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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패턴
필립 볼 지음, 조민웅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9년 2월
평점 :
평점
3.5점 ★★★☆ B+
자연은 지구가 품고 있는 가장 오래되었고, 거대한 예술 작품이다. 인간은 자연의 소유주인 지구의 허락을 구하지 않은 채 자연을 실컷 이용하고 있는 동물이다. 자연이 있던 땅 위에 도시를 짓고,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음식들 만들어 먹고, 자연을 손질하여 정원을 만든다.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진 동물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안다. 멋진 자연경관을 발견하면 풍경화를 그리거나 카메라에 담는다.
로버트 스미스슨
『나선형 방파제』
1970년
시대가 변하면서 몇몇 예술가는 자연을 예술 작품의 재료로 쓰기 시작한다. 그들은 작업실에서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밖으로 나온 그들이 가는 곳이 작업실이 된다.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이라는 미국의 예술가는 아무것도 없는 호숫가에 엄청난 규모의 예술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중장비를 다루는 인부들을 불러 모아 6일 동안 방파제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방파제는 폭 4.6m, 전체 길이 460m에 이르는 예술 작품이 되었다. 작품명은 ‘나선형 방파제(Spiral Jetty)’다. 이 작품이 알려진 이후로 ‘대지 미술(land art)’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대지 미술가들은 상업화된 예술이 넘쳐흐르는 도시에 거부감을 느꼈고, 환경 운동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지구의 꺼칠꺼칠한 피부 위에 작품들을 새겨 넣었다. 그래서 대지 미술을 ‘earthworks’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지 미술 작품들은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다. 천천히 밀려오는 시간의 파도가 대지 미술 작품들을 지워버린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 작품이 닳기 시작하면서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 시간이 더 흐르면 작품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사라졌다기보다는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살아있는 지구의 시선으로 바라본 대지 미술 작품은 자연이라는 예술 작품에 인간의 손길을 얹은 것에 불과하다. 『나선형 방파제』에 직접 가지 않고도 자연이 만들어 낸 나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달팽이 껍데기는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해서 점점 더 확대되는 나선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의 패턴》은 손길이 아닌 눈길만 주면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형태’들을 모아 놓은 도록이다. 이 책에 100점이 넘는 풍부한 도판이 실려 있다. 우리는 안정적이면서도 규칙적인 패턴을 찾아다니는 ‘패턴 탐색자’다. 예로부터 대칭은 아름다움의 기본 조건이었다. 예술가들은 대칭성의 아름다움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거나 건축물을 세웠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대칭’은 없다. 패턴 탐색자는 겉으로 보기에 균형적이지 않은 사물이나 존재에서 아름다운 대칭성을 발견한다.
자연의 다양한 형태를 관찰할 줄 아는 패턴 탐색자는 예술가가 되어 자신이 발견한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반면 과학과 수학을 좋아하는 패턴 탐색자는 자연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분석한다. 수학자들은 무질서한 형태 속에도 질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작은 패턴이 무한히 반복되면서 이보다 더 큰 패턴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프랙털(fractal)’이라고 한다. 작은 패턴과 전체 패턴의 모양이 비슷해서 프랙털은 자기 유사성(Self Similarity)을 지니고 있다.
자연은 살아있는 예술 작품이다. 그것은 인간이 나타나기 전부터 이미 존재했다. 살아있는 것은 변하고,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 어떠한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인간은 자연을 이용할 줄 알지만, 예술 작품이 되는 자연을 소유할 수 없다. 인간은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분인데 자연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자연의 소유주는 지구다. 지금도 여전히 인간은 지구를 더럽히고, 예술 작품인 자연을 파괴하는 반달리스트(vandalist)로 활동하고 있다. 우린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cyrus의 주석>
* 54쪽
다시 말해 동일한 원리가 피그미 난쟁이[주1]나 코끼리의 혈관계, 모과나무나 세쿼이아의 가지를 만드는 데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문]
The same principles will work for the vascular system of a pygmy shrew or an elephant, or for the branches of a japonica and a redwood.
[주1] 피그미(pygmy)는 키가 작은 민족이나 난쟁이를 뜻한다. ‘피그미 난쟁이’는 같은 뜻의 두 단어를 이중으로 쓴 ‘겹말 오류’이며, ‘오역’이기도 하다. 원문은 ‘pygmy shrew’로, 좀뒤쥐 또는 난쟁이땃쥐와 같은 땃쥐목 땃쥐과에 속한 동물을 뜻한다.
* 193, 195쪽
엑스선을 결정 구조에 쬐어 주면 규칙적인 배열의 원자와 분자에서 산란된 빛이 간섭해 점들로 된 패턴을 만든다. 여기서 원자들의 위치를 유추할 수 있다. 이 기술이 ‘엑스선 결정 분석법’이다. 20세기 초 처음 사용되어 간단한 광물의 결정 구조를 유추하는 데 쓰였고, 20세기 중반부터는 단백질 같은 복잡한 생물 분자의 원자 구조를 파악하는 데 쓰이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이 기술로 생명 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953년에는 이 기술이 DNA로 이루어진 결정을 연구하는 데 이용되었다. 덕분에 이 중요한 분자가 그 유명한 ‘이중 나선’ 구조임을 알게 되었다. [주2]
[주2] 엑스선은 광물의 결정(結晶)을 통과하면 회절 현상이 발생해서 패턴이 생긴다. 이 패턴으로 광물의 결정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이 패턴은 X선 회절을 처음 발견한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폰 라우에(Max von Laue)의 이름을 따서 ‘라우에 무늬’라고 하며, 회절이 일어나는 조건을 ‘라우에 조건’이라고 한다. X선 회절 실험을 통해 DNA의 구조를 처음 확인한 과학자가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