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01-86] 고리오 영감

 

 

 

 

 

 기러기 아빠의 눈물 

 

요즘 그리스에서 온 경제 위기라는 불청객이 우리나라에도 찾아와 민폐를 끼치고 있다.
지난 달 말에는 환율이 1200원대를 상승하다가 한 때 1270원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경제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환율이 고작 70원 올랐다고  

왜 그렇게 호들갑 떠냐고 그럴 것이다.
물론 환율이 오르면 경제적인 면에서 좋은 점도 있긴 하다.
그러나 환율이 올라갈수록  피해를 보고  

실제적으로 속이 타들어갈 사람들은 ‘기러기 아빠’ 들이다.
먼 타국에 공부하고 있을 자녀들에게 돈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러기 아빠들이 보낼 수 있는 송금은 1500달러~2000달러라고 한다.
환율이 1000원인 경제적 상황에서 환전을 하면 150만원~200만원이다.
그런데 환율이 1270원으로 치솟았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원화도 동반 상승하게 되어 원화도 190만원~254만원으로 올라간다.
이런..... 왜 기러기 아빠들이 환율 상승에 왜 그렇게 민감한지 그 심정을 알 거 같다.
환율이 1000원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40~50만원 더 오르게 된다.
환율이 오르면 오를수록 원화도 올라가 송금이 어려워지게 된다.
환율의 급락은 다양한 사회, 경제 요인들로 인해 변하므로
전문가들도 올라갈지 내려갈지 정확히 예측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만약 환율이 안정적인 상황 속에서 기러기 아빠들이 송금을 150만원 모았는데
예기치 않게 환율이 상승하여 보낼 수 있는 송금이 190만원 이상이라면  

아빠들 입장에서는 대략 난감하다.
타국에 있는 가족들은 보고 싶고, 외로워서 서러운 마당에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고생해서 번 돈을 환율 때문에 보낼 수 없게 되면
기러기 아빠들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러기 아빠 : 기러기 자녀 = 고리오 영감 : 라스띠냑크

 

일단 시대부터 비교해봐도 많이 차이가 날뿐더러  

저 멀리 바다 건너편에 있는 나라의 이야기다. 

원래 '기러기 아빠' 는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낳은 사회적 인물이다. 

그리고 소설의 허구적 인물과  실제 인물을 비교한다는 것이 억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동명(同名)의 주인공도 살펴 보면 우리나라의 ‘기러기 아빠’ 와는 다를 게 없다.

기러기 아빠들은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고 있을 사랑하는 자식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외롭게 돈을 벌어 자식들에 송금하는 것처럼
고리오 영감도 사랑하는 두 딸들이 상류 사회에서의 행복한 삶을 누려 주기 위해서
역시 혼자 살면서 딸들에게 돈을 보낸다.
결국은 자신의 삶은 손해보더라도 사랑하는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혼자서 번 돈을 보내는 것이 비슷하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두 아버지들은 운명의 최후도 비슷하다.
가끔 자신의 삶이 힘들거나 타국에 있는 자식과 아내가 자기 자신을 소외하게 되면
자살이라는 비극적 최후를 선택하는 기러기 아빠들도 있다.
그리고 고리오 영감은 빈털터리가 되어 소설의 말미에
딸들의 보살핌 없이 병으로 인해 쓸쓸히 죽고 만다.
하지만 소설 속의 고리오 영감이 더 비극적이고 불쌍하게 느껴진다.
타국에 있는 기러기 자식들은 한국에 혼자 남아 있는 기러기 아빠를 그리워하고
그런 아빠를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그런데 고리오 영감의 딸들은 자기 아버지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아버지에게 보답을 해준 것도 없다.

고리오 영감과 함께 자주 등장하면서도 나름 원샷 비중(?)이 어느 정도 있는
제2의 주인공 라스띠냑크도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의 ‘기러기 자녀’ 과 비슷하다.
라스띠냑크는 지방의 가난한 귀족 출신이다. 그래서 화려한 출세를 위해
홀몸으로 파리에 왔건만 그의 말대로 파리는 ‘진흙 투성이’ 였다.
상류층들만의 세상이 되어버린 파리를 보고  

자신의 출신과 능력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를 위해 지방에서 적지 않은 돈을 보내는 가족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더욱 더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감과 슬픔을 느낀다.
자신의 삶을 성공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는 기러기 자식들의 심정도
라스띠냑크와 비슷하다.
처음에 외국에 오게 되면 고국과 다른 분위기의 나라에서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외국의 동갑내기들과 함께 공부를 하다보면
외국 친구들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자신의 능력을 실감할 것이다.
외국인의 눈이 보는 이방인으로서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그리고 이렇게 공부한다고 해서 자신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기러기 자식들은 정신적 압박감을 견디다 못해 유학 생활을 포기한다거나
최악의 상황으로 타국에서 자살을 선택하곤 한다. 
 

 

 ‘레알’ 하게 표현한 세태 풍경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답게
발자크는 <고리오 영감>을 통해 자본주의화 되어 가는 19세기 프랑스의 세태를
요즘 유행하는 젊은 세대 언어를 빗대어 표현하자면 ‘레알’ 하게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프랑스 사회에 지배하고 있는 ‘돈의 논리’ 의 위력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돈을 통한 비정상적인 고리오 영감의 부성애는 딸들이 건전한 가치관을 갖지
못하게 되고 아버지를 비참하게 죽게 만든다.
고리오 영감뿐만 아니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돈의 위력 앞에서 왜곡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탈옥수 보뜨랭은 세상은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안다.
그러고는 돈이 필요한 라스띠냑크를 유혹하려고 하지만
라스띠냑크는 악마의 유혹을 거절함과 동시에  

당당히 그의 행동에 대해 비난하고 맞선다.
고리오 영감의 두 딸들은 철저하게 아버지의 부(副)를 이용하여  

신분 상승을 한 불효녀들이다.
죽음이 코 앞에 둔 영감의 소식을 듣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류층 귀족들이 모이는 무도회에 나가고 싶어 하는 냉담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고리오 영감이 신분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딸과 사위들은 그를 무시한다.

비록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상의 인물들이지만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을 보면 여간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영감과 라스띠냑크를 보면
우리 사회의 ‘기러기’ 아빠와 그 자녀들과 비슷하고,
고생 끝에 키운 자식들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듯이

냉정하게 부모들은 무시한다.  

결국 늙고 아무 능력도 없는 부모들은 ‘독거 노인’ 이 되어
부질 없는 세상을 한탄하다가 쓸쓸히 독방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고리오 영감이 두 딸들을 비난하면서 외롭게 죽듯이 말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을 우리 사회와 유추해보면
비슷하다는 점이 신기하고 놀랍기보단 무섭기만 하다.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발자크가 그린 사회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야, 나랑 싸우자!

 

  눈 뜨면 뭐가 돈 될까 머리 또 굴리지
  dirty cash에 배부른 니 주머니
  제발 좀 작작해 독 같은 drity money
  부모형제와 친구마저도 버린 거니  

  (중략)  

 

  사과 하나 없는 사과 상자 속엔 비열한 자들의 욕심이 가득해  

  부모 제사상 앞에 싸움판이네 부모 형제보다 돈이 더 중요해  


빅뱅의 ‘Dirty Cash' 의 가사 일부분이다. 
소설을 읽고 나니 불현듯이 이 노래가 생각이 났다.
발자크가 돈에 오염된 프랑스 사회를 직설적으로 소설로 표현했다면
빅뱅은 지금 한국 사회를 직설적으로 가요로 잘 표현했다.
빅뱅 말고도 돈에 찌들린 우리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를 부른 가수는 많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소설에서 표현한 사회상과 비슷하게만 느껴진다. 
 

노래 제목도 직역하면 '더러운 돈' 이고  

고리오 영감의 사회와 우리나라 사회는 더러운 돈 때문에  

오염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영감의 장례식을 참석하고 난 뒤,
라스띠냑크는 정신을 가다듬고 ‘진흙투성이’의 파리와  

정면 대결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여기서 소설이 마무리 짓게 되면서 후에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발자크는 독자에게 상상을 해줄 수 있는 여백을 남겨주었다.

 

과연 그가 거대한 사회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은 라스띠냑크가 혹여나 고리오 영감처럼 되어버릴지 않을까
짓궂은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어지러운 세상 앞에서 당하기만 하고 늘 뒤에 한탄만 하는 것보다
한 번은 무모하게 사회의 핵주먹에 흠씬 두들겨 맞아보면서  
미친 척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기에 좋은 일이다.

최치원의 한시 한 구절이  

사회에 맞서는 젊은이들과 라스띠냑크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세파 속을 헤매면 웃음거리 될 뿐
 곧은 길 가려거든 어리석어야 하지요 
  

                   - ‘곧은 길 가려거든’ 중에서 (출처: 새벽에 홀로 깨어, 돌베개, 2008)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기러기 아빠의 눈물' 환율 급등해 용돈 송금 못해] 

머니투데이 5월 25일 입력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52515443734340&outlink=1 

 

[기러기 가족의 비극…세 모녀 이어 아빠마저...] 뉴스웨이 5월 11일 입력 

http://www.newsway.kr/news/articleView.html?idxno=822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