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Shakespeare)1564에 태어났고, 체호프(Chekhov)1904에 숨을 거두었다. 우연하게도 올해는 두 극작가가 특별히 주목받는 해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지 460주년, 체호프가 세상을 떠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위대한 극작가를 말할 때 셰익스피어와 체호프는 당연히 빠지지 않는다. 대부분 독자는 ‘4대 비극‘5대 희극에 포함된 작품을 읽으면서 셰익스피어의 매력에 푹 빠진다. 연극인은 체호프의 ‘4대 장막극을 절대로 모를 수 없다.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은 대학교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희곡을 읽으면서 작품을 분석하고, 연극 대본을 읽으면서 연기 연습을 한다. 학생들은 대학별 연극영화과 지정 희곡 목록에 포함된 작품 한 편을 선택해서 독백 연기를 준비해야 한다. 셰익스피어와 체호프의 극작품들은 연극영화과 지정 희곡으로 자주 나온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경식 옮김 햄릿(문학동네, 2016)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세 번째 선정 도서]

* 안톤 체호프, 강명수 옮김 갈매기(지만지드라마, 2019)





햄릿은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많이 무대에 올랐고, 가장 많이 재창작된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이다. 갈매기는 체호프의 4대 장막극 중 제일 먼저 발표된 작품이다. 갈매기는 초연 당시 반응이 매우 좋지 않았다


















* 안톤 체호프, 김규종 옮김 체호프 희곡 전집(시공사, 2010)

* [절판] 안톤 체호프, 전훈 옮김 숲 귀신(애플리즘, 2010)

* 안톤 체호프, 이주영 옮김 체호프 희곡 전집 3(연극과인간, 2002)





1889년에 체호프는 숲의 수호신(‘숲 귀신’, ‘숲의 정령)이라는 장막극을 선보였으나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이때 당시 겪은 실패는 체호프의 자존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체호프는 숲의 수호신재출간과 공연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한동안 단막극과 단편소설 집필에 주력했다. 그러다가 1895년에 갈매기를 쓰기 시작했다. 체호프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상태로 갈매기를 쓰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 작품이 성공할 거라고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는 갈매기무척 바보 같은 이야기라면서 경멸에 찬 표현을 썼다.


체호프는 지인들 앞에서 이전에 경험한 실패에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야심 차게 집필한 갈매기를 극장에 공개했다. 체호프는 갈매기실패한 작품이 될 거라면서 관객들의 냉담한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극장을 찾은 체호프는 관객들에게 외면받은 갈매기를 눈앞에서 지켜봤고, 또 한 번 그의 자존심이 크게 다쳤다. 갈매기마저 실패하자 체호프는 희곡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갈매기가 초연된 지 2년 후에 체호프와 친분이 있는 연출가는 대중과 연극인들이 알아보지 못한 갈매기의 매력에 이끌렸다. 그는 체호프에게 공연을 허락하지 않으면 자신을 죽이는 일이라면서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제안했다. 다행히 갈매기재공연은 성공했다


















* 콘스딴찐 스타니슬랍스키, 강량원 옮김 나의 예술 인생: 현대 연기 시스템 완성을 향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창조의 길(책숲, 2015)

 



갈매기두 번째 공연 장소는 모스크바 예술 극장이다이 극장을 설립한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Konstantin Stanislavsky)는 체호프의 극작품들을 연출한 전설적인 연출가다. 그는 자서전 나의 예술 인생에서 체호프의 희곡이 없으면 모스크바 예술 극장 소속 극단에서만 생기는 고유의 향기가 잃어버렸다고 회상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있어서 런던 글로브 극장(Globe Theatre)의 전성기가 빛날 수 있었던 것처럼 체호프의 희곡은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 명성을 높여주었다. 


젊은 체호프는 단편소설을 엄청 많이 쓰면서도 희곡에 향한 관심을 멈추지 않았다. 이 시기에 그가 열심히 공부한 극작가는 셰익스피어다. 1882년에 체호프는 모스크바의 푸시킨 극장에 공연된 셰익스피어 작품을 관람했다. 1887년에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라는 제목의 보드빌(vaudeville, 대사보다 춤과 노래가 많은 연극)을 쓰려고 준비한 적도 있다.


갈매기의 등장인물 트레플료프는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배우로 활동하는 어머니 이리나는 트레플료프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트레플료프는 새로운 형식의 문학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낡은 과거의 문학을 비판하는데, 트레플료프는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리나를 과거에 벗어나지 못한 예술인으로 여긴다. 트레플료프는 소린 영지의 저택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직접 만든 연극을 공개한다. 이리나는 주류 문학에 완전히 벗어난 아들의 연극을 이해하지 못한다. 수치심을 느낀 트레플료프는 연극 공연을 중단시킨다.


이라나는 트리고린이라는 작가와 사귄다. 트레플료프는 과거의 문학에 졸졸 따라다니면서 성공한 작가이면서 어머니가 편애하는 트리고린을 싫어한다. 트레플료프는 자신의 실패한 연극에서 연기를 했던 니나를 사랑한다. 그러나 니나도 트레플료프가 만들고 싶은 문학을 이해하지 못한다. 니나는 시골이나 다름없는 소린 저택에서 벗어나 도시에서 생활하는 연극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강한 그녀의 눈빛은 가난한 백수 트레플료프가 아닌 화려한 인생을 살고 있는 유명한 작가 트리고린으로 향한다. 결국 트리고린으로 향한 니니의 동경은 사랑으로 변해버린다. 니나는 배우와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트리고린과 함께 소린 영지를 떠난다.


갈매기의 트레플료프는 햄릿과 비슷한 인물이다. 그는 애인과 같이 다니는 어머니를 질투한다. 트레플료프는 이리나와 트리고린이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한다. 햄릿은 친부를 독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한 숙부를 덴마크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숙부와 함께 침실을 쓰는 어머니를 증오한다.


햄릿갈매기극중극이 나온다. 햄릿은 숙부의 양심을 잡아낼 방법(22)’으로 극단과 함께 <곤자고의 살인>이라는 연극을 꾸민다. 햄릿은 <곤자고의 살인>에 숙부가 친부를 죽이는 과정과 똑같은 장면을 의도적으로 넣는다. 트레플료프는 이리나와 니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연극을 직접 써서 연출까지 맡는다. 만약 공연이 중단되지 않고 잘 마무리돼서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면 그는 두 여자에게 작가가 될 만한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는 동시에 사랑받았을 것이다


햄릿은 친부의 영혼을 만난 이후로 복수의 비수를 가슴속에 품기 시작한다. 하지만 복수의 비수를 일찌감치 빼지 못한 바람에 어머니와 오필리아 등 여러 인물이 죽는다. 어정쩡한 복수극의 결말은 햄릿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햄릿의 복수 지연은 햄릿위대한 비극으로 유명하게 만든 주제다갈매기의 트레플료프도 복수를 과감히 실행하지 못해서 불행에 빠진 인물이다. 그는 트리고린에게 결투를 신청하겠다면서 복수를 위한 총을 가슴 속에 품고 다닌다. 하지만 트레블료프는 복수의 총을 트리고린의 심장을 향해 쏘려는 결단력이 부족했다. 결국 운 좋게(?) 살아남은 트리고린은 니나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두 여자를 모두 빼앗긴 트레블료프는 트리고린의 심장에 박혀 있어야 할 복수의 총알 한 발을 자신의 머리 쪽으로 돌린다.


갈매기에서 니나와 함께 불행한 여성으로 묘사되는 마샤 햄릿의 오필리아에 해당한다. 마샤는 소린 영지의 햄릿트레플료프를 좋아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포기한다. 그녀는 트레플료프에 대한 사랑을 잊기 위해 메드베덴코라는 가난한 교사와 결혼한다. 메드베덴코는 마샤를 좋아하지만, 마샤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이 된 메드베덴코를 따사로운 애정 한 점 느껴지지 않는 태도로 대한다. 햄릿은 미친 척하면서 오필리아를 무척 매정하게 대한다. 오필리아는 햄릿의 매정한 태도를 진심으로 느꼈고,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물에 빠져 자살한다. 마샤는 자살하지 않지만,  그녀의 첫 대사 한 줄에서 우리는 그녀가 현실적인 삶을 이미 포기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샤는 항상 입고 다니는 검은 옷을 인생의 상복이라고 말한다본인이 행복하지 않은 운명을 선택함으로써 불행을 자초한다


서평가 이현우햄릿갈매기를 함께 분석한 글에서 체호프의 희극(갈매기)’셰익스피어의 비극(햄릿)’보다 더 잔혹하다고 평한다.[트레플료프, 이리나, 니나, 트리고린, 이 네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갈매기를 읽는다면 트레플료프의 비극적 삶과 죽음이 유독 두드러져 보인다하지만 갈매기에 나오는 주변 인물들 또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영지와 큰 저택의 주인 소린은 도시로 가고 싶어 하지만,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조용히 숨을 거둔다. 메드베덴코는 마샤와 그녀의 식구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불편한 동거를 끝내지 못한다


암울한 회색빛 현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더 짙어진다. 칙칙한 쇠퇴의 그림자가 덮친 영지에 사는 인물들은 분위기를 밝게 해보려고 함께 먹고, 마시고, 오락을 즐긴다. 하지만 희망의 밝기를 억지로 부풀리면 불행이 사라지기는커녕 일시적으로 가려질 뿐이다. 애써 행복한 척하면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쓴웃음이 삐져나온다. 갈매기는 잔혹한 희극이라기보다는 비극의 농도가 짙은 희극이다.







[] <비극보다 더 잔혹한 희극>, 중앙선데이, 201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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