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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영혼의 거울 ㅣ 다빈치 art 18
프란시스코 데 고야 지음, 이은희 옮김 / 다빈치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며칠 전, 모 검색 사이트에서 연재하는 미술과 관련된 글에서 고야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내가 본 글은 단순히 고야의 유명 작품들을 열거하여 쓴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광기를
주제로 한 낭만주의 그림들에 대해서 썼는데 그 글에서 고야의 그림이 있는 것이다.
그림 제목은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판화집 [카프리초스] No.43
이성을 가지고 있는 어느 사나이가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책상 위에는 사나이가
무엇을 쓸려고 했는지 종이와 펜이 놓여 있다. 잠에 빠져 있는 사나이 뒤에는 밤에서만
볼 수 있는 야행성 동물들이 모여 있다. 부엉이 떼와 고양이 두 마리는 자고 있는 사나이를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그리고 날아다니던 박쥐 떼들이 이제 막 사나이
곁으로 다가오려고 하고 있다. 잠을 자게 되면 인간의 움직일 수 있는 모든 힘들은 잠을
자고 있는 동안 멈추게 된다. 결국 이성의 힘을 잃어버리게 되면 야생 동물로 상징되는
잘못된 미신과 악한 본능들이 우리의 마음과 두뇌에 침입하여 결국에는 그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통제가 되지 않는다. 고야는 인간이 이성을 잃어버리게 되면 초래하는
위험성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리고 먼훗날, 이 그림의 제목처럼 자신도
잠들어버린 이성 때문에 괴물이 되고 만다.
고야가 쓴 고야에 대한 모든 것?
책 앞 표지에는 저자명에 ‘프란시스코 데 고야’라고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공식적인
출간물이나 자서전을 출판한 적이 없다. (제목에도 ‘고야’가 들어가 있고, 저자명에도
‘고야’라고 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고야의 그림이 실려 있는 자서전인 줄 알았다)
고야가 친한 친구였던 마르틴 사파테르에게 보낸 편지들과 그가 그린 판화집
『카프리초스』이외에는 나머지 글은 다른 사람이 쓴 것이다. 고야의 생애에 대해서는
이탈리아 미술사가 마게리타 아부르체세가 집필하였고, 고야의 후기작들에 관한 글은
디스토피아 소설『멋진 신세계』의 작가로 알려진 올더스 헉슬리가 썼다. 참고로 책을
펼치고 속표지 뒷장을 살펴보면 조그맣게 책에 대한 구성이 적혀 있다. 그러니 책의 전체
내용이 고야가 모두 쓴 것이 아니라고 해서 오해를 사지 않기를. 그리고 고야의 모든
작품들은 실리지 않았다. 판화집『전쟁의 참상』『어리석음』『투우』 시리즈 중 일부
몇 점만 실려 있고, 대신에『카프리초스』를 구성하는 총 80점의 판화는 모두 실려 있다.
그러나 책 한 권에는 고야에 대한 모든 것이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검은 그림
사실 내가 알고 있는 고야의 그림은 최근에 검색 사이트에서 본 그림까지 포함하면
별로 없다. 그림 출품 당시 모델과의 스캔들을 낳게 한 그 유명한 마하 부인, 살기와
광기가 서린 눈으로 자식들을 잡아먹는 시간의 신 사투르누스, 나폴레옹 병사들에게
총살당하는 마드리드 시민들을 그린 그림은 익히 알고 있었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보게
된 고야의 그림은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에서 실린 모래 구덩이 속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개가 그려져 있는 그림과 수잔 손탁의 <타인의 고통>에서 나온
절단된 채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을 그린『전쟁의 참상』시리즈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최근에 고야의 그림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온『거인』까지.....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에서는 개가 그려진 그림이 고야 작품이 아니라는 설이
있음을 밝혔다)
고야의 그림들이 대부분 어둡고 무시무시한 공포의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다.
병으로 인해서 청력을 상실한 이후부터 그 유명한 ‘귀머거리의 집’에서 일명
‘검은 그림’ 연작을 그린 것은 유명하다. 하지만 고야는 방 안에 틀어박혀
이런 무시무시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그것도 귀가 안 들린 이후부터 말이다.
안 들리기 이전에 어두운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다.
고야는 친불(佛)주의자였다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후반기에 귀머거리가 되는 불행한 일을 겪은 것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가난에 괴로워한다거나 살아가면서 고생한 일은 없다. 젊은 시절에 그린 그림들은
종교화 몇 점 있었다. 고야가 종교화를 그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대성당에 종교적인 성향이 짙은 종교화를 그리기도 했다. 카를로스 4세 밑에서
궁정 화가로 일했을 때의 그림들도 슬슬 조금씩 검은색의 사용이 늘어났지만
광기, 공포를 담은 표현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는 궁정 화가 생활 대부분 카를로스 4세의
왕족들과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의 그림이 무시무시한 그림으로
변한 시기가 프랑스가 에스파냐(구 스페인)를 침략해서부터이다. 그는 에스파냐에서
일으킨 프랑스 군들의 잔혹한 살상 행위들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고 그 유명한
『1808년 5월 3일』과 판화집『전쟁의 참상』을 완성하게 된다.
그런데 고야의 생애 중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고야가 나폴레옹 1세의 형인 조세프
보나파르트의 궁정 화가로 일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 중에는 친불(佛)주의자가
많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미술사가 마게리타 아부르체세의 평이 없는 걸로 보아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고야의 은밀한 활동 사항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지기 않은 거 같다.
그리고 그가 왜 자신의 고국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침략자 나라의 왕족 밑에서
궁정 화가로 활동한 이유에 대한 기록도 없다. 단지 이 제한된 텍스트만으로 고야가
친불주의자라고 단정 짓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인간의 광기를
표현한 그림과 훗날 그리게 될 ‘검은 그림’ 작업에 몰두한 이유가 자신의 친불 행위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자신의 땅에서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잔혹한 행위를
목격하고 치를 떨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야는 적국의 궁정 화가로 일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궁정 화가로서의 명예도 얻는 부족함 없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런 호화로운 삶으로 인해서 고야가 가지고 있었던 이성은 잠들어 버리고
그의 영혼과 그림들은 점점 괴물이 되어갔다. 신은 그런 고야의 모습이 아니꼬웠던
것일까? 반(反) 애국적이면서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고야에게 신이 내린 잔인한 벌은
바로 청력 상실이었다. 승승장구하던 고야의 삶이 한 순간에 바뀌게 된 사건이었다.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고야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그나마 행복했던 시간은 어둡고 폐쇄적인 방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뿐이었다. 세상 사람들과 단절된 채, 자신이 살면서 보고 느낀 세상의
추악함과 어둠, 광기들을 거대한 벽화에 담아냈던 것이다. 벽화 속에는 고야가 목격한
인간의 악한 본능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악으로 오염되어 있었던 자신의 영혼을
그림 속에 표현하였다. 앞에서 언급했던 모래 구덩이 속에 빠진 개를 그린 그림이
‘검은 그림’ 연작 중 하나이다.
고야 <개>, 1820~1823년 제작
개의 몸은 이미 모래 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고 언젠가는 머리도 모래 구덩이 속으로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자포자기한 것일까? 그림 속의 개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보이지 않으며 이미 곧 다가올 최후를 맞이하고 있다.
모래 구덩이 속에 빠진 개는 악의 구렁텅이 빠진 젊은 고야의 영혼이다. 그는 이미
악의 구렁텅이에 깊숙이 빠진 이상 다시 나올 수가 없다. 악의 구렁텅이 안에는 죽음이
고야의 영혼을 기다리고 있다. 머리만 남은 개는 허공에 주시하고 있다. 그가 보고 있는
곳에는 검은 형상이 보인다. 죽음의 신일까? 아니면 고야의 영혼이 저질렀던 죄를
씻을 수 있게 해줄 구원의 신일까? 하지만 개가 본 것은 죽음의 신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완성된 지 5년 뒤에 고야는 원죄의 삶을 마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조국인 에스파냐가 아닌 그의 그림 속에 악마로 표현한 사람들의 나라,
프랑스 보르도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악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거울
그의 그림들은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 때문에 보는 이들은 그의 그림이 무섭다고 하지만
반대로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높게 칭송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사악한
본능을 사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그런 고야만이 할 수 있는 미적 재능은
‘검은 그림’ 시리즈와『전쟁의 참상』에서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결국에는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추악함을 유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영혼의 거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거울에 갇혀버린 고야의 젋은 영혼도 볼 수 있다. 비록 고야의 그림은
두 눈으로 보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우리가 그의 그림을 외면하게 된다면 우리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악의 본성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요즘 사악한 인간들이 판치는
세상인만큼 고야의 그림은 지금도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인용 및 '고야' 관련자료
[광기와 어두운 욕망 - 낭만주의 미술] 우정아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글
http://navercast.naver.com/art/western/3143
[개 - 프란시스코 고야] 우정아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글
http://navercast.naver.com/art/western/3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