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에 사는 즐거움 - 이황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8
이황 지음, 김대중 편역 / 돌베개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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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퇴계 이황 
 

퇴계 이황과 관련된 것 중에서 뭐가 떠오르는가? 1000원짜리 지폐 속에 간지 나는 소지섭 

눈빛을 발산하는 할아버지라고 맨 처음 떠올리게 될 것이다. 조선 유학자, 도산서원이라고 

떠올렸다면 학창 시절 헛되이 보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만약에 이기호발(理氣互發) 

,  고봉 기대승과의 논쟁이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정말 똑똑한 사람이다. 고등학생  

시절, 윤리 시간에 이황의 이기호발설과 율곡 이이의 이통기국(理通氣局)설에 대해서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서양 철학 사상에는 막힘이 없었고 이해를 했었으나 동양  

철학 사상 쪽에는 유독 약했었다. 특히 이황과 이이의 사상은 ‘이(理)’‘기(氣)’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모의고사에는 항상 이런 문제가 출제되곤 했었다. 

간략하게 두 이론을 설명하자면 이황의 이기호발설은 인간과 자연은 각각 이의 발현과  

기의 발현으로 구분되어 이루어져 있는데 ‘이’의 존재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 이이는 이는  

하나로 통해 있지만 기는 개별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이는 ‘기’의 존재를  

강조하고 있다. 공부했을 때는 이 두 사람의 사상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차이점이 

무엇인지 이해를 했지만 막상 모의고사 시험 문제를 풀면 가끔 틀리기도 했었다.  

무엇보다도 심각했던 것은 또 다음 모의고사 문제를 풀다보면 이황의 이기호발설이
이이가 주장한 설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몇 몇 사람들 중에서도 1000원짜리  

지폐 속 인물이 이이인지 이황인지 구분 못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이황과 이이에 

대해서 헷갈려한다. 조선 시대 성리학의 양대 산맥이면서도 얼핏 이름도 서로 엇비슷하다 

보니 한 번은 착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황이 단순한 성리학자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는 성리학자이면서도 벼슬을 지낸 정치가였으며, 시인이면서도 인문주의자였다. 
  

 

 우리도 그치지 말고 만고상청 하리라

우리나라 문학 교과서나 각종 문제집에 그나마 많이 실려 있는 퇴계의 작품이  

‘도산십이곡 (陶山十二曲)’이다. 참고로 과거 수능 시험 지문으로 출제되기도 했었다.  

도산십이곡은 퇴계가 도산서원 주변의 자연 경관을 보고 감상한 것을 적은 총 12곡의  

시조로 구성된 작품이다. 전반부를 이루고 있는 6곡은 도산 서원 주변의 경관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도산십이곡의 시작을 알리는 1곡은 자연에 대한 퇴계의 지극한 사랑이  

엿보인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초야우생(草野愚生)이 이렇게 산다고 해서 어떠하랴 
  하물며 자연을 천석고황(泉石膏肓)을 고쳐 무엇하랴

              -『도산에 사는 즐거움』김대중 역, <도산십이곡> 제1곡 전문, p 69 -  


퇴계는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연 속에 사는 삶을 권유하지만 그들은 

그런 퇴계를 시골에 묻혀사는 어리석은 사람 (초야우생)이라고 무시한다. 하지만  

퇴계는 주눅이 들지 않는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고질병(천석고황)이라고 말하면 

 세속적인 삶에 물든 그들에게 굳이 정신적으로 좋은 병을 고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한다. 
 

후반부를 이루는 나머지 6곡은 학문과 수양에 임하는 의지와 자세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다. 전반 6곡에서는 자연 사랑에 대해서 노래하다가 후반부의 시작인 7곡부터는  

학자로서의 퇴계의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1곡은 후반 6곡 중에서 가장  

뛰어난 문장이다. 전반에서 강조한 자연에 대한 예찬과 후반에서 강조하고 있는 학문  

수양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산(靑山)은 어찌하여 만고(萬古)에 푸르며
  유수(流水)는 어찌하여 주야(晝夜)에 그치지 않는가
  우리도 그치지 말고 만고상청(萬古常靑) 하리라 
 

                 -『도산에 사는 즐거움』김대중 역, <도산십이곡> 제11곡 전문, p 80 -

푸른 산은 오랜 세월(만고)동안 푸르며, 흐르는 물은 밤낮(주야)을 가리지 않고 계속  

흘러간다. 즉, 청산과 유수는 자연의 영원성을 뜻하고 있다. 마지막 구절에는 그런 자연의 

영원성을 본받아 학문 수양에 정진함으로써 영원히 푸른 존재(만고상청)가 되겠다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11곡에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인간 세상에도 자연의 영원한 질서와 

조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퇴계의 도학(道學)적 이상을 볼 수 있다.   

 

 

 

 퇴계의 한시를 읽는 3대 키워드, 매(梅). 송(松). 죽(竹)

퇴계의 생애 전반에는 학문적 칭송을 얻음과 동시에 왕도 인정할 성공적인 정치 생활을  

누려왔지만 말년은 전반과 비교하면 어두운 시절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퇴계의 

몸은 약해져만 가고 결국 병에 걸리게 되었다. 그래서 병든 몸을 치유하기 위해서 그는  

스스로 벼슬자리에 물러나게 되었다. 왕은 퇴계의 능력은 높이 사고 있어서 그의 은퇴를  

만류하였지만 퇴계는 왕의 부탁을 정중히 거절하였다. 그리고 홀로 속세와 떨어져
있는 자연이 있는 곳에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속세에서 지내면서 가지고 있었던 왕에  

대한 충신(忠臣)적인 마음은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퇴계는 자신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명(命)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왕에게 어필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 깜깜 무소식이 

었다. 이전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세상의 태도에 퇴계로서는 무척 섭섭하면서도 외롭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퇴계는 한시를 읊으면서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자 하였는데 대부분  

매화(梅), 소나무(松), 대나무(竹)를 주제로 한 작품이 남겼다. 퇴계가 자연을 좋아하는 

성격인 만큼 한시에서도 매화, 소나무, 대나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드러나 있다. 이 세  

가지 자연물 중에서 퇴계는 매화를 무척 좋아했다. 그에게 매화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벗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매화를 통해서 속으로 담아두고 있었던  

왕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였다.  


   매화가 봄을 맞아 찬 기운 좀 띠었기에
  꺾어다 마주했네 옥창(玉窓) 사이로
  천산(天山) 밖 벗님이 길이 그리워
  향기가 축나는 것 못 견디겠네

  -『도산에 사는 즐거움』김대중 역, <매화가지 꺾어두고(원제: 折梅揷置案上  

     절매삽치안상)> 전문, p 41 -  

 

시 속의 화자는 ‘벗님’을 향한 정(情)이 담은 매화를 꺾어 사랑하는 벗님에게 바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벗님은 ‘천산 밖’에 있다. 화자와 벗님이 천산으로 인해서 서로 단절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벗님’은 한양에 살고 있는 왕이며 화자는 퇴계인 것이다.  

벗님에게 바치지 못한 채 풍기는 매화의 향기는 왕에 대한 그리움이다. 퇴계는 자신에게  

힘든 시련이 찾아오거나 고독감을 느끼게 되면 소나무와 대나무를 통해서 고통을  

이겨내려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나무꾼은 쑥대처럼 천시하지만  

   산옹(山翁)은 계수나무처럼 사랑하누나. 
  푸른 하늘까지 우뚝 솟아오르려면 
  풍상을 몇 번이나 겪어야 할지. 
 

 -『도산에 사는 즐거움』김대중 역, <소나무를 심으며(원제: 種松 종송)> 전문, p 34 - 

 

작품 속 산옹은 화자, 곧 퇴계 자신을 뜻한다. 나무꾼으로 표현되는 속세 사람들은 소나무 

를 무시하지만 오히려 퇴계는 오랜 시련의 시간 속에서도 계속 자라는 소나무를 사랑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퇴계와 소나무는 동등한 존재로 부각시키게 된다. 퇴계는 자신과  

소나무가 겪어야 할 미래의 시련(풍상)에 대해서 걱정한다. 결국 퇴계의  걱정은 그대로  

적중되었다. 퇴계에게 찾아온 첫 번째 시련은 병이었던 것이다.    

 

 

  사흘 동안 한양에 눈이 내려서               
  찾아오는 사람 발길 뚝 끊겼지.              
  얼마나 쌓였나 병석에서 물으니
  싸늘한 이불이 쇠붙이 같네.

  (중략)
  나무 끝이 눈에 묻혀 보이질 않고
  가지마다 꾹꾹 눌러 꺾이려 하네.
  참으로 기특하네 한두 줄기가
  천길 높이 솟아올라 꼿꼿함 보여주니.

  (하략)

  -『도산에 사는 즐거움』김대중 역, <눈 속의 대나무(원제: 雪竹歌 설죽가)> 중에서,  

     p 28 -   

 

 

이 작품을 쓰고 있을 당시 퇴계는 병을 앓고 있었다. 하필이면 전국적으로 눈이 내리게 되어서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에 눈이 많이 쌓이다보니 육체적인 고통에 혼자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노학자에게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나보다. 병 져 누워있는 퇴계의 방은 병문안 찾아오는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차디찬 공간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퇴계는 ‘싸늘한 이불’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고 있다. 정말 아프면 서럽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시의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퇴계의 마음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그는 눈에 쌓여 반쯤 뒤덮인 대나무를 보게  

된다. 가지에도 눈이 쌓이다보니 꺾일 우려가 있지만 줄기는 쌓인 눈 사이에서도 꼿꼿하게 서  

있음으로써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략에 생략되어 있지만 퇴계는 그런 눈 속의 대나무를 

통해서 강인한 삶의 의지를 느끼게 된다. 
 

 

 지연합일의 세상을 꿈꾸다

 

퇴계가 남긴 글들은 400여 년 전에 쓰여 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글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르침들은 현재까지도 그 가치가 유효하다. 퇴계가 이룩한 학문적 성과는 바다 건너 일본 

과 중국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학자로서의 퇴계에 대한 이미지가 깊이 인식되어 

있다 보니 문학적 가치는 많이 가려져 있다. 대부분 자연을 예찬하는 작품들은 단순히 혼자 

서 자연 경관을 즐기려고만 하는 현실 도피적인 경향이 있다. 하지만 퇴계는 현실을 도피하 

기 위해서 자연을 혼자 즐기지 않았다.『도산십이곡』에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연을  

즐길 것임을 권하기도 하였으며 자연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서 깨우침을 얻으려고 하였다. 중국의 유학자 왕양명은 지식 획득에는 행위를 합일 

되어야 이루어진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함으로써 그의 사상은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의 유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퇴계의 도학적 이상인 지연합일 

(知然合一) 은 유학 사상을 지배하고 있던 지행합일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도산십이곡』뿐만 아니라 자연을 노래한 한시들도 진일보된 퇴계의 유학  

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연구 대상이다. 한시와 시조 작품들이 퇴계의 유학 사상에  

대한 연구 자료에 활용을 하는 것은 퇴계의 문학적 가치를 한층 더 빛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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