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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강명수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7월
평점 :
평점
4점 ★★★★ A-
잃어버린 사람이에요.
당신도 그렇네요.
(고연옥, 희곡 <인간이든 신이든> 중에서,
《고연옥 희곡집 3》 316쪽)
체호프(Anton Chekhov)의 4대 장막극에 속한 《갈매기》는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사로 시작된다.
메드베덴코: 당신은 왜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니죠?
마샤: 이건 내 인생의 상복이에요. 난 불행하거든요.
마샤는 극작가가 되고 싶은 가브릴리치를 좋아한다. 그러나 가브릴리치는 대지주의 딸 니나를 좋아한다. 니나도 가브릴리치를 좋아하고 있으며 그녀의 꿈은 연극 배우다. 가브릴리치는 ‘새로운 형식의 희곡’을 써서 소린 영지에 체류하는 사람들에게 공개한다. 연극의 주연 배우는 니나다.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 가브릴리치의 재능을 유일하게 알아보는 사람은 소린의 주치의 도른이다. 유명한 연극 배우인 가브릴리치의 어머니 이리나는 일하지 않고 글만 쓰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미망인 이리나는 소설가 트리고린과 연인 관계다. 가브릴리치는 명성과 사랑을 동시에 얻은 트리고린을 싫어한다.
낙심에 빠진 가브릴리치는 갈매기를 사냥한다. 그는 니나 앞에 죽은 갈매기를 보여주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자살할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니나는 가브릴리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니나의 마음은 기브릴리치가 아닌 트리고린으로 향해 있다. 니나는 가브릴리치의 희곡보다 트리고린의 소설 <낮과 밤>을 좋아한다. 트리고린은 자신이 쓴 소설에 큰 관심을 보인 니나에 이끌린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체호프는 의욕적으로 글을 쓴 작가다. 젊은 시절 체호프는 ‘체혼테’라는 필명으로 짤막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당시 체혼테가 쓴 소설들은 권위 있는 문학잡지가 아닌 유머 잡지에 실린다. 그에게 글쓰기는 ‘부업’이었다. 의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때까지 체호프는 생계비를 벌기 위해 글을 썼다. 일 년 동안 백 편이 넘는 단편소설을 썼다.
체호프는 두 번째 장막극 <숲의 정령>이 상업적으로 실패한 이후로 7년 동안 장막극을 쓰지 않았다. 체호프가 절치부심 끝에 쓴 장막극이 바로 《갈매기》다. 체호프는 7년 전에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고 싶은 마음에 의욕적으로 《갈매기》를 썼다. 그는 ‘극작가’이자 ‘의사’인 체호프 본인 모습뿐만 아니라 화가, 작가, 연극 배우로 활동하는 지인들의 삶까지 녹여서 새로운 인물들을 만들었다. 가브릴리치는 대중성이 있으나 틀에 박힌 주류 문학(또는 예술)과 파격적인 형식의 새로운 문학이라는 갈림길에 선 체호프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작가로서의 명성과 경제력을 동시에 얻으려면 대중과 비평가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써야 한다. 그러나 가브릴리치의 머릿속에 ‘새로운 형식’이 자꾸만 나타난다. 그것이 글을 쓰려는 가브릴리치의 손목을 여러 번 잡는다.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할수록 가브릴리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가브릴리치가 잃어버린 것이 하나씩 늘어난다. 공교롭게도 가브릴리치는 자신이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잃어버린다. 새로운 형식의 문학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젊은 자신감, 니나 그리고 어머니 이리나.
니나는 문학 청년 가브릴리치를 좋아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을 찾으려고만 하는 그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는다. 니나는 가브릴리치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트리고린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다. 트리고린과 함께 모스크바에 살면 연극 배우가 되는 꿈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줄어든다. 결국 니나는 자신의 꿈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소린 영지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가브릴리치를 포기한다. 하지만 트리고린과의 사랑은 실패로 끝나고, 불행한 일들을 연이어 겪은 이후로 연극 배우의 꿈이 시들어져서 더 이상 반짝거리지 않는다. 니나는 한순간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자신에게 제일 중요한 존재들을 잃어버린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하나는 자신을 외면한 니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가브릴리치, 또 하나는 가브릴리치를 사랑했고 화려했던 과거의 본인 모습이다.
《갈매기》에서 처음으로 대사를 주고받은 마샤와 메드베덴코도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려서 불행해진 사람들이다. 인생의 상복을 입는다는 마샤의 대사는 희곡의 첫인상이자 희곡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것은 극 중 인물들 모두가 마주하게 되는 비극적인 진실이다. 《갈매기》에 느닷없이 일어난 비극적인 결말을 생각하면 마샤의 대사가 더욱 애잔하게 느껴진다. 《갈매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복장은 제각각 다르지만, 그들이 언젠가 입어야 할 옷은 검은 옷이다. 그들은 인생의 상복이 어울리는 사람들[주]이다.
(사이)
나:
지금 우연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그렇네요.
당신도 제법 인생의 상복이 잘 어울려요.
아니라고 부정해봐도 소용 없어요.
살면서 언젠가는 인생의 상복을 입게 되는 날이 올 테니까요.
아니라고?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이미 상복을 입은 채로 살아가고 있을 수 있어요.
[주] 유진 오닐(Eugene O’Neill)의 희곡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이형식 옮김, 지만지드라마, 2019년)에서 따온 표현이다. 이 작품 역시 불행한 사람들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