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가와우치 아리오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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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


예문에 밑줄이 친 감상에 해당하는 한자를 고르시오.

 

感賞  感想  感傷  鑑賞  監床



나는 2번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국어사전은 내게 2번이 정답이라고 말하면서도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려주었다. 새로운 사실이란 내가 여태까지 몰랐던 또 다른 감상의 한자 표기. 국어사전이 가르쳐준 감상4번이다. 2번 감상의 뜻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이다. 4번 감상은 예술 작품을 이해하여 즐기고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 사람은 예술 관련 지식이 없으면 작품 감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술에 무지하기 때문에 걸작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이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예술 작품을 어떻게 볼지 설명해 주는 전시회 해설자(docent)를 찾는다. 과연 작품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고 있으면 예술 감상이 쉬워질까? 일단 쉬워진. 하지만 재미없다예술 상식으로 차려진 밥상은 처음에 맛있다. 그러나 책과 전시회 해설자가 계속 떠먹여 주는 상식은 식상하다모든 사람이 다 아는 상식만 채워진 감상이 재미만 없는 게 아니다. 예술을 이해하고 느끼는 본연의 를 표현할 기회도 없다.


4번 감상은 거울 감()’ 상줄 상()’이 만나서 생긴 단어다. 나는 예술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4번 감상의 한자어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그러면 예술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질 거로 믿는다예술 작품이 막연히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을 거울이라고 생각하면서 바라보자. 예술 작품이 거울로 변하는 순간, 거기에 작품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나타난다. 예술 작품에 비친 본인 모습을 만나면 이제부터 내가 느낀 것을 편안하게 이야기하면 된다. 작품에 관한 지식, 몰라도 된다. 여기서부터 예술 감상이 시작된다


,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작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해석이 상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틀렸다고 생각해선 안 되고, 타인의 주관적 해석을 지적해서도 안 된다. 예술 감상하는 자신 또는 타인을 칭찬하라, 틀려도 좋으니 즐겨라. 지적(指摘)하는 태도는 예술 감상을 방해하는 적()이다. 자유롭게 작품을 해석하는 관점을 존중하지 않는 감상은 지적(知的) 대화가 아니.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는 우리의 예술 감상을 막는 진입 장벽을 무너뜨리는 책이다. 시라토리 겐지(白鳥 建二)는 시각장애인이다. 매년 수십 번씩 미술관에 다닌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그는 작품을 본다. 이 책의 저자는 시라토리 씨와 함께 미술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오직 눈으로만 보는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진 감상법을 해체한다. 예술 작품은 다양하다. 예술 작품에 눈으로 보는 그림만 있는 게 아니다. 관람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은 손으로 만져야 하고, 때로는 움직여야 한다.


예술 작품의 형태가 다양해질수록 관람자 스스로 작품을 바라보고 생각할 기회가 많아진다. 전시회나 미술관에 관람자의 감상을 안내해 주는 해설자의 역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해설자와 함께 걸으면서 작품을 바라보면 관람자의 마음과 머릿속에 채워진 건 상식이다. 마음과 머리가 무거워지면 예술을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시라토리 씨와 함께 미술관에 가면 마음과 머리는 항상 가볍다. 미술관에 들어오기 전에 머릿속을 비워 두어야 한다. ‘아는 상태에서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예술을 감상한다. 이것이 시라토리 씨가 지향하는 감상법이다.



* 33~34


 “나는 다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보거나 발견하는 게 재미있어.”

 아, 그렇구나. 그는 아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구나. (중략)

 시라토리 씨의 미술 관람에는 적당히 무지한 상태가 꼭 필요한 듯했다. (중략)

적당히 무지한 상태란 좋은 것이었다. 선입견 없이 무심하게 그저 작품과 마주할 수 있으니까. 마치 안내서 없이 다니는 나 홀로 여행처럼.



상식이 넘치는 상태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 결국 눈으로 본 것과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가 아는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작품을 거울로 인식하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내 모습이 나타난다. 예술 작품의 입은 무겁다. 그래서 감상이 서투른 사람들은 예술에 관한 지식이 꾹 닫아버린 작품의 입을 열게 하는 열쇠라고 믿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감상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열쇠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힘, 그것이 바로 예술 감상을 위한 열쇠다. 관람자를 위한 거울로 변신한 작품이 비로소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관람자에게 말을 걸어온다. , 그럼 무엇이 보이는지 말해주세요.”


저자는 작품에서 무언가를 느끼거나 의미를 찾는 것은 관람자의 몫이라고 강조한다(127). 다양한 해석을 용인하는 작품의 넓은 품은 예술로 표현된 세상과 사람을 거울처럼 보여준다. 예술 작품은 모든 관람자의 생각들을 안아줄 수 있을 만큼 품이 넓다. 왜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예술 작품의 참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이걸 제대로 봤으면 예술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cyrus의 주석>



* 41

 

 최근에는 이것도 저것도 예술 작품이 되어서 포르말린에 담근 소[]나 대부호의 부동산 매매 기록을 작품으로 하는 예술가도 있다니까.










[포르말린에 담긴 소가 나오는 예술 작품은 영국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황금 송아지(2008)일 수 있다포르말린에 담긴 박제된 송아지의 발굽과 뿔, 그리고 머리 위에 있는 원반은 금으로 되어 있다. 


허스트는 상어(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불가능성,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황금 뿔이 달린 검은 양, The Black Sheep with the Golden Horn, 2009) 죽은 동물을 포르말린 수조에 넣은 작품을 전시회가 아닌 경매에 공개하여 살아 있는 가장 비싼 예술가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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