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류시화 제3시집
류시화 지음 / 문학의숲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의 시련으로부터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이 남자가 사는 법

 

 

 

 

 

 

 

빈센트 반 고흐  「귀가 잘린 자화상」 1889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넓은 보리밭 한가운데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버리지 못했던 한 사나이가 있었다. 자신의 가슴을 향해 총을 겨눈 지 이틀 만인 1890년 7월 29일 동생이 지켜보는 앞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정신질환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눈을 감은 뒤에야 세상은 그를 알아주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인상주의의 거장, 빈센트 반 고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서양화가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고흐는 정말 '불행'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릴 정도로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겪었다. 사랑하던 여인과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하고 아버지까지 사망하자 큰 상실감에 빠진다. 광적인 신앙을 갖기도 했고 자기 학대를 일삼기도 했다. 술과 담배, 정신질환으로 몸과 마음은 쇠약해져만 갔다. 고흐는 잘 알려진 대로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았고 아를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고흐에게 정신병원은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병동에 생활하는 동안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흐는 "삶이 다른 데가 아닌 정원에서 펼쳐진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슬프지 않다"라고 털어놓기도 한다.

 

고흐는 정신병원 내부에 마련된 정원을 거닐면서 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오히려 세상과 단절된 정신병원에서의 생활은 고흐의 예술혼을 꺾지 못했다. 정원에 있는 꽃과 나무에 둘러싸인 채 홀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고흐에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정신병원에서 놓여나자마자 들판으로 달려나가 꽃핀 나뭇가지마다 찾아 다니며 온종일 그림만 그렸을 고흐의 모습이 상상된다. 지독한 삶의 시련으로부터 만신창이가 된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그림에 몰두했던 것이 그를 화가로서의 삶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Vecent,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돈 맥클린의 노래 'Vecent'의 아름다우면서 슬픈 멜로디와 가사는 고흐의 불행한 사연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고흐가 불행한 삶의 고통들을 어떻게 극복했고 견뎠는지 잘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리고 고흐가 왜 삭막하고 음침한 정신병원 내부의 정원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여러 점 그렸는지도.

 

고흐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정원 속에 들어가면 꽃과 나무와 대화를 나눈다."라고 했다. 세상에 의해서 고집스럽고 괴퍅한 '아웃사이더'로 낙인 찍힌 채 살아가야만하는 고흐의 서글픈 심정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만약에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은 채 홀로 남의 정원 한가운데서 꽃 한 송이 앞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면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만 해도 짐작이 간다.  

 

고흐는 꽃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자신의 예술을 알아주지 못한 세상에 대한 자조 섞인 비애를 뱉어냈을까 아니면 사랑하는 연인과 밀애를 나누듯이 꽃의 아름다움을 높이 사는 감미로운 표현을 했을까? 그가 정확하게 어떤 말을 했을지 확인하는 방법은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고흐는 어떻게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게 된 자신의 처지를 꽃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했을 것이다. 불행한 삶을 살다간 고흐의 인생을 연상시키게 하는 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류시화 시인이 쓴 <오월 붓꽃>이다. 이 시에는 고흐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붓꽃과 그를 심은 화자가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빈센트 반 고흐 「붓꽃」 1889년

 

 

 

 

봄눈이 내리던 날

오월 붓꽃을 심었지요

병을 앓고 난 끝이었는데

당신은 말했지요

아직 눈이 몇 차례 더 내릴 거라고

그 덕에 뿌리가 강해질 것이라고

늘어진 쥐똥나무 가지를 바람에 묶어 놓고

잠이 덜 깬 흙을 어루만져 주자

당부할 필요도 없이

봄은 말하는 듯했지요

잎을 내기 위해서는 상처를 견뎌야 한다고

 

(중략)

 

신비에 가까운 보라색 얼굴

겨우 겨울을 넘긴 가난과 화려

일시적인 소유에 기뻐하는 순간이 지나면

마지막 꽃잎을 떨구면서 오월 붓꽃은

속삭이는 듯했지요

나는 당신이에요, 나는 죽지 않아요

또 여러 번의 봄이 지나고

이곳에 나 혼자 남는다면

그래도 혼자 남는 게 아니라는 걸

오월붓꽃이 말해 주겠지요

 

(생략)

 

 

- <오월 붓꽃> 부문, p 58~59 -


 

 

마음의 병으로 괴로워하는 화자는 봄눈이 내리던 5월에 붓꽃을 심었다. 그는 애초부터 남은 삶을 더 이상 연명하기를 바라지도 않을 정도로 회의적이다. 그러던 중 화자는 우연하게 자신이 심은 붓꽃의 작은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붓꽃은 화자에게 말을 건넨다.  "아직 눈이 몇 차례 더 내릴 겁니다. 그 덕분에 뿌리가 강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게 되면 이파리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때까지 차디찬 겨울, 즉 삶이 안겨준 시련으로 인해 생긴 상처의 고통을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힘든 시간이 지나가고나서야 붓꽃은 화려한 보라색을 발하면서 아름다운 꽃 한송이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붓꽃도 화무십일홍(花無十一紅)이라는 불변의 과정을 거스를 수 없는 법. 화려했던 보라색 꽃이파리가 하나씩 땅으로 떨구어지기 시작하면서 붓꽃은 낙화(落花)를 눈 앞에 두게 된다. 그러면서 붓꽃은 자신을 심어주고, 보살펴주고 아껴준 화자에게 애정이 담긴 말 한 마디를 남긴다. "나는 당신이에요, 나는 죽지 않아요."  자신의 죽음 때문에 삶의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붓꽃이 화자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였다.

 

붓꽃의 꽃말은 '기쁜 소식'이다. 아름다움을 발산하기에는 붓꽃에게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붓꽃은 낙화의 시간이 다가온다고해서 절대로 절망하지 않는다. 붓꽃의 생은 여기서 한 번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내년 봄에 다시 개화하기 때문이다. 꽃봉오리가 활짝 펴기 전까지 이어지게 될 추운 겨울철을 견대내면 된다. 붓꽃 한 송이가 피고 지는데까지의 시간적 과정은 인간의 흥망성쇠를 압축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는 기쁜 일, 불행한 일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줄곧 행복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불행이 찾아올 수도 있다. 우리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행 앞에서 스스로 괴로워하고 비탄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불행한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다시 찾아오게 될 희망을 기다린 채 살아간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세상으로 받은 정신적 상처를 혼자 치유한다고해서 빨리 낫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의 정신적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먼저 따뜻한 구원의 손길을 건내줄 수 있고 '공감'과 '연대'로 끌어안아야 한다. 고흐는 운이 좋게도 자신의 외골수적인 성격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행복함을 맛볼 수 있었다. 동생 테오 반 고흐, 닥터 가셰 박사, 우체부 룰랭 씨 그리고 넓은 정원 속에서 그가 먼저 말 걸어오기를 기다렸던 수많은 꽃과 나무들. 

 

 

  

 

 내 인생의 화연영화는 바로 너와 함께 하고 있는 그 순간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사자성어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의미한다. 영화 탓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슬픔이 묻어 있는 느낌이다. 아름다운 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는 아쉬움, 그래서 더 깊게 묻어나는 애잔함까지. 그래서 나는 한 때 잠시나마 화양연화는 별도로 '존재해서는 안되며' 삶의 모든 시간은 이른바 '전성기'이든 아니든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류시화 시인의 <화양연화>를 읽는 순간, 그런 인식은 단지 화려했던 시간 뒤에 찾아오는 아쉬움과 후회를 어떻게든 잊어버리기 위한 자기합리화적인 위선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마르크 샤갈  「생일」 1915년

 

 

 


 스물두 살의 봄이었지

 새들의 비밀 속에

 내가 너를 찾아낸 것은

 책을 쌓아 놓으면 둘이 누울 공간도 없어

 거의 포개서 자다시피 한 오월  

 내 심장은 자주 너의 피로 뛰었지

 나비들과 함께 날들을 세며

 

 다락방 딸린 방을 얻은 날

 세상을 손에 넣은 줄 알았지

 넓은 방을 두고 그 다락방에 누워

 시를 쓰고 사랑을 나누었지

 슬픔이 밀려온 밤이면

 우리는 조용한 몸짓으로 껴안았지

 

 어느 날 나는 정신에 문제가 찾아와

 하루에도 여러 번 죽고 싶다. 죽고 싶다고

 다락방 벽에 썼지

 너는 눈물로 그것을 지우며

 나를 일으켜 세웠지

 난해한 시처럼 닫혀버린 존재를

 

 내가 누구였는지 아는 사람은

 너밖에 없었지

 훗날 인생에서 우연히 명성을 얻고

 자유로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그 때가 나의 화양연화였지

 다락방 어둠 속에서 달처럼 희게 빛나던

 그 이마만이 기억에 남아 있어도

 

 

 - <화양연화> 부분, p 68~69 -

 

 

 

이 시는 제목과 내용만 본다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그 중에서 뜨겁게 사랑을 나누던 과거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는 분명 '사랑 노래'이다. 연시(戀詩)는 대개 실연의 상처를 노래하거나 사랑의 대상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함으로써 임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자의 고독과 상처를 드러내는 특징을 갖는다. <화양연화>의 전체적 내용을 본다면 과거 사랑을 나누었던 임과의 행복했던 시절을 읊조리고 있지만 마지막 5연에서 화자는 지나간 과거의 시절이 자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화자가 그리워하는 '사랑'이란 단순히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화자는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동떨어진 채 살고 있는 '난해한 시'인이다. 어떻게 보면 <화양연화> 속 화자야말로 주류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던 예술가 반 고흐의 삶과 가깝게 느껴진다. 시인인 화자는 자신의 문학성이 널리 알려지지 못한 현실에 대해서 좌절감에 시달리다 못해 정신적으로 큰 문제로 고민하게 되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 직전까지 오게 된다. 하지만 화자에게는 본인의 슬픔을 이해해줄 수 있는 연민의 눈물을 흘릴 줄 알며 나락에 빠진 불쌍한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너'라는 연인이 존재하고 있다. 시 속에 등장하는 '나'의 연인 '너'는 화자가 쓴 난해한 시마저도 이해할 정도로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시의 마지막 연에서도 암시하고 있듯이 '나'는 현재 '너'와 단절된 상태 중이다. 그리고 또 다시 그 아무도 돌봐주지도 않는 외톨이 시절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후회한다. 시인 '나'에게 있어서 화양연화는 유명한 시인이라는 직함이 만들어주는 명예와 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화자의 진정한 화양연화는 자신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고 힘들 때마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안아주고 보살펴 주었던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었으리. 이제는 '너'의 존재가 남기고 간 다락방 안에서의 추억은 '고독'이라는 어두운 감정에 지배당해 점점 기억의 망각 속으로 퇴색되어질 뿐이다.   

 

 

 

 

 우리는 '류시화'의 시가 더 필요하다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 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 <옹이> 전문, p 12 -

 

 

 

동양적 자연관에 비추어 보면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즉, 자연을 자신과 분리시킨 객관적 관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그 속에서 자연과 합일된 삶을 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상태를 물아일체(物我一體) 등으로 표현한다.

 

두 번째 시집 발표 이후 무려 15년 만에 쓴 류시화 시인의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에 수록된 시들은 대체적으로 '물아일체'의 자연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주체인 '화자'와 객체인 '자연', 즉 꽃, 옹이, 뭉돌, 반딧불이 등 일체 및 조화를 이루었다는 감정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물아일체적이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동양적인 자연관과 상통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시인이 단지 '인간 대 자연'이라는 범위의 틀 속에서 조화만을 강조하고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물아일체적 사상을 좀 더 '인간 대 인간'으로 전위함으로써 현대사회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공감'과 '연대' 그리고 '조화'를 그리워하고 있다. 시인은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공감'과 '연대'의 감정을 끄집어내어 시를 통해 감정이 빈곤한 독자들을 위해 환기시켜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고통, 불행, 시련을 견뎌줄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기도 한다.  

 

시집의 추천사를 쓴 이문재 시인은 우리에게는 시가 더 필요하며 더 많아져야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내'가 '나'를, '내'가 '너'를 만나기 힘들어진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속세의 명예와 부에 대한 탐욕을 놓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빈곤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는 '류시화'의 시가 더 필요하다. 네 번째 시집이 언제 발간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빛나는 문장들이 벌써부터 나오기를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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