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낫지 않는 질병에 걸리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건강이 나빠진 상태를 보여 주기 싫어서 병에 걸린 사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 충언할 때 쓸 수 있는 속담이 있다.

‘병 자랑은 하여라.’ 병에 걸린 사실에 혼자 불안해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는 증상을 알려서 치료법을 찾으라는 뜻이다.
몸과 정신이 아픈 경험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러나 질병을 터놓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아픔이 동등하게 관심받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아픔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동정심을 일지만, 다른 누군가의 아픔은 외면받거나 의도적으로 지워진다. 어떤 아픔은 마땅히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 되지만, 또 어떤 아픔은 질병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찔린다. 아픈 사람의 목소리는 소거된다. 결국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 침묵당한 아픔은 불평등과 차별을 유발한다. 정확하게 진단하는 의료 기기가 갖춰진 병원이 많이 생겨도 아픔을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5년 12월의 세계 문학]
* 비키 바움, 박광자 옮김 《크리스마스 잉어》 (휴머니스트, 2023년)
오스트리아에 태어나 독일과 미국에 활동한 비키 바움(Vicki Baum)의 단편 소설 <길>은 아픔을 말하지 못한 여성이 느끼는 소외감이 잘 묘사되어 있다. 1924년에 발표된 <길>은 토마스 만(Thomas Mann)이 극찬한 작품으로, 국내에 유일하게 출간된 바움의 단편 선집 《크리스마스 잉어》에 실려 있다.
<길>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픔을 참는 주부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새 옷장을 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집안일하는 주부는 경제적 자유가 없다. 그녀는 옷장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돈을 쓰려면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답답한 일상은 주부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결국 그녀는 ‘알 수 없는 몸의 통증’에 시달린다. 몸에 이상을 느낀 주부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아파서 쉬게 되면 해야 할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자기 대신에 식사를 차려 줄 사람이 없다. 참다못한 주부는 남편에게 자신의 증상을 밝힌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가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주부는 자신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는 남편에 실망한다. 도통 낫지 않아서 병원에 가보지만, 의사는 그녀의 병을 감기로 진단을 내린다. 주부는 의사의 진단을 믿는다.
* 베티 프리단, 김현우 옮김 《여성성의 신화: 새로운 길 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갈라파고스, 2018년)
* 김선희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 베티 프리단과 <여성의 신비>의 사회사 》 (푸른역사, 2018년)
<길>은 ‘집안일을 열심히 하는 삶에 만족하는 가정주부’ 이미지가 허상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나온 지 40여 년 후에 가정주부의 아픔을 본격적으로 주목한 책이 나온다. 이 책이 바로 미국의 페미니스트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의 《여성성의 신화》(The Feminine Mistique)다. 바움이 미국 할리우드에서 세상을 떠난 지 3년 후에 출간되었다. 주부에게 집은 일터다. 집안일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성으로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일로 여긴다. 주부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스스로 묻지 못한 채 살아왔다. 가정에 헌신하는 여성은 의사도 명확히 진단 내리기 어려운 신체적 증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거나 정신적인 공허감을 느낀다. 프리단은 주부들의 속앓이를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problem that has no name)’로 명명한다.
* 아서 프랭크, 최은경 · 윤자형 함께 옮김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 육체, 질병, 윤리》 (갈무리, 2024년)
* 아서 프랭크, 메이 옮김 《아픈 몸을 살다》 (봄날의책, 2017년)
한 사람의 아픔에도 이야기(narrative)가 있다. 아픈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삶 속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말하지 못한 아픈 이야기는 약을 먹거나 치료해서 금방 사라지는 가벼운 증상이 아니다. 병을 자랑하는 이야기는 병을 치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에 아픈 이야기는 질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푼 이야기가 아니라 질병이 삶의 일부가 된 이야기다. 아픔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픈 몸의 취약함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비하로 빠지지 않는다. 질병, 장애 등이 포개진 아픈 이야기를 듣는 일은 지금 아프기 시작했거나 과거에 아팠던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을 읽는 방식이다.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도 언젠가는 아플 수 있다. 아픈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