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의 그림은 악의 꽃이었다 - 세기말적 멜랑콜리가 만든 기상천외한 화가들 청색종이 예술선 3
박세현 지음 / 청색종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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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점  ★★☆  B-






세기말은 희귀 단어다. 그 이유는 세기말은 일상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세기가 끝나가는 무렵에 사람들은 이 단어를 많이 쓴다. ‘세기말야누스(Janus)의 얼굴을 가진 단어. 야누스는 로마 신화에서만 묘사되는 ()의 신이다. 문이 열리면 앞으로 지나갈 수 있으며 뒤로도 지나갈 수 있다. 고대 로마인들은 앞뒤가 공존하는 문을 상징하는 야누스의 얼굴이 두 개라고 생각했다. 야누스의 얼굴은 처음과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야누스에서 유래된 1(January)한 해가 끝난 뒤에 이어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달이다.


필자는 1980년대 말에 태어난 할배다. ‘세기말이 대중의 뇌리에 꽂혔던 1999년을 통과했다. 1999년의 문을 통과하기 직전 대중은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1999년 종말 예언설을 들먹거렸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999년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고 했다. 종말을 믿는 사람들은 공포의 대왕지구와 충돌하는 거대 소행성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전 세계의 모든 컴퓨터가 21세기를 인식하지 못해 오작동할 수 있다는 ‘Y2K’까지 가세했다. 세기말의 짝꿍 ‘Y2K’‘Year 2000 Problem’를 뜻하는 단어다


당시 여린 심성을 가진 어린 필자는 종말을 두려워했다. 사람들은 점점 다가오는 1999년의 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래도 지구는 돌았다1999년의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순간지구가 펑 터지는 줄 알았다공포의 대왕21세기에 처음으로 발을 딛는 인류를 축하해 주러 찾아오지 않았다. 모든 컴퓨터는 똑똑했다. 21세기가 익숙하지 않은 몇몇 컴퓨터만 오작동을 일으켰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세기말과 Y2K는 역사를 보관하는 서랍 속에 있다. 21세기 말에 인류는 서랍을 열어 세기말을 꺼낼 것이다. 필자가 오래 살아서 세계 최고령 인간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면 1999년에 만났던 세기말을 재회할 수 있다. 그래도 내가 장수하는 것보다 지구가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구의 건강을 악화하게 만드는 인간이 공포의 대왕이다. 지구에 사는 공포의 대왕은 이기적이다. 전쟁을 일으키고, 자연을 파괴한다. 그리고 지구에 온난화이불을 푹 덮어주기도 한다. 인간이 덮어준 이불 때문에 지구는 열병에 걸려 펄펄 끓는 상태다. 지구가 열 받으니까, 빙하가 너무 많이 녹는다.


세상이 점점 좋아질수록 공포의 대왕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판친다.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나머지 사람들은 불안하고 두렵고, 괴롭다자고 일어나면 찾아오는 다음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진실과 가짜 뉴스를 구분하기 어렵다. 인간보다 더 똑똑한 AI가 가짜 뉴스를 걸러낸다고 해도, 여전히 두렵다. AI가 가짜 뉴스와 가상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지금 세기말 없는 세기말에 살고 있다


과거 사람들 또한 세기말 없는 세기말을 살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기말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었던 시절을 살았으니까. 예술가들은 세상이 변하면서 요동치고 있을 때 느꼈을 당대 사람들의 반응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묘사했다. 어떤 예술가는 절망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를 묘사했다면, 또 다른 예술가는 명랑하고 행복한 분위기만 주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종말이 연상되는 세기말에 훗날 걸작으로 칭송받는 예술 작품들이 탄생했다. 세기말의 그림은 악의 꽃이었다: 세기말적 멜랑콜리가 만든 기상천외한 화가들[주1]은 세기말에 나온 예술 작품들을 시대별로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서 첫 번째로 언급되는 세기말은 어스레한 중세의 황혼빛이 남아 있는 15세기 말이다. 중세의 끝과 르네상스의 시작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화려한 르네상스를 돋보이려고 중세를 암흑시대로 규정하는 역사관은 편협하다. 중세 말과 르네상스 초기에 활동한 화가들은 종교 갈등을 직접 경험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구원해 줄 것만 같았던 종교는 갈수록 경건함과 멀어지고, 종교인들은 교파 지키기에 혈안이 돼 있다. 종교 갈등에서 비롯된 세기말적 우울에 예술가의 정신은 휘청거린다. 머리가 어질어질한 예술가들은 더 이상 종교적 구원에 기대지 않았고, 종교 개혁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암울한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였으며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그림을 그렸다.


16세기 말부터 20세기 말까지의 사회적 분위기와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제각각 다르지만, 세기말의 문 앞에서 항상 축제와 전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희망 가득한 축제를 더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세기말의 문을 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동족을 죽이면서까지 향락을 누리려는 인간의 잔인한 행보에 실망하여 인류애를 상실한 사람들은 세기말의 문을 열기가 두렵다. 예술가들은 빛과 그림자가 섞인 세기말적 풍경을 캔버스에 기록했다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도덕이 타락하여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세기말 영국의 모습을 기록했다. 프랑스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는 왕정 독재 정치를 무너뜨린 시민혁명을 지지했다. 하지만 믿었던 혁명파는 보수적인 기득권이 되었다. 도미에는 과감한 변화를 두려워해서 세기말의 문을 여는 일에 소심한 정치인들을 조롱하는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웃음 가득한 축제와 울음이 그칠 줄 모르는 전쟁의 틈 속에 껴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다. 과연 21세기의 세기말 없는 세기말이 만든 예술은 어떤 색으로 남게 될까? 잔인한 핏빛? 따뜻함이 전혀 묻어 있지 않은 비정한 파란색? 아니면 검댕이 까뭇까뭇 묻은 초록빛? 우리 시대 예술의 색은 21세기 말 사람들이 평가해 줄 것이다.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1] 책 제목에 있는 악의 꽃은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Baudelaire)의 시집 제목이다. 그런데 이 책에 보들레르가 두 번 언급되지만, 정작 시집을 언급한 내용은 없다.








[2] 그리고 보들레르를 보를레르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144, 148).





* 31

 




 현재 보스가 남긴 회화는 40여 점 내로 이들 작품에는 날짜가 정확히 기재가 되지 않아서, 후대 미술사가[3] 그 창작 연도를 추정하고 있다.


[3] 미술사가들이





* 32





보스 그림에 나타나는 목시록[4] 세계관은 중세의 기본 이념이다.

 


[4] 묵시록적





[주5] 38





 알리기에리 단테 단테 알리기에리




[주6] * 42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초상화

→ 한스 홀바인의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초상화>






* 115

 




 나폴레옹은 당시 스페인 왕인 찰스 5[주7]를 협박해 왕위를 자신의 동생[주7] 조제프(Joseph Bonaparte)에게 넘겨주도록 요구했다.

 

[주7] 당시 스페인 왕은 찰스 5가 아니라 페르난도 7(페르디난드 7)’조제프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의 형이다. 본서 126쪽에 나폴레옹의 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로 적혀 있다.




* 117

 




 1820년부터 1870년까지 프랑스는 정치적 격변기에 접어들면서, 이 혼란스런 정치적 격변이 사회와 문화는 물론, 민중들의 삶에 직격타가 된다. 샤를 10세의 왕정복고에 이어, 7월 혁명과 루이 필리프의 입헌 왕정 체제에서 다시 2월 혁명과 제2공화정의 설립, 다시 나폴레옹[주8]의 쿠데타에 이은 폭정과 전쟁, 프로이센의 지도 아래 통일독일을 이룩하려는 비스마르크와 벌인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생략)




* 122





 검열은 도미에의 창작 활동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나폴레옹 1[주8]의 지지자들이 일명 촛불 끄는 덮개를 고안했는데, 이것은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의 빛과 지식의 불을 끈다라는 의미였다.



[주8] 1820년부터 1870년에 살았던 나폴레옹은 우리가 아는 나폴레옹 1(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몰락한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1821년에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19세기 중반에 활동한 나폴레옹의 명칭은 나폴레옹 3또는 루이 보나파르트.





* 참고문헌

 




박홍규, 오노레 도미에, 소나무, 1987[8]



[주9] 출판연도는 2000이다1987년은 소나무 출판사가 처음 등록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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