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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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577]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현실주의자 vs 낙관주의자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미국의 스톡데일 장군은 베트콩에게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다. 수용소에는 스톡데일 장군뿐만 아니라 많은 미군  

병사들이 잡혀 있었다. 그들은 하루하루를 고문에 시달렸다. 스톡데일 장군도  

수용소에서 무려 8년이나 갇혀 있을 동안 베트콩의 무자비한 고문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장군뿐만  

아니라 함께 수용소에 갇혀 있던 미군 병사들도 고국으로 귀환하였지만 절반만이  

살아서 돌아왔다. 포로 생존자들이 악명 놓은 수용소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 스톡데일 장군은 사고방식의 차이가 포로들의 생사를 결정하였다고 한다.
수용소에 갇힌 포로들을 사고방식에 따라 현실주의자와 낙관주의자로 나누어진다.
낙관주의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게 되면 크리스마스에는 꼭 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반면 현실주의자는 크리스마스가 와도 수용소에서 나가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고는 언젠가는 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앞으로 다가올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대비하는 마음을 가졌다.  

두 유형의 포로 중 과연 누가 살아남았을까?  결국에 수용소에서 나와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은 현실주의자였다. 낙관주의자들은 크리스마스에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차게 되지만 막상 탈출하지 못하면 금방 낙심하였다. 그리고 명절이 또 한번 

찾아오면 그 때는 꼭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희망과 낙심이 반복된 그들은  

상심에 빠지게 된다. 상심이라는 부정적 사고방식에 지배당한 낙관주의자들은 면역력이  

점점 약해지다가 결국에는 죽음에 맞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장군의 이름을 따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패러독스가  

말하고 자 하는 것은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사람이 미래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스탈린 시대의 비극, 웃음으로 희화화하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서 슈호프의 수용소  

일상에서의 비인간적인 삶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을 억압하는 소비에트 체제의 진상을
폭로하였다. 작품 속 슈호프의 다소 어리숙한 인간적인 면모와 대비되어 수용소의  

억압적인 상황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절망적인 수용소 생활의 하루를 행복한 하루라고 말하는 반어적 표현은 슈호프의  

비극적인 상황을 희화화하고 있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중략)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 A. 솔제니친『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이영의 역, p 206 - 

 

그리고 슈호프의 기나긴 수용소 생활의 일수를 언급하면서 고통의 연속이었던 수용소의  

생활을 강조함과 동시에 희화적으로 비극적 상황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 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삼천육백오십삼 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A. 솔제니친『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이영의 역, p 206 - 
 

 

 전쟁 박물관은 두 번 이상 가지 않는다

하지만 솔제니친이 고발한 시대는 역사 한 켠 구석으로 사라졌다. 작품 속 배경은  

구시대적이며 그의 작품은 과거의 한 시대를 말해주고 있는 문학적 유물이 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독자들도 솔제니친의 작품을  ‘다크 투어리즘’의 시선으로  

읽기 마련이다.  이 작품을 교훈 삼아서 어두웠던 역사에 대해 알게 되고 반성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전쟁 박물관에 두 번 이상 가는 사람이 있던가?   

아무리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전쟁 박물관에 자주  

관람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즉, 역사의 사회 고발적 내용을 그린 문학작품은  

단순 일회성 독서로 끝나기가 쉽다. 그리고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지금까지도  

잘못된 역사가 낳은 희생자로만  생각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솔제니친이  

말하고자 한 것처럼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를 어두운 스탈린 시대의 희생자로  

여겨야만 하는가?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의 행복한 시간들 

슈호프도 어떻게 보면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극복한 현실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
작품에는 수용소에서 풀려나는 슈호프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결말을 통해서 그가  

3653일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들을 이겨내고 수용소에서 풀려났음을 암시하고 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비참한 수용소의 생활을 직시한 현실주의적 사고방식이  

10년의 수용소 형기를 마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그는 사소한 일상에서  

많은 행복을 느끼고 있다.  

  아, 이 순간만큼은 완전히 우리의 것이다! 윗사람들이 상의를 하고 있는 동안  

  아무 곳이나 따뜻한 곳을 찾아 불 옆에 앉아 조금 후에 시작될 고된 노동의  

  시간에 대비하는 것이다.  (중략) 난로가 없어도 이 순간의 자유로움이란  

  너무나 행복한 것이다. 
 

                - A. 솔제니친『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이영의 역, p 58 - 

 

힘든 노동 끝에 찾아오는 짧은 휴식 시간은 슈호프에게는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달콤한 시간이다. 비록 자신이 원했던 수용소 밖의 자유로움과 비교하면 보잘 것 없지만
슈호프는 나름 수용소 생활에 길들어져 고통스러운 수용소의 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쉬는 시간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식사 시간이야말로 슈호프가 가장  

좋아하면서도 행복 엔도르핀이 최고조로 달하는 시간이다. 슈호프는 식사 시간이  

되면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수용소 형기가 끝나게  

될 날을 인고하면서 일상적인 삶으로의 회귀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슈호프는 먹기 시작한다. (중략)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슈호프는 모든 불평  

  불만을 잊어버린다.  (중략) 그래, 한번 견뎌보자. 하느님이 언젠가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테지! 

                   - A. 솔제니친『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이영의 역, p 175 - 
 

 

 만약에 솔제니친이 낙관주의자였더라면?

이 작품처럼 고통스러운 수용소 생활을 그린 또 하나의 작품은 빅토르 E.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있다. 작가가 경험했던 일들을 수기 형식으로 쓴 이 작품 속에서도 

스톡데일 패러독스와 유사한 사례가 등장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낙관주의들은  연말만  

되면 수용소에 벗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절망 속에 빠지다가 죽음을 맞게 된다. 빅토르 프랑클은 힘든 수용소 생활과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죽음의 두려움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면서도 생이별한 아내와 재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언젠가는 수용소에서 살아서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장르는 소설이지만 이 작품 역시 작가의 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이다. 솔제니친은 반 소련 체제 관련 조직을 결성한 죄로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11년이라는 세월 동안 여러 곳의 정치범 관련 수용소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이미 자신의 나라 소련의 잘못된 정치 체제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고, 기존의 정치 체제를 전복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수용소 생활로 인해서 

젊은 시절부터 뿜어져 나온  혁명적인 열정을 접어야했던 것이 아쉬웠던 것일까?  

그는 스탈린 체제가 지난 뒤에서야 사회에 대한 분노를 소설 속에서나마 표출하였다.
자신이 못다 이룬 것들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솔제니친은 길고 긴 악명 높은 수용소  

생활을 극복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그도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슈호프처럼  

고통 속에서의 행복을 느끼는 방식을 터득했을지도 모른다. 먼 훗날, 수용소를 벗어나  

잘못된 사회 체제를 비판하는 작품을 쓰는 날을 고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라는 걸출한 작품이 등장하게 된다.
만약에 솔제니친이 낙관주의자였더라면, 다시 말하자면 수용소 생활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혁명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지 못했던 것에 대한 분노와 절망으로  

살아갔더라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대문호(大文豪)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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