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예민하다. 민감한 식물은 잘 자란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에서 세상 모든 아름다운 꽃은 흔들리면서 핀다고 했다. 햇볕을 쬔 식물 줄기는 흔들면서 햇볕이 있는 쪽으로 자란다. 땅속에 있는 뿌리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뿌리 역시 흔들면서 자란다. 중력을 느낀 뿌리는 중력이 잡아당기는 아래쪽으로 뻗는다. 식물이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극 받으면서 성장하는 현상을 ‘굴성(屈性)’이라 한다.
* 나탈리 사로트, 이광호 · 최성연 옮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지만지드라마, 2023년)
인간은 예민하다. 주변 상황에 따라 감정이 흔들리며 행동이 달라진다. 우리 삶의 방향은 크고 작은 굴곡들을 지날 때마다 바뀐다. 프랑스 작가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는 첫 소설을 쓰는 데만 7년이나 걸렸다. 1932년부터 쓰기 시작해서 1939년에 발표한다. 소설 제목은 <트로피즘>(tropismes)이다. 제목의 뜻은 굴성이다. 사로트는 식물학 용어인 ‘굴성’을 자신의 문학 세계를 정의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사로트가 묘사한 작중 인물들은 외부 상황에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예민한 존재다. 사로트는 인간이 예측 불가능한 외부 환경을 마주할 때 감정과 행동이 어떻게 달라는지 주목한다.
사로트가 쓴 마지막 희곡 《아무것도 아닌 일로》는 ‘트로피즘 드라마(tropism drama)’다. 희곡에 나오는 인물은 두 명의 남자다. 두 남자는 이름이 없다. 희곡은 오직 두 남자의 대화로만 채워져 있다.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말다툼’에 가깝다. 두 남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말다툼한다.
남자 1: 응, 그래 알겠어, 그래도 얘기해 봐.
남자 2: 음… 그러니까… 그건 그냥 말에 관한 건데…
남자 1: 말? 우리가 했던 말? 설마 우리가 무슨 말다툼이라도 했는 거야? 그럴 리는 없어. 그랬다면 내가 기억을 했겠지.
남자 2: 아니, 그런 말다툼이 아니고… 다른 말… 했던 말 때문이라기보다는… 사실 하지 않은 말 때문이지… 너 같은 사람들은 몰라. 그게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남자 1: 무슨 말인데? 어떤 말이었는데? 진짜 미치겠다. 사람을 왜 이렇게 괴롭혀?
남자 2: 너 괴롭히려는 거 아냐. 하지만 내가 만일 너한테 얘기하면…
남자 1: 얘기하면 뭐?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 아무것도 아니라며?
남자 2: 그래, 맞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이렇게 된 거지.
(10~12쪽)
말다툼하는 두 남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두 남자는 발화자인 동시에 발화자가 한 말을 듣는 자다. 하지만 듣는 자는 발화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말을 처음 꺼낸 발화자는 듣는 자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두 남자는 정말 대화를 못 하는 바보인가 아니면 일부러 서로 괴롭히려고 대화를 계속 비비 꼬는 것인가?
* [개정판] 롤랑 바르트, 김희영 옮김 《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2022년)
텍스트는 예민하다. 우리는 예민해진 텍스트를 즐겨야 한다. 텍스트가 예민해지려면 독자는 저자가 텍스트에 담은 본래 의미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독자의 관점에 따라 텍스트가 다르게 읽힐 수 있고, 텍스트 속 의미도 달라진다. ‘괜찮아, 틀리면 어때.’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저자의 권위에 눌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텍스트를 읽으라면서 독자를 독려한다. 텍스트에 독자의 관점이 뚫고 지나가면 저자는 죽지만, 오히려 텍스트가 살아난다.
* 존 그리빈, 김상훈 옮김 《시간의 물리학: SF가 상상하고 과학이 증명한 시간여행의 모든 것》 (휴머니스트, 2024년)
* 콜린 스튜어트, 김노경 옮김, 지웅배 감수 《시간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학: 세계적인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알려주는 시간에 대한 10가지 이야기》 (미래의창, 2023년)
* 스티븐 베리, 신석민 옮김 《열역학: 열과 일, 에너지와 엔트로피의 과학》 (김영사, 2021년)
과학이 뚫고 지나간 《아무것도 아닌 일로》를 읽는다면, 낯선 관점을 만나서 예민해진 이 작품은 ‘엔트로피 드라마(entropy drama)’가 된다. 엔트로피는 모든 물질과 환경의 무질서 정도를 나타내는 용어다. 모든 것은 질서가 있는 안정적 상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해체되고, 산산이 흩어진다. 질서가 사라지면 무질서가 나타난다. 이 상태를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높아진다)’라고 표현한다. 항상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모든 것이 변하는 이유도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희곡에 묘사된 두 남자의 끝없는 말다툼은 불안정하다. 그들의 혼란스러운 대화 분위기와 감정 상태는 계속 상승하는 엔트로피다. 엔트로피가 작으면 모든 것이 질서를 유지하게 되고, 안정적인 상태가 된다. 하지만 높아진 엔트로피는 거꾸로 낮아지지 않는다. 우리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듯이 무질서한 엔트로피를 예전의 질서정연한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이를 ‘열역학 제2법칙’이라 한다.
* 강양구, 김상욱, 이권우, 이명현, 이정모 《살아 보니, 시간: 바로 지금에 관한 이야기》 (생각의힘, 2024년)
* 카를로 로벨리, 이중원 옮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쌤앤파커스, 2019년)
《아무것도 아닌 일로》는 두 남자가 말다툼하는 시점이 언제인지, 또 그들이 있는 장소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엔트로피 희곡’의 주인공은 ‘시간’이다. 희곡 속의 시간은 계속 흐른다. 희곡이 끝나도 시간은 하염없이 흐른다. 시간은 영원히 흐르고, 엔트로피가 높아지면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죽는다. 텍스트에 나온 인물도, 텍스트 밖에 있는 인간 모두 죽는다. 엔트로피는 멈추지 않는다. 무질서 상태의 우주에 별과 행성은 없다. 완전한 ‘무(無)’의 세계가 되는데, 이 시점에 도달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시간’은 우리 삶에 아주 가까이 있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진 시간 자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김상욱 교수는 시간이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인식 자체가 착각이며, 변하는 건 시간이 아니라 ‘나’라고 말한다.[주1] 사실 김상욱 교수의 견해는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이미 언급했다. 아인슈타인은 동료 학자의 죽음을 언급한 편지에서 “물리학을 믿는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이 집요하게 계속되는 착시일 뿐이라는 사실을 안다”[주2]라고 썼다. ‘시간 없는 우주’를 지지하는 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는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인식을 ‘일시적인 시간 구조’로 본다. 시간 개념을 허상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의 주인공은 시간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영화 <돌이킬 수 없는>에 나온 문구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Le Temps Détruit Tout)’는 새로 써야 한다. 속절없이 흐르기만 하는 시간 위에 모든 것을 서서히 파괴하는 엔트로피가 있다. 무작정 흘러가는 시간을 애써 무시할 수 있어도 이 세상이 계속 변한다는 사실은 영원하다.
[주1] 《살아 보니, 시간》, 39쪽.
[주2]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1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