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화학 - 10억 분의 1미터에서 찾은 현대 과학의 신세계
장홍제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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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어린 시절에 반복하다시피 읽은 책이 교양 과학 만화책 시리즈. 그 시리즈 첫 번째 책의 주제가 인체였다. 그런데 책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인체의 신비였던가? 출판사 이름은 기억난다. 삼성당이다. 무자비하게 흘러간 시간이 책 제목을 지웠다. 그 책에 임시로 제목을 붙인다면 인체 탐험이다. 그렇게 제목을 정한 이유는 SF에 나올 법한 줄거리 때문이다. <인체 탐험>의 등장인물은 흰 수염의 의학 박사와 그를 따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다. 의학 박사는 발명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다. 비행기와 흡사한 잠수함을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버튼 하나 누르면 잠수함 크기를 줄일 수 있다. 박사와 아이들은 확 줄어든 잠수함을 타고 어떤 남자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세 사람이 탄 잠수함은 남자 몸속 구석구석 누빈다. 남자는 자신의 몸속에 아주 작은 잠수함이 들어갔는지 모른 채 살아있는 교본이 된다. 박사는 몸속에 거주하는 세포와 세균이 하는 일과 몸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리 현상의 원인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준다. 잠수함이 남자의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이 가관인데, 남자가 재채기하는 순간 콧구멍을 통해 탈출한다. 만화가는 이 황당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는지 콧구멍으로 빠져나온 잠수함을 콧물과 코딱지가 잔뜩 묻혀 있는 상태로 묘사했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지만, 박사와 아이들은 모험심과 앎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그들은 다시 잠수함을 타고 그 남자의 몸속으로 들어가 과학 수업을 재개한다. 

 

지금까지 내가 요약한 <인체 탐험> 줄거리는 100% 정확하지 않다. <인체 탐험> 줄거리는 나의 뇌가 조그마한 기억 조각들을 열심히 주워 모아 제멋대로 편집하고 각색한 것이다. 사람이 잠수함을 타고 몸 내부 곳곳을 여행하는 설정은 현실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이 이상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아져 버린 잠수함을 나노 기술로 만들 수 있다나노(nano)’는 소인(小人)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만화에 묘사된 소인들이 탄 잠수함은 인간의 몸에 들어가 병균을 퇴치하는 초미세 의료용 나노로봇으로 실현되었다


나노는 말 그대로 아주 작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노 세계는 아주 작은 세계를 의미하게 된다. 아주 작은 세계를 이해하려면 제일 먼저 원자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노 기술은 최소 1mm부터 최대 1,000nm(나노미터) 크기의 원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일어난 화학 반응을 응용하는 기술이다화학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저자가 쓴 나노 화학나노 기술의 현주소와 미래를 과학 지식과 곁들어서 풀어 쓴 책이다책 제목에 화학이 들어가 있지만, 나노 기술의 학문적 배경에 물리학도 포함된다원자나 분자 같은 미시 물질을 다루는 나노 기술에 양자역학이 적용된다원자는 모든 물질의 기본단위다. 물리학과 화학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실체를 밝혀내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학문이다.


우리는 나노 세계를 눈으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없다. 그래서 아주 작은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 우리 삶에 얼마나 이로운지 알지 못한다나노 세계의 물질, 즉 나노입자는 작을수록 좋다. 왜냐하면 나노입자 크기가 작아지면 물질의 특성 자체가 달라지고, 같은 나노입자들끼리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화학 반응 속도가 빨라진다나노 물질들끼리 조합하면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응용한 나노 기술은 실생활에 유용한 생성물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나노 기술의 실현 전망이 그렇게 밝은 것만은 아니다. 현실적인 과제들이 산적하다. 나노 물질의 잠재적인 독성을 검증해야 한다. 그래핀(graphene)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나노 물질이다. ‘꿈의 신소재라는 수식어가 붙여질 정도로 디스플레이 · 반도체 · 태양전지 · 자동차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된다. 그러나 언론의 장밋빛 전망과 달리 그래핀이 완전한 상용화가 이루어지려면 다소 시간이 걸린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생소하고 어려운 과학 용어나 이론을 과학 비전공자들을 위해 좀 더 쉽게 설명하는 전문가다. 나노 화학의 저자는 화학 전문 커뮤니케이터다. 저자는 자신의 본업을 살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과학 상식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특히 화학 반응의 경로와 촉매를 등산으로 비유해서 설명한 대목(280~282)은 압권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갖추어야 할 기본 자질은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반드시 있어야 할 자질은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책에 부연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 내용들이 있다. 책 내용에 주석으로 단 내 의견 역시 사실과 다르거나 틀릴 수 있다.



* 24~25

 

 오늘날 모든 전자기기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전기(electricity)는 전자의 흐름으로 설명된다. 지금은 화석연료나 태양광, 지열, 조력 등 온갖 원천에서 전기를 얻으려고 발전이 이루어지지만, 전기의 확인과 관찰은 폭풍우 속에서 하늘에 연을 띄워 벼락에서 전기를 포집했다는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에 의해 처음 이뤄진다. [1]

 


[1] 프랭클린보다 훨씬 먼저 전기의 성질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과학자는 윌리엄 길버트(William Gilbert, 1544~1603). 그는 자석을 이용한 실험을 진행하면서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자석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1600년에 발표된 길버트의 저서 자석에 관하여에서 호박(琥珀)으로 마찰을 일으켜서 생기는 정전기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길버트는 정전기가 호박에서 나온 힘이라 생각했고, 호박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electricity’로 명명했다. 자석에 관하여자석 이야기(서해문집, 1995년)’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으나 절판되었다.




* 163


 현재 통용되는 원자의 모형을 만들어내고 양자역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던 에르빈 슈뢰딩거[2][생략]

 


[2] 양자역학을 언급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사실 닐스 보어(Niels Bohr)코펜하겐 해석에서 드러난 양자역학의 허점을 비판하기 위해 슈뢰딩거가 고안한 사고실험이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 다르게 죽어 있고 동시에 살아 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양자역학에서만 가능한 중첩 상태를 설명하기 위한 사고실험으로 알려지게 된다고양이 한 마리가 유명해지는 바람에 생전에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은 슈뢰딩거는 오늘날 양자역학 발전에 기여한 과학자로도 평가받는다. 슈뢰딩거 본인은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이겠지만.




* 181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남아 있으나[3]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냈던 프랜시스 크릭은 사실 이보다 더 거대한 발견을 이룩했다.

 


[3] 노벨상 수상과 관련한 약간의 논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논란이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X선을 이용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의 연구 자료를 참고한 왓슨과 크릭이 이중나선 구조 연구 결과를 정리한 논문을 먼저 발표하는 바람에 그녀의 업적이 묻혀버렸다. 브렌다 매독스의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양문, 2004, 절판) 하워드 마르켈의 생명의 비밀: 차별과 욕망에 파묻힌 진실(늘봄, 2023)은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생애와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로서의 업적을 소개한 책이다.




* 190

 

 영화 속 장면처럼 뜨거운 열을 폭발시켜 모든 것을 태우는 광열 치료나 피라냐 떼 같은 라디칼을 풀어 주위의 모든 걸 먹어버리도록 만드는[4] 광역학 치료가 탄생했다.



[4] 공포영화에 묘사된 피라냐는 자신 주변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공격하고, 날카로운 이빨로 뜯어먹는 난폭한 물고기다. 하지만 피라냐의 공격성과 먹성이 사실과 다르게 과장되어 있다. 피라냐는 죽은 물고기의 살도 먹는다. 피라냐 떼에 갑자기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들이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다. (참고문헌: 매트 브라운, 개가 보는 세상이 흑백이라고?: 동물 상식 바로잡기, 동녘, 2023, 피라냐가 사람을 물어뜯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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