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이 된 전자 발찌  

요즘 세상이 날이 갈수록 뒤숭숭하다. 글 시작부터 이런 내용을 꺼내기에는 그렇지만 며칠 전, 어느 여대생이 성폭행당한 뒤에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전국의 모든 여성들이 아직까지도 성 범죄 위험에 쉽게 노출되어 있음을 또 한 번 상키시켜준 사건이 되고 말았다. 최근의 사건 이전부터 한 건씩 나오는 여성 및 유아 성 범죄 사건들이 발생하자 성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더욱 더 강화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성 범죄자의 재범을 막기 위한 전자 발찌(또는 팔찌)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위치 추적기가 달린 전자 발찌를 도입함으로써 성 범죄자의 위치 추적을 파악하여 이들의 행동을 주시한다는 목적이다.  그러나, 성 범죄자의 전자 발찌 도입에 대해서 찬반으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반 인륜적 범죄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찬성론자들이 있지만, 반대로 개인의 인권보호와 사생활 침해 우려 등으로 반대론자들도 있다. 찬반 논쟁 끝에 결국에는 전자 발찌 착용 제도는 도입되게 되었으며 형법상 성 범죄자들뿐만 아니라 미 수범자들도 발찌를 착용하는 대상자에 포함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전자 발찌의 용도를 무색케만든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성 범죄자 전과자가 자신의 발목에 착용한 전자 발찌를 끓고 잠적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전자 발찌를 착용한 성 범죄 전과자들이 또 다시 성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 사이에서는 전자 발찌의 목적과 실효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유토피아>에서 본 범죄자에 대한 형법 처리 문제

성 범죄자 사건이 어김없이 일어나게 되면 전자 팔찌 착용 논란 이외에도 항상 같이 불거지는 것이 성 범죄와 같은 반 인륜적 범죄자들에 대한 사형 제도이다. 사형 제도 문제 역시 전자 팔찌 문제의 찬반 입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강력한 처벌 vs 인권, 생명권 보호' 로 입장이 충돌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자 발찌 제도 찬성론자들은 범죄자들의 인권 및 생명권 보장 차원으로 사형제 대신에 전자 팔찌 착용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성 범죄자들에 대한 최고 법형은 정립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찬성론자들의 생각은 영국의 정치가 토머스 모어(Thoams More)의 명저 <유토피아>에서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강력 범죄자에 대한 형법에 대한 논의는 토머스 모어가 활동하던 16세기 영국에서도 사회적 쟁점이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작품 속에는 이상국가 유토피아에서 생활해 본 적이 있는 학자 라파엘 논센소와 이 책의 저자인 토머스 모어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영국과 유토피아를 비교하면서 사회 문제에 대해 논쟁적인 대화를 나누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라파엘 논센소는 모어에게 범죄자에 대한 영국의 가혹한 처벌에 대해서 먼저 의문을 제기한다. 여기에서는 절도범들이 언급되는데, 절도범죄자들에게도 교수형을 내리는 점은 사회적으로 부당한 형법이라고 말한다. 요즘 말로 말하자면 라파엘은 사형제 폐지를 옹호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는 이에 대한 새로운 방안으로 톨스토리아라는 또 다른 이상국가의 제도를 소개하면서 범죄자들을 처형하는 대신에 강제 노역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나라를 위한 강제 노역을 함으로써 공공 근로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라파엘이 주장하는 톨스토리아 형벌 제도

라파엘이 주장하는 강제 노역 형벌에 대한 내용 중에서는 지금의 전자 팔찌 착용과 유사한 제도가 소개되어 있다.  

  죄수들은 모두 다 아무도 입지 않은 특별한 색깔의 옷을 입습니다. 그들은 얼굴 면도는 사실상 하지 않지만 머리카락은 양쪽 귀 바로 위까지 짧께 깎습니다. 그리고 양쪽 귀 중 한쪽 일부분을 잘라냅니다. 
  
 (중략)

  각자의 노예에게는 그가 어느 지역 소속인지를 표시해 주는 배지가 주어집니다. 그가 그 배지를 달지 않거나, 지정 거주 지역을 벗어나거나, 다른 지역 출신 노예에게 말을 걸거나 해도 역시 사형 죄로 다스려집니다. 탈주에 대해 말한다면, 그런 일은 계획만 해도 실제로 실행에 옮긴 것과 똑같이 간주됩니다. 

  -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류경희 역, p 80~81 -      

그리고 라파엘은 톨스토리아의 형벌 제도가 죄수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으며 범죄의 과오를 벗어나 선량한 시민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제도라고 말하고 있다.   

고대 중국의 순자 선생은 성악설을 주장하여 인간의 선천적인 악은 수양이나 교육을 통해서 후천적으로 고칠 수 있다고는 말하지만, 과연 범죄자들이 이런 죄의 대가를 받는다해도 못된 성격을 쉽게 버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라파엘은 한 술 더 떠 톨스토리아 형법 제도에 적응된 전과자들은 여행객 안내인(!)으로 고용해도 괜찮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무기를 소지 할 수도 없으며 전과자들의 모습이 일반 사람들 속에서 눈에 띄기 때문에 도망간다거나 재범을 저지를 우려가 없다고도 말한다. '난센소'라는 성을 가진 인물답게 언변 역시 난센스적이다.  

  

 전자 발찌 제도에 대한 나의 생각

소설 속 이상국가의 형벌제도와 지금의 팔찌 제도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지만, 두 제도가 범죄자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대신에 평생 '범죄자'라는 낙인을 달고 살아야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유토피아> 속에서는 톨스토리아 형벌 제도의 폐해를 확인할 수 없지만, 이 글이 발표된 지 400여 년이 된 지금, <유토피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 폐해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다.  

상대방의 팔이나 발목에 전자 팔찌나 발찌가 채워져 있다면, 우리는 그가 성 범죄자인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성 범죄자'라고 인식하고 또는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범죄자가 팔찌를 채운다고 해서 그가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 인간의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되거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경우에도 사회집단 속에서 '범죄자'로 규정된다면 제2의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사회학적 용어로 '낙인 효과' 라고 말한다. 팔찌를 찬 상태에서도 또 다시 성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낙인 효과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팔찌나 발찌를 착용한 전과자들 중에서 자신의 죄를 스스로 반성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자 팔찌, 발찌 제도는 성 범죄자들의 개과천선을 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또 반 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막는 수단일 뿐이다. 발찌를 착용한 성 범죄자들이 반성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언론에서는 '전자 발찌'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 전자 발찌가 성 범죄자 형벌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이며 시기상조이다. 이제 이 제도가 합법적으로 시행한 지 2년 째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제2의 범죄가 등장하는 것은 '낙인 효과'에 의해서 생기게 되는 필연적인 행위이다. 단지, 전자 발찌를 구성하고 있는 금속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전자 발찌 제도를 폐기해서는 안 된다. 지금으로서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의견을 딱히 제시할 수 는 없지만, 먼저 사람의 힘으로 전자 팔찌와 발찌가 손상되지 않게 강력한 금속으로 교체를 해야될 것이다. 그리고 착용자들에 대한 신상정보와 이동경로에 대한 정보는 사법기관 간의 공조와 통합적 관리 체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의 제도에 대해서 조금만 보완만 된다면 어느 정도 강력 범죄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10-20 0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0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