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생존자들 - 다섯 번의 대멸종을 벗어난 포유류 진화의 여섯 가지 비밀
스티브 브루사테 지음, 김성훈 옮김, 박진영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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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전 세계 고생물학자들이 모여서 영화 <쥐라기 공원>(Jurassic Park)을 다시 만든다고 상상해 보자이야기가 확 달라질 것이다. 1993년 원작 영화에 나오는 생물들이 몸집이 큰 공룡이라면, 고생물학자들이 만든 영화는 공룡과 포유류들이 동시에 등장한다공룡과 포유류가 같이 나오는 영화는 원작을 파괴한 것이 아니요, 과학적 오류도 아니다. 공룡은 해가 뜬 시간에 어슬렁거렸다. 포유류는 하루의 절반을 땅속에 지내다가 밤이 되면 마음껏 돌아다녔다공룡과 함께 살았던 포유류는 현재 포유류의 모습과 완전히 다르다. 포유류의 조상은 대체로 몸집이 작았다.


크기가 작은 포유류는 거대한 공룡에 비하면 평범하게 보인다. 그러나 작다고 무시할 수 없다. 포유류는 극단적으로 변하는 기후 변화에 잘 적응해서 살아남은 생물이다. 만약에 포유류마저 공룡과 함께 멸종했다면 인간은 지구에 나타나지 못했다. 인간은 스스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부르면서 다른 동물종보다 슬기로운 존재(sapiens)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포유류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경이로운 생존자들을 쓴 저자 스티브 브루사테(Steve Brusatte)는 공룡을 좋아해서 연구한 고생물학자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공룡에 대한 애정을 잠시 접었고, 포유류에 집착하게 됐다. 공룡 박사는  왜 포유류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포유류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다. 수백만 년을 지구에서 살아온 인간의 역사는 포유류 역사의 끄트머리에 해당한다. 인간은 포유류와 다를 바가 없다. 인간과 포유류는 젖샘을 가지고 있다. 젖샘은 젖을 분비하는 기관이다.


고생물 하면 우리는 항상 공룡을 먼저 생각한다공룡을 좋아하는 우리는 공룡 프레임에 갇혀 있다지금까지 발굴된 고대 포유류 화석의 수가 공룡 화석보다 적은 편이라서 포유류 진화와 관련된 연구가 더디게 진행되었다공룡이 멸종된 이후에 포유류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 없지만, 고생물의 역사를 시대 구분(periodization)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오랫동안 이어져 온 포유류의 진화 과정이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고대 포유류는 공룡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포유류 시대는 공룡 시대가 끝난 이후에 시작되지 않았다포유류의 조상은 32,500만 년 전에 등장했다. 이 시기는 고생대 석탄기에 속한다.


경이로운 생존자들인간을 위한 책이 아니며, ‘공룡을 위한 책도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공룡은 거대한 조연이다. 과거의 지구온난화는 고생물들에는 대재앙이었다. 우리는 고생물들을 위태롭게 만든 사건을 대멸종(extinction event)이라고 한다포유류는 다섯 번의 대멸종을 모두 경험했다. 페름기 대멸종(3차 대멸종)은 역대 대멸종 중 가장 피해가 심했다.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생긴 백악기 대멸종(K-Pg 멸종: 백악기-팔레오세 멸종, 5차 대멸종)’은 공룡 시대를 끝낸 대멸종이다.


포유류는 대멸종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에서 어떻게 끈질기게 살아남았을까포유류는 공룡보다 몸집이 작았다. 땅 밑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신체 조건은 육상생물들을 괴롭힌 이상 기후를 피하는 데 유리했다. 그리고 포유류는 치아를 발달하면서 진화했는데, 치아 덕분에 풀과 곤충 등을 먹을 수 있었다. 잡식성은 생물이 튼튼하게 성장하는 데 이롭다. 반면 몸집이 큰 공룡은 예상하지 못한 기후 변화에 취약했다. 게다가 그들은 한 가지 음식만 먹었다. 육식 아니면 초식성이었다백악기 대멸종을 견딘 포유류는 지하 생활을 청산하고, 점점 몸집을 키우면서 진화했다.


저자는 백악기 대멸종으로 사라진 공룡을 희생자, 살아남은 포유류를 생존자로 비유하면서 포유류의 생존 비결을 치켜세운다. 비록 새를 제외한 모든 공룡은 사라졌지만(우리가 흔하게 보는 새는 살아있는 공룡이다), 기후 재앙에 적응하지 못해서 호락호락 당하기만 하는 아둔한 희생자는 아니었다. 공룡들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노력했다. 2006년에 미국에서 공룡이 지구온난화를 피하려고 만든 땅굴이 발견되었다. 땅굴 안에 있는 공룡 화석을 분석한 결과, 이 땅굴 주인은 백악기에 살았고, 큰 이구아나만한 크기의 초식공룡이었다.[주1]


경이로운 생존자들여러 갈래로 뻗은 진화의 경로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잊어버린 고리(forgotten link)’[주2] 주목한다. ‘잊어버린 고리우리가 알아야 할 포유류의 역사.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자신의 기원을 고민하는 유일한 종인간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설명한다.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6,000종 이상의 포유류 중 하나이다. 자신의 기원을 알고 싶어하는 우리가 고대 포유류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안 된다. 포유류의 역사를 모르거나 잊어버린다면 슬기롭지 않다





[주1] <“공룡, 지구온난화 피해 땅굴 팠다”> 서울신문, 2009717일 입력.


[2] 진화와 관련된 용어인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패러디해서 만든 단어다. ‘잃어버린 고리는 진화 경로의 중간 단계(과도기)이며 화석이 많이 발견되지 않은 시점을 뜻하기도 한다.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 47




 

 나는 해파리를 특히 좋아했다. 메이존크리크의 베테랑 화석 사냥꾼들은 경멸하듯 이것을 블롭(blob, 얼룩-옮긴이)’[주3]이라 불렀다.

 


[3] blob얼룩’과 방울’, ‘덩어리를 뜻하는 단어다. blob흐물흐물하거나 물컹물컹한 물질을 가리킬 때 쓰이기도 한다







blob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영화가 <블롭(The blob)>이다. 1958년에 나온 SF 공포 영화,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이 주연으로 나온다. 영화에 묘사된 블롭우주에서 온 괴물이다.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이루어진 우주 괴물은 인간을 잡아먹는다.

 

공포 영화에서 끔찍한 형태로 나오는 우주 괴물 블롭, 화석 사냥꾼들이 흐물흐물하게 생긴 해파리를 경멸하듯이 대하는 반응을 겹쳐서 생각한다면 책에 나온 blob을 ‘(불쾌한)덩어리로 번역해도 된다.





* 60






 파충류가 아님에도 처음에는 파충류처럼 보였던 생명체들이 포유류 줄기 혈통을 따르는 동안 작은 체구에 털이 나 있고 뇌가 큰 온혈[4] 포유류로 모습을 바꾸어갔다.

 


[4] 이 책의 번역자는 온혈동물 냉혈동물이라는 낡은 용어를 자주 쓴다. 외부 기온과 상관없이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동물을 과거에는 온혈동물이라고 했으나 현재는 항온동물또는 정온동물이라고 쓴다. 이와 반대로 체온을 유지할 수 없어서 외부 기온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동물은 변온동물또는 외온동물이라고 한다. 과거에 사용된 용어는 온혈동물과 반대인 냉혈동물이었다정온동물과 변온동물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책의 107~108에 나온다.






* 286




 

 초음파 방향정위(echolocation)[5] 이용해 곤충을 잡아먹던 날개 달린 동물은 당연히 박쥐다.

 

[5] 반향정위(反響定位)’의 오자.






* 509~510

 

 키가 크고 우아하며, 다리와 척추, 목과 머리가 나란히 정렬되고 아치가 있는 두 발로 균형을 잡고 서는 이 새로운 인간적 특성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의 선조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유명한 화석 중 하나가 그 대표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루시(Lucy). 이 골격은 1974년에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어 비틀스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이름을 따왔다. 루시의 공동 발견자 도널드 요한슨(Donald Johanson)은 팀 화이트(Tim White)와 그 골격에 대한 초기 과학적 기술을 작성한 후에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루시를 대중화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6]

 

 

[6] 1981년에 도널드 요한슨은 메이틀랜드 에디(Maitland Edey)와 함께 <Lucy: The Beginnings of Humankind>라는 책을 썼다. 루시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이 책은 이듬해에 미국 국립 도서상 과학 부문(U.S. National Book Award in Science)을수상했다. 1996년에 번역본 최초의 인간, 루시(이충호 옮김, 푸른숲, 절판)이 출간되었다










2011년에 출판사가 바뀐 루시, 최초의 인류(이충호 옮김, 진주현 해제, 김영사, 절판, 저자명은 도널드 조핸슨)가 재출간되었다. 역자는 구판과 같다. 그런데 개정판에 공저자 메이틀랜드 에디의 이름이 빠졌다







루시 공동 발견자 중 한 사람인 이브 코팡(Yves Coppens)이 쓴 책 루시는 최초의 인간인가: 무릎 화석이 우리에게 말하는 진실(한울림, 2002, 절판)에 출간된 적이 있다.





* 참고 문헌, 610





 

레베카 랙 사익스의 네안데르탈인(생각의힘, 2022) [주7]

 


[7] 정확한 제목은 네안데르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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