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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생각의 출현 - 대칭, 대칭의 붕괴에서 의식까지, 개정판
박문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5년 9월
평점 :

2점 ★★ C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는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몸이 허약한 그는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천장은 데카르트를 위한 석판이다. 그는 총명한 눈빛으로 거대한 석판에 철학의 제일원리(first principle)를 새겼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생각하는 나’는 모든 지식을 의심한다. 다만 ‘생각하는 나’를 의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생각(의심)하는 동안 나는 확실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기 위해서는 존재해야 한다.[주1]
‘생각하는 나’는 주체도, 자아도 아니다. 데카르트가 생각한 ‘나’는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영혼’이다. 데카르트는 뇌를 해부하다가 솔방울 모양을 한 ‘아주 작은 샘(분비샘)’을 발견한다. 그는 이 부위가 영혼이 있는 자리라고 주장한다.[주2] 그러나 데카르트의 주장은 틀렸다. 샘은 영혼의 집이 아닌 송과체(송과선, 솔방울샘)라는 내분비기관이다. 밤이 되면 송과체는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만든다.
우리는 헛다리 짚은 데카르트를 비웃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도 그렇고, 대부분 사람은 뇌를 잘 모른다. 뇌는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아주 먼 부위이다.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뇌’다. 데카르트의 철학 명제를 빌려서 뇌 과학의 제일원리를 쓰면 이렇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뇌가 존재한다.” 우리가 생각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뇌가 있어야 한다.
출간된 지 17년 만에 개정판으로 나온 《뇌, 생각의 출현》은 두 개의 역사를 다룬다. 하나는 우리 몸속에 새겨진 생명의 역사다. 이 역사는 세포에서 시작해서 뇌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뇌가 형성되기 이전의 이야기다. 뇌가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으면 인간은 직립보행이 가능해지고 생각하는 동물이 된다. 부지런한 뇌 덕분에 인간은 학자와 예술가가 되었다. 똑똑해진 인간은 자신들이 태어나기 한참 전인 과거의 역사를 돌아봤고, 생명의 기원을 알아냈다. 이 책이 두 번째로 다룬 역사는 우주와 지구, 인류의 역사를 아우른 ‘거대 역사(Big History)’다.
‘빅 브레인(Big Brain)’은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까지 지켜보고 있다. 빅 브라더(Big Brother)는 인간을 감시하지만, 빅 브레인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끔 이끌어준다. 뇌는 주변 환경을 살피고, 직접 수집한 여러 정보를 범주화해서 ‘나’를 차곡차곡 만든다. 뇌가 제공해 준 정보를 얻은 ‘나’는 감정을 느끼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기억한다. 저자는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뇌의 역할을 ‘환경에 적응하는 운동’이라고 표현한다. 뇌는 우리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운동한다. 뇌가 열심히 운동하는 내내 우리는 살아있다.

《뇌, 생각의 출현》은 2008년 출간 당시 뇌 과학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이바지한 책이다. 이번에 나온 개정판은 책의 판형이 커졌고, 책값도 2배로 불어났다. 그러나 구판 속 내용과 거의 달라진 게 없는 책은 개정판이 아니라 ‘개판’이다. 잘 만든 과학책 개정판은 본문의 오류와 오탈자가 고쳐져 있다. 과학 공부를 좋아하는 저자와 편집자가 과학책 개정판을 잘 만들고 싶다면 새롭게 밝혀진 연구 성과나 최근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과학 분야를 소개해야 한다.
잘못된 용어와 명칭 표기는 저자의 가벼운 실수로 이해하고 넘길 수 있다. 그래도 글을 쓸 때나 다 쓴 후에도 정확히 썼는지 확인해야 한다.
* 37쪽

1-8은 허블우주망원경이 성간 거대분자구름에서 원시별이 형성되는 과정을 관찰한 사진입니다. 맨 위는 지상에서 저배율 망원경으로 본 독수리자리 성운 부근의 밤하늘이고, 그 왼쪽 사진의 구름 기둥을 허블망원경이 관측한 것이 아래 사진들이죠.
저자는 ‘독수리 성운(Eagle Nebula)’을 ‘독수리자리 성운’으로 잘못 썼다. 독수리 성운은 뱀자리에 있는 성운이다.

그다음 페이지에 독수리 성운을 확대한 사진 도판(1-8)이 있다. 맨 위의 사진에 별자리 이름이 적혀 있는데, 독수리자리 바로 옆에 ‘말굽자리’가 있다.
국제천문연맹(IAU)이 공인한 별자리는 총 88개이다. ‘말굽자리’는 국제천문연맹 공인 별자리가 아니다. 인터넷에 검색해 봐도 ‘말굽자리’를 설명한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 ‘말굽자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명칭이다. 궁수자리는 독수리자리 근처에 있는 별자리다. 궁수자리에 있는 오메가 성운(Omega Nebula)의 별칭이 ‘말굽 성운’이다.
저자는 뇌 시스템의 진화 순서를 설명하면서 뇌 시스템에 위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뇌가 세 단계로 진화하는 과정을 뇌 과학 용어로 ‘뇌의 삼위일체설’이라고 한다.
* 372쪽

세 단계로 뇌의 시스템이 진화되어 온 순서는 이렇습니다. 맨 처음 나타난 게 파충류 뇌죠. 뇌간을 중심으로 발달한 시스템입니다. 주로 호흡 작용이나 맥박 등과 관련되어 있죠. 그다음에 나타난 것이 고(古) 포유동물의 뇌입니다. 흔히 뇌의 삼위일체설(미국의 심리학자 폴 맥클린이 인간의 뇌를 뇌간, 변연계, 대뇌피질 등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세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고 주창한 것)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감정을 생성하는 부위죠. 변연계를 중심으로 발달한, 원시 포유동물이 갖고 있는 뇌입니다. 그리고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대상회를 완전히 덮으며 신피질이 크게 발달하게 되죠.
파충류 뇌는 ‘도마뱀 뇌’라고 불리기도 한다. 뇌의 삼위일체설을 믿는 대중은 파충류 뇌를 감정적이고 생존 본능에 충실한 ‘야성적인 뇌’라고 인식한다. 반면 신피질은 감정을 조절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이성적인 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뇌의 삼위일체설은 한참 오래전에 오류로 밝혀진 ‘잘못된 과학 상식’이다.[주3] 뇌 구조와 뇌 시스템에 위계는 없다. 뇌는 신경세포를 만들어가면서 진화하고, 점점 커지면서 ‘재조직’한다. 신피질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가 점점 발달하면서 형성된 조직이다.
* 442쪽

기존 입자와 상호작용의 표준 모델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입자가 힉스(Higgs) 보존입니다.
* 463쪽

상대성이론이 예측하는 중력파를 측정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2012년에 힉스 보손이 발견되었다. 2015년에 중력파 검출에 성공했고, 이듬해에 과학자들은 중력파의 존재를 인정했다.
저자는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는 일을 멈춘 상태다. 얼굴과 몸집만 달라진 책의 속살에 빛바랜 지식은 지워지지 않았다.

[주1] 르네 데카르트, 이재훈 옮김, 《방법서설: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휴머니스트, 2024년), 84쪽.
[주2] 르네 데카르트, 김선영 옮김, 《정념론》 (문예출판사, 2013년), 45쪽.
[주3] 리사 펠드먼 배럿, 변지영 옮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뇌가 당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7과 1/2가지 진실》 (더퀘스트, 2021년), 1강 「뇌는 하나다, 삼위일체의 뇌는 버려라」
<좋은 책인지 그저 그런 책인지 구별하는 cyrus의 정오표>
* 299, 368쪽

정신분열증 → 조현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