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일글책> 평일 독서 모임 선정 도서는 정지돈의 소설집 인생 연구. 대구 책방 중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아주 따끈따끈한) 정지돈 작가의 신작 소설을 읽고 독서 모임을 진행하는 유일한 책방이 <일글책>이다. 나는 금요일 반을 신청했고, 9일과 23일 금요일 두 번 참석한다. 인생 연구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모임이 두 번 진행되므로 소설을 네 편씩 나누어 읽는다.
















[대구 서점 <일글책> 6월 독서 모임 선정 도서]

* 정지돈 인생 연구(창비, 2023)




어제 토요일 오전에 진행된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이 끝난 후에 인생 연구를 읽기 시작했다. 인생 연구의 첫 번째 소설은 우리의 스크린은 서로를 바라본다. 첫 소설 중반을 읽으면서부터 당혹감이 엄습했다. 도대체 작가가 평범하지 않은 인물의 특이한 삶을 묘사하면서 독자인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



너도 쉽지 않네.” 안젤라가 말했다.


(정지돈, 우리의 스크린은 서로를 바라본다』 중에서, 17쪽)



정 작가의 글도 쉽지 않네.’ 정 작가의 소설을 즐겨 읽지 않은 나는 말했다세 번째 소설 B! D! F! W!는 처음부터 끝까지 난해의 극치를 보여준다정 작가의 글을 처음 읽는 독자라면 B! D! F! W!를 읽는 순간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씨발, 이게 뭐야.

 

(정지돈, , 슈프림중에서, 144)



나뿐만 아니라 인생 연구독서 모임에 참석하기로 한 다른 분들도 B! D! F! W!를 읽는 내내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일글책> 책방지기는 인생 연구독서 모임 발제를 어떻게 내면 좋을지 엄청 고민했다.


처음에는 이상했다. 그런데 다음 소설을 계속 읽어나갈수록 이상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해석하고 생각하기를 멈춘 채 그냥 쭉 읽었다어쩌면 정 작가의 소설에 익숙해지려면 이런 식으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스크린은...의 주인공은 안젤라. 소설 속 화자는 안젤라의 전 연인이다. 그는 안젤라의 괴팍한 행동과 자유분방한 연애 편력(양성애)을 관찰하듯이 서술한다. 그리고 안젤라의 전 남자친구마저 이해하지 못하는 성적 도착증(신체 절단 애호증)도 언급한다안젤라는 평범한 여성이 아니다. 안젤라는 퀴어(queer)’하다현재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가 된 퀴어는 원래 기이한’, ‘이상한을 뜻하는 단어다정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독자는 인생 연구를 읽으면서 익숙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고, 비인간적으로 생각되는존재를 만난다.

















* B. 프레시아도 대항성 선언(포이에시스, 2022)




안젤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철학자가 B. 프레시아도(Paul B. Preciado)라고 말한다(우리의 스크린은..., 30). B. 프레시아도는 스페인 출신의 철학자로 퀴어 FTM 트랜스젠더(여성남성으로 성전환)원래 이름은 베아트리즈 프레시아도였다. 남성 호르몬 요법을 통한 성전환 이후로 폴 베아트리즈 프레시아도로 개명했다작년에 프레시아도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인 대항성 선언(Manifiesto contrasexual)이 번역 출간되었다원서가 2002년에 출간되었으니 20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여전히 성적으로 보수적이고 성소수자들이 살기에 척박한’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 [절판] 주디스 핼버스탬 여성의 남성성(이매진, 2015)

* 주디스 버틀러, 조현준 옮김 젠더 트러블(문학동네, 2008)




잭 핼버스탬(Jack Halberstam, 그도 FTM 트랜스젠더다)이나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처럼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며 퀴어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철학자들처럼 폴 B. 프레시아도는 이분법적 생물학적 성별(남성/여성)과 이성애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그생물학적 남성중심주의의 상징이자 남성의 성적 기관인 음경과 여기에 대조되거나(또는 대항하거나) 음경에 비해 평가절하된 여성의 성적 기관 질이 중심이 되는 섹슈얼리티 모두 거부한다. 그는 성별 이분법을 거부하고, N개의 젠더 모두가 선호하는 섹슈얼리티를 강조하기 위해 항문을 주목한다남자도, 여자도,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닌, 그야말로 생물학적 성별인 섹스(sex)와 사회적으로 정의된 젠더조차도 의미 없는 대항성의 성 기관은 항문이다. 섹스(생식 행위)의 대안은 항문에 삽입하는 자위 기구 딜도대항성은 늘 변하며 유동적이다. 그래서 자유롭다.


B. 프레시아도를 좋아하는 안젤라는 대항성으로 살아가고 싶은 존재. 화자는 안젤라를 그녀라고 지칭하지만, 안젤라는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다. 화자는 안젤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우리의 스크린은..., 14).’ 



























* 김멜라 제 꿈 꾸세요(문학동네, 2022)


* 전하영, 김멜라, 김지영, 김혜진, 박서련, 서이제, 한정현 2021 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2021)


* 사드, 성귀수 옮김 사드 전집 2: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워크룸프레스, 2018)

 

* [절판] 사드 소돔 120(고도, 2000)




B. 프레시아도는 대항성 선언딜도 그 자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에 영감을 준 작가가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이 적대하는 사드(Sade)실제로 사드는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딜도로 성욕을 충족했고, 감옥에서 쓴 소설 소돔 120 원고를 지키기 위해 딜도 안에 숨겼다고 한다여담으로, 김멜라의 소설집 제 꿈 꾸세요에 수록된 나뭇잎에 마르고(12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대니라는 이름의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학교 수업에 가기 전에 소돔 120을 세 페이지씩 읽는다(제 꿈 꾸세요, 71).


이 글이 거의 완성되고 있을 때, 갑자기 인생 연구독서 모임을 위한 발제가 될만한 질문이 생각났다. 당신 곁에 있는 가족, 친구, 친한 이웃이 익숙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고, 비인간적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며 그다음에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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