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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평점 :
나로호 개발 기술자들의 말 못하는 고민
나로호 2차 발사가 실패한 지 이제 두 달이 지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 발사체가 하늘 위로
솟아올라갈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서 많은 시민들이 전남 고흥군에 있는 나로우주센터로
모여들었다. 나로호 개발 기술자들은 작년에 있었던 1차 발사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
또 다시 10개월 동안 연구에 매진했다. 그들에게는 우리나라의 우주 연구 발전을 위해서하는
임무이지만 사실은 임무로 의한 그들만의 고충도 있기 마련이다. 기술자들에게는 연구소 안에서
의 생활이 무척 답답했을 것이다. 연구소에 갇혀서 하나의 문제에만 매달리다 보니 수면 시간은
부족하고, 보고 싶은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지게 된다.
나호로 2차 발사 하루 전에 개발에 참여한 러시아 기술자가 자해 소동을 일으킨 것도 스트레스로
인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몇 차례의 발사 연기 발표도 있었지만 천신만고 끝에 2차 발사가
시작되었다. 이번만은 한국 국민의 꿈과 희망을 담아 우주로 뻗어나가길 바랬건만, 발사 이후
공중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나로호우주센터로 모인 사람들은 이번 발사도 실패를 하지 아쉬움
속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나로호 발사 실패에서 제일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한 사람은 나로호
개발 기술자들이었다. 우리나라의 기술로 구성된 독자적인 우주 발사체를 만들기 위해서 오랜
세월을 연구에 몸을 바친 사람들이다. 이전에 발사 실패를 많이 겪다보니 이번 나로호 발사 2차
실패 자체에 대해서 많이 아쉬워하지 않았다. 1년도 채 안 되는 연구 기간은 기술자들에게는
심신을 힘들게 시간이었지만 2차 발사의 성공을 위한 연구 기간치고는 충분치 않은 점에 대해서
크게 아쉬워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우리나라 우주 개발의 현실에도
안타까워했다. 3차 발사 날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오늘도 나로우주센터의 기술자들은
나로호의 실패 원인에 대해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과학의 나락(那落)호가 되어버린 나로호
나로호 개발 기술자들 입장에서 더욱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 과학에 대한 우리나라 대중들의
인식과 시선일 것이다. 하필이면 나로호 발사 다음날이 남아공 월드컵 개막이라서 나로호 열기는
금방 식어버렸다. 그러나 만약 나로호가 2차 발사에 성공하였더라면 나로호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이어졌을까? 대중들은 나로호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길래 굳이 나로호우주센터로
모이는 걸까? 몇 몇 사람들은 나로호가 단순히 우주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우주 연구를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 즉, 인공위성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나로호가 우주 어디에 날아가든 말든 대중들은 우리나라의 16강 진출 여부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과학에 대한 대중들의 냄비 근성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차례의 나로호
발사 실패 소식에 대해서 대중들은 기술자들의 실력 부족 탓으로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나로호 하나만을 위해서 고생한 기술자들의 심장에 비수를 꽂을 말이다. 우주 개발 기술자
들의 실력이 곧 우리나라 우주 산업의 현실이라고 결부하기 쉬운데 꼭 기술자들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자들 위에 지배하고 있는 엘리트 계층의 과학 인식 부족에도 문제가 있으며
그들에게도 발사 실패에 대한 잘못이 있다. 이번 나로호 개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대 정부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 기술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있었다. 하지만 과학 육성
정책은 정부의 집권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펼친 산업화 육성 정책은 우리나라 과학 기술 육성에도 기여를 했으나 단기간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성과주의가 우리나라 과학 발전을 저해시키고 말았다. 아무리 훌륭한 과학
기술을 가졌다 하더라도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실험에 대한 탐구 정신를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과학 발전은 진전되기는커녕 영영 노벨상을 탈만한 과학자들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기득권자인 엘리트 계층의 경직된 사고는 과학에 무관심한 대중들을 만들게 되었으며
지금의 이공계 기피 현상까지 오게 되었다. 나로호의 추락은 나락(那落)으로 빠져버린 우리나라
과학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열악한 현실 속에서 나로호가 발사에 성공하길 바란다는
것은 꿈도 야무진 일일 뿐이다.
거기 진짜 천문학자 좀 바꿔 봐요
과학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과 엘리트 계층의 무지함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칼 세이건이 살아있을 당시 미국은 1977년부터 보이저 계획이라는 거대한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이저 계획은 현재 진행형이며 지금도
보이저 1호와 2호는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물들을 지구로
전송하고 있다. 우주 개발 사업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미국의 사례를 보게 되면 미국의
대중들도 과학에 대해서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국도 꼭 그렇지만
않은 거 같다.
『코스모스』에는 칼 세이건이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소개되고 있다. 천문대에서 일을
하고 있던 칼 세이건은 한밤중에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이었는데 천문학자를 바꿔달라고 하였다. 취객이 평생 한 번 갈까 말까 할 천문대에 전화를
걸었던 이유는 밤하늘에 알 수 없는 빛이 나는 물체를 봤는데 그것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칼 세이건은 그것이 혜성일 것이라고 말하자 상대방은 혜성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어봤다. 그러자 칼 세이건은 혜성은 밤하늘에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라고 간략하고 상세하게
대답해줬다. 이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다가 취객이 다시 하는 말.
“거기 진짜 천문학자 좀 바꿔 봐요.”
진짜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의 입장에서는 취객의 말에 참으로 황당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에피소드에 대한 칼 세이건의 결(結)이 의미 심장하다.
핼리 혜성이 1986년에 다시 나타난다면 정치인들 중에 크게 겁을 먹는 이들이
생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또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벌어질까 자못 궁금하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홍승수 역, p 180 -
1910년에 핼리 혜성의 꼬리가 지구를 스쳐 지나갔을 때만 해도 자신들이 세계의 지배자라고
자처한 미국과 유럽과 같은 제국의 사람들은 지구 종말의 초래에 호들갑을 떨었지만
칼 세이건이 그렇게 궁금해 하던 우스꽝스러운 일은 다행히도 디지털 시대에는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몇 몇 사람들은 혜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혜성이라는 자연
현상에 대해서 안다고 해도 혜성이 얼음 덩어리라는 아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칼 세이건은
혜성 에피소드를 통해서 과학을 모르는 대중의 무지함을 비판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학 앞에서
대중들을 바보로 만들어 놓은 정치인들까지 꼬집고 있다.
엘리트 지배계층과 과학의 불편한 만남
칼 세이건은 사람들이 과학을 기피하고 무지하게 된 원인을 고대 역사 속에서 찾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는 자연계의 질서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 탈레스를 비롯한 이오니아 지역의 자연철학자
들은 우주의 구성요소와 조화에 대해서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주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은 관측과 실험이라고 주장하였다. 세계 최초로 일식(日蝕)과 피라미드의 길이를 측정한
탈레스부터 시작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한 에라토스테네스까지 이들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을 체계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의 등장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과학이란 신성한 지식이며 소수 집단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험
자체를 부정했다. 그의 학문은 학파로 발전하게 되면서 오랜 세월 축적되어 온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제목인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이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고대 그리스 지배 체제에까지 영역 활동을
넓힘으로써 과학을 소수 기득권자들만의 지식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부유한 재산을 가졌으며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어쩌면 과학 발전이 한걸음 빨라지지 않을 것이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머리로만 하는 일을 좋아했을 뿐이지 몸으로 하는 일은 싫어했다.
과학 실험과 측정은 하나의 육체노동으로 생각했으며 결국 그런 육체노동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노예라고 알리는 셈이다. 그러니 귀족이 누가 자신보다 낮은 노예의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귀족들은 과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지 몰라도 과학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고대 중국에서도 볼 수 있다. 중국의 과학사를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의 상황과
유사하다. 독자적으로 종이를 만드는 기술을 만든 채륜이 등장하였으며 곽수경이라는 사람은
중국의 천문학 발전에 기여를 했다. 그러나 서양의 문물이 중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중국
과학사에도 잘못된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마테오 리치, 아담 샬을 대표로 하는 크리스트 교
신부와 수도자들이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유클리드 기하학을 소개
하였다. 중국을 지배하고 있던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서양의 학문들을
검열하기 시작했다. (뭐든지 검열하려는 중국의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사대부들은 서양의 학문으로 인해서 국가 체제가 전복되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그들의 권력은
청나라가 망할때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과학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그리고 강대국으로 빨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것도 과학에 무지한 지배계층들
때문에 말이다.
대중, 과학 기술자 그리고 과학 기술 관리자
나로호 2차 개발하기 전,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금성을 관측할 수 있는 첫 우주 범선
‘이카로스’를 하늘에 쏘아 올렸다. 우주 범선은 태양광과 태양풍 등을 이용해 우주를 떠다니는
미래형 우주선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이번 일본의 우주 범선 발사는 세계 최초라는 점과
일본이 자력으로 개발해 발사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카로스 발사 이전에 일본도 여러 번의 발사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과거에 우주선 발사 실패했을 때 우주선 관련 관리자들은 이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의 의사를 표했으며 원인 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
국민들은 우주선 발사 실패에 대해서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또 다시 재발사가 되어
성공하기를 빌었다. 그들의 올바른 자세와 태도가 있었기에 당연히 이번 우주 범선의 발사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코스모스(Cosmos)'의 뜻은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우주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우주
연구, 즉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과학이 발전되기 위해서는 대중, 과학 기술자 그리고
기술 책임을 담당하는 관리자. 이들의 삼각관계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은 이웃나라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의 우주 개발의 성공 사례나 다른 나라의 잔치가
되어버린 연말 노벨상 시상식을 보면서 시샘한다거나 우리나라 과학 산업이 미흡하다고
한탄하지 말고 우리나라 과학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과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굳이 학창 시절처럼 과학 법칙을
달달 외울 필요는 없다. 신문이나 TV에 과학 관련 기사나 소식을 통해서 우리나라 과학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으며 과학계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현상과 트렌드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과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서는 대중적으로
출간한 과학 관련 도서를 읽는 것도 좋다. 칼 세이건의 책뿐만 아니라 대중들을 위한 과학도서가
많이 출간되어 있다. 과학 기술자들에게는 과학적 성과를 중요시하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성과에 급급하다보면 제대로 된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다. 기술자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위에 있는 관리자들의 임무도 중요하다. 관리자들도 성과에 눈을 멀게 되면
우리나라 과학의 현 수준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관리자들의 성과주의가 밑에 있는
기술자들을 부추기게 만든다. 결국에는 ‘개미구멍에 공든 탑이 무너진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지나치게 성과에 매달려 만든 나로호에 조그마한 결함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실패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철저한 원인 규명에
노력해야 한다. 과학 발전은 오랜 시간동안 관련 지식들을 하나씩 하나씩 축적되어 완성되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과학의 수준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준에
걸맞은 현실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대중, 과학 기술자, 담당 관리자가 코스모스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여 그 결실로 나로호 발사 성공과 ‘과학 강대국’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코스모스 꽃이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