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는 지혜를 사랑한(philosophy) 수많은 철학자를 찬양하라고 만들어진 기념비가 아니다. 철학사는 철학자라는 산봉우리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든 지도다. 대부분 철학사 지도는 고대 그리스에 있는 산봉우리에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그리스가 아닌 지역에서 활동했다. 철학사에서 언급되는 ‘고대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로 대표되는 그리스 본토의 도시 국가들과 이들에게 지배받은 식민 도시 국가들을 가리킨다. ‘서양 최초의 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Thales)는 가장 먼저 생긴 철학 산봉우리다. 탈레스는 현재 튀르키예 영토가 된 이오니아의 밀레토스에서 태어나고 활동했다. 이오니아는 그리스의 식민 도시였다.
철학사 지도의 종류가 많다. 종류가 다양한 만큼 지도에 표기된 ‘철학자 산’의 개수도 차이가 난다. 생긴 지 오래되지 않은, 비교적 젊은 철학자 산들을 비중 있게 다루는 철학자 지도가 나오고 있지만, 이미 만들어져서 유통된 대부분 철학사 지도는 최신 정보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철학사 지도들은 ‘현대 철학자’로 분류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 산들까지 소개한다. 철학자 산을 오르려면 철학자 산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철학 사상’을 반드시 습득해야 한다. 그런데 철학자 지도마다 철학 사상에 관한 주요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아주 잘 만든 철학자 지도를 딱 하나만 고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철학사 지도에 적힌 내용은 변한다. 시간이 지나면 내용이 수정될 수 있으며 새로운 정보가 추가될 수도 있다. 맨 처음 언급했듯이 철학사는 ‘불완전한 지식이 담긴 지도’이지 ‘완벽한 기념비’가 아니다.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철학이 아닌 ‘철학사를 사랑’하는 경우가 있다.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과 ‘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은 다르다.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 지식을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식을 ‘검토’하면서 ‘숙고’한다. 플라톤(Plato)의 대화 편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묘사된 소크라테스(Socrates)는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 플라톤, 강철웅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명》 (아카넷, 2020년)
최대로 좋은 일은 여기 사람들에게 그러듯 그곳 사람들을 검토하고 탐문하면서 지내는 일입니다. 그들 가운데 누가 지혜로운지, 그리고 누가 지혜롭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은 아닌지 하는 것들을 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41d, 112쪽)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자들을 많이 아는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 사상을 지적인 면모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품’으로 여기지 않는다.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자들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한계나 결점으로 보일 만한 내용이 있으면 검토한다. 소크라테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철학자의 견해를 검토하는 철학 공부는 ‘모든 논변을 동원해서 저항’하는 행위다.
* 플라톤, 전헌상 옮김 《파이돈》 (아카넷, 2020년)
자네들은, 내 말을 따를 거라면, 소크라테스는 조금 생각하고 진리를 훨씬 많이 생각해서, 내가 뭔가 맞는 말을 하고 있다고 자네들에게 믿어지면 동의하되, 그렇지 않다면 모든 논변을 동원해서 저항하게나.
(《파이돈》 91c, 98쪽)
‘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을 숙고하고 검토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그들의 일차적 목표는 철학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 원전을 쉽게 가공한 철학사를 편애한다. 철학 원전에 본격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이해하기 힘든 철학 용어는 외운다. 철학 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해도 철학 사상의 정수가 담긴 용어만 알고 있으면 철학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자의 어깨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앵무새’다. 앵무새가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 내듯이 철학 앵무새는 철학사 내용을 똑같이 흉내 낸다. 철학 앵무새는 철학자들에 저항하는 힘이 없다. 앵무새는 똑똑하지만, 철학 앵무새는 ‘똑똑한 척’ 한다.
철학 앵무새가 되지 않으려면 철학 원전을 직접 읽고, 철학사를 검토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사실 이런 독서 방식의 과정은 번거롭고, 그만큼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오독의 위험성도 있다. 그래도 ‘철학사 지도가 알려주는 쉬운 길’보다는 ‘철학 원전이 알려주지 않는 어려운 길’에 도전하고 싶다.
항상 책을 읽으면 철학 전문 서점 <소요서가>가 만든 책갈피를 사용한다. 그 책갈피 속에 적힌 칸트(Immanuel Kant)의 말이 내게 책을 적극적으로, 좀 더 거칠게 읽으라고 부추긴다.
“너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나는 이 책갈피에 ‘또 하나의 용기’를 눈빛으로 적는다. “나의 무지와 오류를 인정할 용기를 가져라!” 이런 용기까지 충만하면 철학을 열렬하게 사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