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창 -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임지선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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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시궁창`의 준말이다. 미국의 유명 래퍼 에미넴이 주연한 영화 <8마일>에 나온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라는 대사에서 유래했다. 현시창’. 갈 곳 잃은 현대 젊은이의 좌절과 체념을 적절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꿈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도 많지만 꿈을 이루기는 힘들고 앞에 놓인 현실은 보잘것없다는 대조와 격차가 느껴진다.

 

우리 부모 세대는 열악한 현실 속에서 꿈의 크기마저 제한되는 삶을 살면서도 사회가 급성장하면서 기대 이상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많았다. 반면에 부모 세대의 자녀인 우리 청년 세대는 유례없는 풍요 속에 살지만 꿈을 이뤄가기엔 사회의 꽉 짜인 틀이 무겁게 느껴진다. 격심한 스펙 경쟁에서 살아남아도 크게 나아질 것이 있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누구나 계급 상승을 위해 악착같이 뛰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특히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우리 청년 세대들은 고액의 대학등록금, 좁은 취업의 문으로 인해 낭만적인 대학 생활 대신 아르바이트에, 외국어와 공모전 같은 스펙 쌓기로 내몰린다. 그것도 모자라 사회생활을 학자금 대출의 빚더미에서 시작하고, 취업준비생으로 몇 년을 보내기 일쑤다. 취업을 해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이나 비정규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출판가에는 청춘 마케팅이 대세다. 청춘의 절반은 월 평균 88만원을 받는 비정규직이며 고용불안과 조기 퇴직 등 앞 세대가 겪었던 불행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이 불행이 능력이 없거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88만원 세대를 한 번 더 절망케 한다. 청춘 마케팅의 핵심은 위로 마케팅이다. 위로는 '희망 없음'이라는 88만원 세대의 불치병을 달래주는 진통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구조적인 성찰 없는 위로가 근본적인 방향을 제시해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프니까가 청춘이다'라고 그 현란한 수사로 위로하기에는 한국의 청춘들이 너무나 지쳐있고 좌절의 심연이 너무 깊다. 독일의 문학가 괴테는 눈물 섞인 빵 한 조각을 먹어보지 못한 자는 인생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가 발견한 스물네 편의 사연 속에 등장하는 젊은 얼굴들은 고상한 청춘의 번뇌, 고민, 방황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아픈 청춘들이다.

 

대형 철강회사에서 근무하던 29세의 젊은 청년이, 5m 높이의 용광로 위에서 고철을 녹이는 작업을 하던 중 1600의 용광로에 추락하여 사망하는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일이 있었다. 당시 인터넷 게시판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한 누리꾼이 쓴 조시가 그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다. 끝내 동상은 세워지지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며 열악한 3D 작업환경 속에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의 고달픈 삶을 생각하게 하는 시였다.

 

광온(狂溫)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 '그 쇳물 쓰지 마라' 중에서 (p 22~23) -

 

카이스트에서 일어난 학생 4명의 자살은 '경쟁'이라는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 세대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카이스트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다. 이곳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이미 오랜 동안 경쟁을 해 왔다. 그렇다보니 이곳에서의 경쟁도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학생들도 상당수일 것이다. 십수 년을 경쟁만 하고 살아 온 이들에게 경쟁은 어찌보면 인생에서 필수적인 항목일수 밖에 없다. 그러나 동기부여를 위해 경쟁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연이어 터진 심각한 사고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공짜는 없다"고 말하는 카이스트 전 총장의 강경한 입장은 무섭게 느껴진다. 한 마디로 현 사회에서 경쟁은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 설사 이로 인해 누군가가 불미스러운 일을 당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더 무서운 사실은 전 카이스트 총장의 반응이 아니라 이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의 반응이다. 카이스트 자살 사건으로 인해 한 때 경쟁중심주의 교육의 문제점을 이슈화했지만, 그것도 잠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미친듯이 경쟁을 부채질하는 '정상적인 삶'으로 돌와왔다.

 

『현시창』속 스물네 편의 사연은 절망적이면서도 우울하다. 노동, 돈, 경쟁의 프리즘으로  청춘의 어두운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희망적인 위로 한 마디도 없다. 저자는 위로 대신에 '현시창'을 "현실(現)을 직시(視)하고, 청년 세대에게 우울한 미래를 안겨다 주는 나쁜 사회와 싸우기 위해 창(槍)을 들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선동적인 문구만 가지고 '청춘이 절망하는 나쁜 사회'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는 절판이 된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을 꽤 인상 깊게 읽은 독자라면 이 문구를 기억할 것이다.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라'. 우 교수는 『88만원 세대』절판을 선언하면서  "죽어도 바리케이트를 치지는 못하겠다는 20대만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청춘이여, 정신 좀 차려라"고 말하며 청년 세대를 향한 일갈도 덧붙였다. 청년 세대의 얌전한 모습에 적잖이 실망한 나머지 『88만원 세대』의 저자는 청년들이 짱돌을 들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고 절판까지 언급했다. 
 
나쁜 사회에 맞설 수 있는 창과 짱돌을 들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88만원 세대가 청년 담론을 제기한 지도 5년이 지났다. 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 길 주변을 확인해야하듯이 청년 세대가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나아갈 길을 찾으려면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가는 길을 막는 '나쁜 사회'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창과 짱돌을 손에 쥐고 있어도 무슨 소용이랴. 

 

청년 세대가 착취를 당한다고 해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로지 돈을 목표로 안정만 추구하는 영악한 젊은이',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 '나약한 세대'. 지금의 30~40대, 소위 '386 세대'가 말하는 '88만원 세대'는 이렇다. 이러한 기성세대의 지적에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할 수 있겠다. 하지만 청년 세대 중에서도 자신이 처한 암담한 현실을 모를뿐더러 정말 자신보다 '현실이 시궁창'인 청년들의 분노에 귀담아 듣고 공감하는 이가 아직은 드물다. 그저 자신과 관련 없는 남 이야기로 치부한다.  

청년 세대가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보는 차별의 창(窓)을 부수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청년 세대에 대한 역지사지, 나아가 감정이입의 노력이 중요하다. 정말 고통 받는 청년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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