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의 마지막 작품은 『레소스』(Rhesus)다. 대다수 학자는 『레소스』가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개정판] 에우리피데스, 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 (도서 출판 숲, 2021년)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 (도서 출판 숲, 2015년)
레소스는 트라케(트라키아)의 왕이다. 호메로스(Homeros)의 서사시 《일리아스》 10권에 잠깐 언급되는 인물이다. 에우리피데스, 혹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비극 작가는 엑스트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를 썼다. 레소스는 트로이아(트로이) 군을 지원하기 위해 직접 병력을 이끌고 오지만, 트로이아의 총사령관 헥토르(Hektor)는 레소스의 도움을 거절한다. 트라케 군은 무방비 상태로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그리스 군의 오디세우스(Odysseus)와 디오메데스(Diomedes)의 기습을 받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레소스는 불귀객이 된다. 한순간의 방심은 재앙을 부른다. 레소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여 명예를 얻으려고 했으나 ‘불명예스러운 죽음(『레소스』 753행,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 582쪽)’을 맞이한다.
故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레소스』에 ‘오역’이 있다. 코로스(coros, 트로이아의 파수병)의 합창 대사인 531행의 ‘독수리자리’다. 쪽수는 572쪽이다.
* 『레소스』 528~536행
누가 다음 보초 근무지? 누가 나를 교대해 주지?
초저녁 별자리들은 지고, 플레이아데스의
일곱 별들이 하늘에 떴구나.
독수리자리가 중천을 날고 있구나.
일어들 나게. 지체하지 말고.
침상을 떠나 초소로 가야지!
자네들은 달빛도 보이지 않나?
새벽일세. 새벽이 가까웠네.
저 별을 보면 새벽이 다가옴을 알 수 있네.
인용문에 해당되는 그리스어 원문은 찾아보지 않았다. 천 교수가 참고한 그리스어 텍스트를 찾기 힘들며 나는 그리스어를 모른다. 의역일 수 있지만, 영역본을 참고했다. 구글을 이용하면 『레소스』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들의 영역본 전문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참고한 영역본은 George Theodoridis의 『레소스』 (2010년)다.
Ey! Who’s on guard now? Who’s relieving me?
It’s time. The early constellations are diving and the Pleiades are high!
Look there! The Eagle is flying mid-sky!
Come on, get up! Get yourselves out of your beds!
It’s time for your guard duty!
Look at that Moon! See how it shines?
It’s almost Dawn! Morning almost! Come on!
Look! There’s one of those stars that appear before Dawn!
플레이아데스성단(Pleiades star cluster)은 맨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은 빛을 내는 일곱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성단 주변에 황소자리, 오리온자리, 마차부자리가 있다. 이 세 별자리는 겨울에 볼 수 있다. 그러나 독수리자리는 여름 밤하늘이 되면 은하수 위를 날아다닌다. 플레이아데스성단과 독수리자리가 밤하늘에 같이 있을 수 없다. 독수리자리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Zeus)를 상징하는 독수리에서 유래되었다. 제우스는 독수리로 변신해 곱상한 소년 가니메데스(Ganymede)를 납치하기도 한다.
*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 《100개의 별, 우주를 말하다: 불가해한 우주의 실체, 인류의 열망에 대하여》 (갈매나무, 2021년)
독수리자리가 여름 별자리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독수리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 ‘알타이르(Altair)’는 우리말로 ‘견우성’이라고 부른다. 일 년에 단 한 번, 7월 7일 칠석에 만난다는 ‘견우와 직녀’의 그 견우다.
독수리자리가 아니라 ‘독수리’로 번역해야 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자주 나오는 장면 중 하나가 ‘새 점(占)을 치는 일’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새의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했다고 한다. 『레소스』의 트로이아 파수꾼은 새를 보면서 시간을 확인하고, 관객들에게 시간적 배경이 ‘밤’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레소스』 546~555행에서 파수꾼은 밤꾀꼬리가 우는 모습을 언급한다.
들어 봐. 제 자식을 죽인 밤꾀꼬리가
시모에이스 강변의 피투성이 둥우리에
앉아 다양한 음색의 목소리로
비탄의 노래를 부르고 있어.
어느새 양떼가 이데산에서 풀을
뜯고 있구나. 목적(피리) 소리가
밤을 뚫고 들려오는군.
잠이 내 눈에 마법을 거는구나.
눈에는 새벽녘 잠이 가장 달콤한 법이니까.
따라서 앞서 언급한 531행과 546~555행은 파수꾼이 밤하늘에 나는 새를 바라보는 모습을 묘사한 대사다.
* 에우리피데스, 김종환 옮김 《레소스》 (지만지드라마, 2022년)
『레소스』의 다른 번역본(그리스어 원전이 아닌 George Theodoridis의 번역본을 포함한 세 권의 영역본을 참고해서 번역했다)에는 ‘독수리’로 되어 있다. 그런데 플레이아데스성단에 대한 주석(68쪽)을 보면 ‘일곱 명의 딸인 플레이아데스가 오리온에 쫓기다가 모두 별자리가 되어 플레이아데스성단을 이루었다’라고 적혀 있다. 성단과 별자리는 다르다. 성단은 별들이 모여서 생긴 것이라면, 별자리(constellation)는 여러 개의 별을 이어서 생긴 형태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국제천문연맹이 공인한 별자리 목록에 ‘플레이아데스 자리’는 없다. 천병희 교수의 고대 그리스 문학 작품 번역본에도 플레이아데스성단을 별자리로 잘못 소개한 주석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