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이 올해로 2년째다. 지난해는 고대 그리스 고전 문학을 읽었다면, 이번 해는 고대 서양 철학을 본격적으로 읽어 나간다. 첫 번째 텍스트는 플라톤(Plato)의 대화 편 『소크라테스의 변명(또는 변론)』이다. 1월 6일 올해 첫 번째 토요일이 바로 올해 첫 모임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서울에 가야 해서 모임에 나오지 못했다.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2년 차]
* 플라톤, 천병희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도서출판 숲, 2012년)
* 플라톤, 강철웅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명》 (아카넷, 2020년)
독서 모임을 위해 읽어야 할 『소크라테스의 변명』 번역본은 천병희 교수의 책(이하 ‘변론’)으로 정해졌다. 다른 후보 번역본은 정암학당 소속 연구자들이 번역한 ‘아카넷 판본(이하 ‘변명’)’이었다. 나는 이 책을 추천했다.
아카넷 판본의 ‘플라톤 전집’은 본문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옮긴이의 각주가 많은 편이다. 옮긴이는 『변명』에 묘사된 소크라테스의 재판 장면뿐만 아니라 당시 아테네의 모습과 사회적 분위기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나처럼 텍스트를 깊이 읽는 독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석 읽기를 즐긴다. 하지만 친절한 주석이 너무 많아도 문제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주석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천 교수의 『변론』은 각주의 양이 적다. 그래서 주석의 유혹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본문 읽기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변론』의 각주 중에 ‘검토’해야 할 것이 있다.
* 각주 9, 25쪽
Leontinoi, Gorgias, Keos, Prodikos, Elis, Hippias. 이들은 이 무렵 아테나이에 와서 활동한 이름난 소피스트들이다.
출신지와 고대 철학자 이름을 같이 쓸 땐 중간에 쉼표를 넣지 않는다. ‘출신지 of 철학자 이름’ 식으로 써야 한다. 따라서 각각 ‘Gorgias of Leontinoi’, ‘Prodikos of Keos’, ‘Hippias of Elis’로 표기해야 한다.
* 강철웅 옮김 《소피스트 단편 선집》 (전 2권, 아카넷, 2023년)
* 루이-앙드레 도리옹, 김유석 옮김 《소크라테스》 (소요서가, 2023년)
각주 10번 소피스트에 대한 천 교수의 설명은 소크라테스(Socrates)와 소피스트를 철저히 구분하는 기존의 견해를 답습하고 있다.
* 각주 10, 25쪽
소피스트는 원래 특수한 기술이 있는 지자(知者)라는 뜻인데, 기원전 5세기에 이 말은 보수를 받고 지식을 전수하는 순회 교사들을 지칭했다. 그들은 지리, 수학, 문법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쳤으나 출세를 위하여 젊은이들에게 주로 수사학을 가르쳤다.
수사학의 핵심은 ‘로고스(logos)’, 즉 ‘말’이다. 로고스의 중요성을 강조한 소크라테스는 직접 글을 쓰지 않았다. 고르기아스는 말이 가진 설득의 힘이 인간의 영혼을 움직이는 신적인 힘과 맞먹는 것으로 이해했다. 당시 그리스인은 설득의 힘을 신령스러운 능력으로 받아들였다.
이처럼 고르기아스는 설득의 힘을 가진 로고스를 ‘덕(arete)’보다 중요하게 인식했다. 그러나 모든 소피스트를 덕의 기능에 무관심한 수사학 전문 교사로 규정할 수 없다. ‘첫 번째(최초의) 소피스트’로 알려진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말과 덕의 기능 모두를 가르치는 일에 매진했다. 그는 고르기아스와 다르게 덕의 교사임을 자처했다.
천 교수의 각주 10번은 소피스트를 소크라테스와 대비되는 ‘비 철학적 학파’로 보는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소크라테스 대 소피스트’는 고대 철학의 주류 견해로 오랫동안 자리 잡았으나 소피스트에 대한 긍정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거의 밀려난 상태다. 소크라테스를 묘사한 고대 철학자들의 텍스트들을 연구한 루이 앙드레 도리옹(Louis-Andre Dorion)은 자신의 책 《소크라테스》(소요서가, 2023년)에 소피스트들도 소크라테스처럼 철학적 질문을 성찰의 특별한 대상으로 삼았음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