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8년 만의 재회 
 

오랜만에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권을 읽었다. 8년 만이다.
많은 시간을 흘러 사람이 성장하면 키도 커지고 체형도 변하듯이 

이 책도 그런거 같다.
구판의 책표지에는 김정희의 ‘세한도’ 였으나
개정판에는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로 되어 있다.
책 크기도 구판보다 조금 켜졌고, 디자인도 Simple하면서도 예전보다 나아졌다.

하얀 색 바탕에 중간에 한국화를 배치하여 여백의 미(美)를 보여주고 있다.
꼭 박물관에 그림이 전시되어 보는 거 같다.

그리고 2권도 출간되었다.
한창 1권을 읽고 있을 때 2권이 나오기를 기다리곤 했었는데.....
5년 전에 백혈병으로 돌아가셨다.
투병 생활 중에서도 우리나라 그림에 대한 연구를 손에 놓지 않았다.
아마도 2권 출간을 위한 구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돌아가신지 1년이 지난 후에야 생전에 구상하고 있었던 자료들을
한국미술을 연구하는 그의 지인들이 완성한 것이다.
지인들 덕분에 2권의 유고 자료들은 빛을 보게 될 수 있었다. 
 

 

 

 미술 교과서와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8년 전, 그 때는 중학생이었다.
1권에는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들이 있었고
당시 미술 선생님께서 한 번 읽어보라고 하셨기에 읽게 된 것이다.
이 책이 우리나라 그림에 대해 쉽게 설명했다고는 하지만,

중학생의 나이에 한자어의 문장과 동양 사상 내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비록 내용은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는 계기로 우리나라 옛 그림들에 더욱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1권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다.  

  


 

깎아지른 절벽의 배경, 바위 위에는 선비가 편안히 턱을 괸 채 흐르는 물을

그윽이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선비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시끄러운 속세를 떠나 편안하게 자연을 감상하는 선비를 그린 것이다.
항상 이 그림을 보게 되면 나도 선비처럼 편해지기도 하면서도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미소 지으면서 물을 바라보는  

그림 속 선비가 부러운 느낌도 들게 된다.  

 

미술 교과서로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사진 속 그림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교과서와 같은 사진 속 그림이었는데도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왜 보는 것의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산수화와 이 책의 산수화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교과서의 그림들은 크기가 작은 반면에  

이 책은 그림 한 점 시원하게 한 페이지 전체를 장식한다.
그러니 이 책만 읽어도 전시회 안 가도 그림 한 점 제대로 감상하는 셈이다.
미술 교과서에는 모든 나라와 모든 인류의 역사를 대표하는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다.
즉, 동, 서양의 유명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을 그림들이 교과서 한 권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는 교과서일 뿐이다. 단지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내용일 뿐이지
감상용으로 쓴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시험 기간만 되면 학생들은 잠깐이나마 예술 애호가가 된다.
‘~주의’ 에는 무슨 화가의 그림, 이 그림을 그린 화가, 그림의 표현 기법 등등.....
그림과 그림 제목, 화가 같은 세세한 정보들을 달달 외운다.

문제 형식은 객관식이라서 답 찾는 것이 쉽다.
시험지에 흑백으로 처리된 그림 사진이 나오면
기억력을 발휘하여 바로 망설임 없이 보기에 답을 고른다.
이제 시험이 끝나고 채점을 하면 좋은 점수를 받는다.
그리고 동시에 공부했던 미술 지식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예술 애호가에서 성적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평범한 학생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요즘은 중,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예전 우리가 공부한 것보다 내용과 구성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예전 교과서보다 수록된 그림 자료가 많다든지
내용면이 훨씬 더 나아졌다고 해서 무조건 교과서가 좋아졌다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를 봐도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옛 그림을 보고 즐기는 것은 갑자기 생기는 능력이 아니다.
자신이 창조한 게임 캐릭터가 꾸준히 레벨 업 상승을 시켜 능력을 키우는 것처럼
옛 그림에 대한 심미안(審美眼)을 가지는 것도 미술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자주 그림을 보면서 느낄 줄 알아야 키워지는 능력이다.  
  

 

 

 선비의 미소가 아름다운 이유

1권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나는 가끔 ‘고사관수도’ 가 있는 페이지를 찾아 다시 본다.
언제나 이 그림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히, 선비의 미소가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동, 서양화에 나오는 인물 중 최고의 미소일 것이다.  

                                                                 


        
단연 미술 작품 중 최고의 미소라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가 있다.
그녀의 미소는 
보는 사람들을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모나리자의 미소를 알 수가 없다.  

일반적인 기분이 좋아서 웃는 거 같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뭔가 우울한 기분이 감도기도 한다. 

보는 사람마다 미소를 보는 입장이 달라진다.
결국 그녀는 관객에게 사악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사람들이 미소의 의미를 알지 못한 것을 비웃기라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고사관수도’ 의 선비는 다르다.
선비의 미소는 모나리자보다 아름답다.
우리는 그림만 봐도 선비가 왜 웃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모나리자처럼 비웃지도 않는다.  

그림 속 주인공인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보다는
그림 속을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절벽과 절벽에 자라고 있는 식물,  

그리고 바위와 흐르는 물.
그것은 관객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함께 감상하자는 장면을 연출한다.
선비의 미소는 자연을 보는 즐거움에 취하여 웃는 동시에
그림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함께 즐거움을 느끼자고 권하는 것 같다.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과 자연의 합일(合一)과 동시에
그림 속 인물과 그림 밖의 관객의 합일을 이루고 있다.

요즘 대형 미술 전시회가 많이 열리고 있다.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해서 영국 근대 화가, 그리고 조각가 로댕까지.....
올해에는 외국에서 온 미술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찾아왔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안 보면 후회할 전시회들이다.
하지만 왜 우리나라와 관련된 대형 전시회는 자주 열지 않은 걸까?
그리고 전시회 홍보도 많이 차이가 난다.
외국에서 온 다양한 색상의 그림들은 손님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들 왔다고 법석거린다.
반면 터주대감인 우리나라 그림들은 조용히 관객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외국 그림들처럼 소란스럽게 자랑하며 내세우는 것도 아니다.
관객에게 여유를 주면서 천천히 음미하며 바라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관객도 그림과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옛 그림에만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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