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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1001-913] 책 읽어주는 남자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한다.
카오스 이론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구절이다.
변화무쌍한 날씨를 예측하기가 힘든 이유를
지구상 어디에서인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로 인해
예측할 수 없다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 용어를 처음 알기 전,
그러니깐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아이였을 때이다.
인간의 삶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단순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작용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에는 착한 일만 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착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학교라는 어린이의 사회에 내딛을 때에도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세상에 먼저 몸을 담가본 어른들은
아무도 세상의 수심(水深)을 알려준 적도 없었고, 어린 나는 거대한 세상을 너무 얕봤다.
김기림의 시에 나오는 흰 나비처럼 말이다.
바다에 내려갔던 나비는 날개가 젖은 상태에 지쳐서 돌아오듯이,
어른들의 사회에 무심코 들어간 나는
끝이 없는 깊이감에 빠져 헤매다가 후회 하면서 돌아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세상이란 그렇게 단순하고 만만하게 아니라는 것을.
또 내가 원하는 삶이란 그리 쉽게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타인들과의 얽히고 설킨 관계가 상충되어
예측 불허한 일들이 우리 삶에 일어나고 그것이 인생을 좌우하고 있었다.
책 읽어주는 남자, 사랑을 주는 여자
이 책에 나오는 두 남녀 주인공도
우연한 만남을 시작으로 사랑을 하게 되었으나
결국 비극적으로 끝나듯 애정 소설의 천편일률적인 전개에 벗어날 수 없는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예사롭지가 않다.
소설 속 남자 미하엘은 15세 소년이고, 여자 주인공 한나는
미하엘보다 21살 위인 36살이다.
미하엘이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면 그녀는 보답으로 샤워를 해주고
서로 뜨거운 육체적 관계를 맺고야 만다.
그리고 열정적인 쾌락의 시간이 끝나면 연인은 잠깐 같이 누워 있는다.
그러고는 한나는 아무 일 없다듯 다시 일상적인 생활을 한다.
이렇듯 한나가 미하엘에게 아무 말도 안하고 홀연히 사라질 때까지
짧고 길었던 시간동안 연인은 그렇게 지냈다.
어린 미하엘은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서 그녀와 만남은 시간 속에 묻어가기로 하였다.
세월이 지난 후, 미하엘은 어엿한 법대생이 되었는데
그때까지도 한나에 대한 추억이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던 미하엘은
우연히도 법정에서 그녀를 만난다.
8년의 세월은 그녀를 예전보다 늙어 보이게 만들었다.
무엇이 그녀를 늙게 만들었으며 왜 미하엘의 곁을 떠나야만 했었는가?
이상적인 사랑을 꿈꾸다
그것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상처와 문맹이라는 인간으로서의 치명적인 수치심이다.
그녀가 살아오면서 항상 불안케하는 원인이었으며
치유하기 위해서는 미하엘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든 커다란 원인은 전쟁이었다.
과거에 나치 친위대의 여성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녀는 친위대에 잡힌 유태인 여자가 읽어주는 글을 통해
문맹을 벗어나고 싶었고 두 여자는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싹틔우게 된다.
하지만 정부의 명령을 어길 수 없는 그녀는
그 여자를 포함한 유태인들을 죽이는 일에 참여한다.
전쟁이라는 잔인한 운명이 그녀를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든다.
그래서 소년 미하엘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잠시나마 행복했던 그 때의 과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기이하고 강렬했던 미하엘과의 만남부터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칠 때까지
그녀가 정작 갈망했던 사랑은 책을 읽는 나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였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사랑이 있는데
‘에로스(Eros)’ 와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 가 있다.
과연 인간은 살면서 에로스와 플라토닉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사랑을 추구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이상적인 사랑은 오래 갈 수 있을까?
한나는 비록 자신보다 어린 소년이지만
자신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그를 통하여 정신적인 감정 교류,
플라토닉 러브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육체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에로스를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나의 사랑’ 이 투영된 에로스를 보는 독자의 관점이다.
우리는 에로스를 성 본능에 충실한 육체적인 사랑이라고
편향된 인식을 가지기 쉽다.
‘에로스=Sex' 라고 만든 사람은 프로이트일뿐
진정한 에로스는 시간을 거슬러 고대 철학자 플라톤으로 기원을 삼고 있다.
에로스를 보다 철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불완전한 자신을 자각하고 완전함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 나아가려는 정신이다.
한나는 남성인 미하엘과의 섹스를 통해
사랑을 하고 있는 여성 ‘한나’ 로 재탄생되길 바랬던 것이다.
비록 오래가지 못하지만 한나는 미하엘을 통해
여성이 누리고 싶어하는 이상적인 사랑을 체험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미하엘 앞에서는 단순히 성적 쾌락을 충족시켜주는 여자이길 보다는
사랑을 하고 있는 완전한 여자로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정작 추구하고자 했던 이상은 현실에서는 따라주지는 못했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잘 몰랐던 사춘기 소년 미하엘은
책을 읽어주면 육체적 쾌락을 맛볼 수 있는
가까우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여자로만 볼 뿐이었다.
자신이 원했던 사랑이 아니었음을 느낀 한나는 미하헬 곁을 떠나게 되고
그때부터 이 둘의 사랑은 어긋나게 되고
미하엘은 평생동안 한나와의 추억을 오류가 점철된 사랑으로 간직하고 만다.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한나의 자살 이후 미하헬은 그녀의 유품을 통해 죽을 때까지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의 죽음에 안타까워하게 된다.
오히려 한나의 자살을 통해 인간의 이상적인 사랑은 가능하더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는 뉘앙스를 지울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사랑을 보면 볼수록
한국의 비극적 커플 중의 하나인 선녀와 나무꾼이 생각난다.
나무꾼은 끝까지 자신 곁에 남고 싶어하지만
정작 선녀는 자신의 근원지이지만
이상적인 곳이기도 한 하늘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비록 한나-미하엘 커플과의 상황은 다르지만
남성은 현실에 순응하려고 하지만
여성은 현실을 넘어선 이상을 지향한다.
이렇듯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사랑이 달라
이별을 선택해야하는, 헤어지기 싫어도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 되는 점이
얼추 비슷하다.
하지만 꼭 이상적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소설은 작가의 눈을 통해 창조되는 현실일 뿐이며
참된 사랑에 대해 에로스든 플라토닉이든 추상적인 기준들을 가지고
논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서로 차이점을 존중하고 이해하면
좋아하는 감정들을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독일 남녀의 사랑은 전쟁이라는 특수적인 환경적 요인이 컸다.
전쟁으로 인해 한나는 나치 친위대 일원이 될 수 밖에 없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연히 미하엘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키우게 된다.
그런데 한나의 과거 행적이 사랑을 오래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한나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전쟁이라는 커다란 나비의 날개짓이
이들의 사랑을 비극의 토네이도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한나의 죽음 후에 미하엘이 그녀의 진실된 사랑을
뒤늦게 알게 된 점에 대해 안타깝기보다는
과거에 두 사람이 한창 사랑했던 추억의 시간들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졌다.
만약 한나가 조금 더 마음의 문을 열고 미하엘에게 다가왔더라면
그리고 미하엘이 조금 더 성숙한 마음으로 사랑의 의미를 깨달았더라면
과연 이들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났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