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오늘 장영희 교수님의 1주기 추모행사가 생전 강단에 서던 서강대에서 개최하였다.
교수님의 유족이 주관하고 지인들의 참석하여 추모글을 낭독하였다.
이번 행사를 주최함으로써 어떤 삶을 살더라도 희망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고인의 메시지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장 교수님의 추모행사 소식을 접하면서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주는 경외감의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예전의 시간이 떠올렸다.

작년 4월, 우스갯소리로 죽도록 일만 해야 한다는 일병 시절에  

장 교수님의 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생활관에는 3칸짜리 조그만 책장이 있었는데 비록 많은 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책장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군사 교본과 병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잡지와 음악 CD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입대 후 제대로 된 책을 읽어보지 못한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책장에 눈에 띈 이 책을 집어 들어 읽게 되었다.
그 때는 ‘장영희’ 이름 석 자의 지은이에 대해 잘 몰랐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중학교 때 배운 영어 교과서의 집필에 참여한  

유명한 분이었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독자들의 눈물을 훔쳤다는 사실을 몰랐다.   

   

  

마음에 영양분을 주는 글

 

교수님의 에세이들은 접했을 때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문장이 쉽게 읽혀졌고
자신의 투병 생활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은 점에서  

왜 이 책이 많은 독자들이 읽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글을 통해 교수님의 인간적인 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고 공감을 느꼈다.
교수님의 글 중에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내용이 있다.
어느 날, 교수님에게 편지 한 통이 왔는데 30년 전 초등학생 시절에  

술집 주인의 딸이라고 해서 친하기를 꺼려했던
친구의 이름이 편지 주소에 적혀 있는 것이다.
교수님은 그 편지의 이름을 보자마자 마음 한 구석에 지워져 있을 줄 알았던
친구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30년 후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비록 그 친구와의 재회 내용은 없었지만 (이 글을 집필 이후에 만났을 수도 있겠다)
글로나마 친구에게 미안함을 나타냈다. 
 

이 글뿐만 아니라 책에 수록되어 있는 교수님의 에세이들을 읽으면
군 생활로 지친 내 마음에 영양분을 얻은 거 같았다.
영양분을 얻은 힘으로 앞으로 남은 군 생활을 보다 긍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1달 후, 교수님의 사망 소식이 뉴스에 전파되었다.  

   

 

웃음으로 가려진 눈물 

 

사람이 부정적인 감정, 후회를 많이 느끼게 되면 마음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자신도 모르게 신체가 쇠약해지고 병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교수님의 글이 항상 밝고 순수한 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수님의 몇 몇 에세이들을 보게 되면 신체 불구자로서의 삶과 투병 생활에 대해
잠시 자괴심과 절망감에 시달린 적도 있고, 우울감에 빠졌다는 내용도 있다.
고골의 글은 ‘눈물로 가려진 웃음’이라는데
교수님의 글은 ‘웃음으로 가려진 눈물’이었다.
교수님은 글을 통해 의학적으로 치유 불가능한 자신의 부정적인 마음들을
자기 자신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서 마음 속에서도 투병 중이었던 것이다.
힘든 투병의 휴유증이 교수님의 수명을 단축하게 만들었을까?
조금씩 병들어 있는 마음을 치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불꽃같이’ 떠나버렸다.

교수님 부고 이후 다시 이 책을 읽었다. 
책에 ‘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한 마디’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내용은 교수님이 자신이 죽었다는 가상 설정 하에  

무슨 유언을 남기고 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 몰랐었는데 이 글에 교수님이 멋진 유언을 남기셨을 거라는  

기대감에 읽어나갔다.
하지만 교수님은 얄밉게(?) 유언 같지 유언으로 이 글을 마무리지었다.
교수님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 하지 말고 살아있을 때 하고 싶은 말을 하란다.
하긴 이 글을 쓰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죽음이 자신 코 앞에 있었다는 것을  

느껴지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그 구절을 읽으면서 교수님의 유머에 웃음을 머금었지만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책에 남긴 가상 유언이  

실제로 되어버린 것만 같아 슬펐다.
두 번째로 교수님의 글을 읽게 되어 ‘웃음으로 가려진 눈물’을 또 한 번 느꼈다.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 

 

교수님의 삶은 이 책의 부제처럼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 살다 갔다.
교수님이 처음 쓰고 출판한 처녀작이 유언처럼 보이는 것은 나뿐일까? 
책 앞표지에 있는 불나방이 꼭 교수님을 상징하는 거 같다.  

(누구든지 이 책 표지 디자인을 보면 나비라고 생각하지만)

하늘을 훨훨 날기 위해 온갖 성장통을 감수하면서
자라나지만 결국 불꽃을 향해 뛰어들어 타버리는 것처럼.....
먼저 떠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힘찬 날갯짓을 하면서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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