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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 경제학 최대의 변수는 '애정'이다, 개정판
존 러스킨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물 펌프 우화
하루 종일 햇볕이 내리쬐는, 살아 숨 쉬는 생물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죽음의 땅인 사하라 사막에는 물을 퍼다 마실 수 있게 설치한 펌프 하나가 있었다. 광대한 사막을 건너는 카라반(Caravan)들에게는 그 펌프는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의 오아시스이다. 그런데 펌프 옆에는 다음과 같은 푯말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이 펌프에 물을 붓고서 펌프질을 하면 그대가 간절히 원했던 시원한 물이 틀림없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위 밑을 파면 물이 가득 담겨진 병이 있을 겁니다.
그 병을 꺼내어 펌프에 물을 채우십시오.
만약에 병에 든 물을 한 모금이라도 먼저 마시게 되면 물은 모자랍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물은 틀림없이 그대가 충분히 마시고도 남을 만큼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물을 다 쓴 후에는 그 병에다 다음에 오는 카라반들을 위해 물을 채우고 마개를
꼭 닫아주십시오.
추신: 병에 든 물을 급하다고 먼저 마시면 안 됩니다.
만약에 자신이 뜨거운 햇살 아래 사막을 건너고 있는 카라반이나 여행자라고 생각해보자. 물 펌프의 우화처럼 이런 상황에 마주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일부는 푯말대로 다음 사람을 위해서 병에 물을 채워 놓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펌프질하는 것보다는 바위 밑에 있는 병에 담겨진 물을 마셔버린다. 너무나 목이 말라서 죽을 것만 같은데 펌프질 여러 번 해대는 것보다는 간단히 병에 든 물을 마시는 것이 쉽고 간편한 방법이니까. 하지만 물 펌프에 거쳐 가는 카라반들이 푯말대로 양심을 지켜지지 않으면 뒤에 오게 될 카라반들도 후자의 행동을 취하게 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 의해서 되레 손해를 받게 되면 괜히 또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꼴을 못 본다. ‘나도 손해를 봤으니 너도 나처럼 당해봐라’는 식이다. 결국 본인도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며 마음속에 담아둔 피해 의식은 고스란히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지게 된다.
우화 같은 상황에 처한 우리나라 현실
비록 짤막한 우화이지만, 우리 삶에는 사막의 물 펌프를 마주한 것처럼 이런 유사한 경우가 일어나고 있다. 8.15 광복절 행사에 언급된 이후에 불거진 통일세 도입 논란, 무상교육 찬반 논쟁 등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떠오르고 있는 두 쟁점은 다음 세대들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크게 갈라져버린 여야당의 찬반 의견을 정부는 쉽게 조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현 세대에게는 손해 볼 일은 없다지만, 나중에 미래의 세대들에게는 치명적인 손해를 부담을 주게 된다.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찬반 의견 양상에도 세대 간의 갈등 및 불균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 세대인 유신 세대부터 386 세대까지 이어져 온 승자 독식 체제로 인해서 세대 내 경쟁이 불가피해진 현 20대들을 ‘88만원 세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성세대에게 저임금노동으로 착취당하며,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서 직업 시장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20대의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가 20대들에게는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좁은 취업의 문을 넓혀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안들을 내놓지만 우리나라 20대 취업률은 제자리걸음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 사회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개인의 이익 추구가 인류 전체의 이익으로 연결해준다고 말하지만, 모든 인류 전체가 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빈부 격차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자본주의 경제의 과제이다. 결국에는 인류는 분배의 불평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부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혹은 가지지 못한 자들끼리 경쟁을 하게 되어 그 경쟁 속에 밀려나면 평생 가난 속에서 살아야 한다.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한창 자본주의의 나무가 자라고 있던 19세기 중엽 영국 역시 빈부 격차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대해 존 러스킨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라는 책에서 개인의 이익을 최선으로 치고 있는 자본주의를 비판하였다. 그는 모든 이들이 이익이 될 수 있는 인간적인 경제학을 제창하였다. 그 인간적인 경제학에는 ‘정직’이 존재하는 믿음이 바탕 되어 있다. 그리고 불평등한 부의 분배를 고용주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잘못된 노사 관계 시스템이 원인임을 지적하고 있다. 러스킨은 노동다운 노동을 위해서는 고용주는 자신이 부여한 임무에 걸맞은 보수를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지급해줘야 하고,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이끌고 있는 고용주를 믿고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Win-Win 전략’인 것이다. 하지만 바람직한 노사 관계가 이룩되기 위해서는 서로 위하여 아껴주는 애정과 그 애정을 통해서 형성되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고용주가 24시간 열심히 일 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쥐꼬리만 한 급여에다가 쉬지도 않고 노동자를 부려먹는다면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일 할 맛이 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돈을 벌어도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푸어(Working poor)의 삶을 살게 된다.
러스킨의 주장은 자본주의의 폐해가 지배당하고 만 현재 사회에서는 진부하지만 직접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가 않다. 고용주가 노동자들에게 합리적으로 임무를 부여하여 합당한 급여를 지급해준다면 노동자들도 좋은 노동 환경 속에서 일을 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가 있다. 그리고 공장 전체의 운영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듯이 윗사람이 잘하면 아랫사람도 따라서 잘하게 되는 법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직에 기초한 정책
하나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수식과 용어로 가득 찬 경제학 지식과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경제학자 출신 정치인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냉철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사회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나 정치인들에게는 믿음과 정직이라는 정신적인 가치가 구축되어야 한다. 러스킨은 정직이 정책에 기초해서는 안 되며 정책이 정직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깊어지는 마당에 국민들의 마음을 되찾기 위해서 정부는 ‘공정한 사회’ 만들기를 내세우고 있다. ‘정직’이라는 단어의 뜻에는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바른 미덕을 내포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취업률이 상승하는 사회, 세대 간의 갈등과 불신을 벗어나 화해의 장을 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공정한 사회’ 만들기가 정직이라는 두 글자를 가지고 정책에 기초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