음, 가치관, 목표, 편견 등이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있다면 잘못된 행동에 관해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자유 의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견해가 급부상함으로써 자유 의지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뇌가 행동을 결정하는 기관이라면 인간은 더 이상 도덕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범죄 행위를 막거나 처벌하는 법적 규범을 다시 써야 하는 일이 생긴다. 자유 의지의 존립 여부에 대한 문제는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로 적합하나 '도덕적 책임'을 동반한 자유 의지 문제는 한쪽 입장의 손만 들어주기가 어렵다. 우리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에 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고 보는 논리는 위험천만한 주장이다. 내가 타인에게 해를 입힌 죄에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행위를 부정하는 것과 동등하다. 그래서 도덕적 책임 자체를 불필요하다고 볼 수는 없다.

 

자유 의지 존재 논쟁을 통해서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사실은 딱 하나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는 사고와 행동을 하도록 명령하고 제어할 수 있는 완벽하고도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인간행위의 의사결정이 반드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자신의 책『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이렇게 썼다. “과거를 이해한다는 착각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과신한다.”  이 말을 빗대어 보자면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자유 의지’가 만들어 낸 과거를 이해한다는 착각 속에서 사고와 행동을 위한 미래의 결정을 예측할 수 있다고 과신하면서 살았는지도 모른다. 결국 자유 의지만으로 완벽한 사람을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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