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rus의 주석이 달린 《장미의 이름》 #2
중세인들의 목욕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은 베네딕트회 수도사인 멜크의 아드소가 쓴 수기(手記)를 바탕으로 쓰였다. 에코는 ‘당연히, 이것은 수기이다’라는 제사(題詞)를 썼다. 서문에 등장한 화자(움베르토 에코)는 아드소가 실존 인물임을 확인한다. 하지만 아드소는 소설을 위해 에코가 만든 허구적인 인물이다. 아드소의 수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문헌이다.
* 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옮김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2009)
아드소는 바스커빌의 윌리엄과 함께 장서관이 있는 수도원에서 7일 동안 머무른다. 그는 7일 동안 일어난 일들을 베네딕트 수도회의 전례 시간에 맞추어 썼다. 아드소가 기록한 ‘제2일 3시과(오전 9시 전후)’ 편의 묘미는 ‘웃음의 기능’을 놓고 윌리엄과 호르헤가 설전하는 장면이다. 호르헤는 웃음을 허용하면 신의 절대적인 권위가 흔들리게 되고, 결국 신의 뜻을 부인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신을 믿는 인간이라면 웃음과 우스갯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반면에 윌리엄은 웃음이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는 웃음을 ‘목욕’으로 비유하면서 웃음의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한다.
“나는 웃음이라는 것은 좋은 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웃음은 목욕과 같은 것이지요. 웃음은 사람의 기분을 바꾸어 주고, 육체에 낀 안개를 걷어 줍니다.”
(《장미의 이름: 디 에센셜 1, 양장 합본》 227쪽)
호르헤도 목욕의 순기능을 인정한다. 목욕은 흐트러진 기분을 올바르게 세워 준다. 그러면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비탄을 사라지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목욕을 권장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웃음을 부정적으로 보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믿는 대다수 사람은 중세인들이 고대 로마인들의 목욕법을 잊어버린 채 살아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즉 중세인들은 목욕하지 않았다고 단정한다.
* 캐서린 애쉔버그 《시시콜콜 목욕의 역사》 (써네스트, 2019)
* [절판] 캐서린 애셴버그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 (예지, 2010)
목욕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 많지 않다. ‘목욕’과 ‘역사’, 이 두 개의 단어가 포함된 제목이 붙은 책이 단 두 권뿐이다. 《시시콜콜 목욕의 역사》와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가 있는데, 이 두 권의 책을 쓴 저자는 같은 사람이다. 두 권의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끊임없이 변화해온 목욕과 청결의 정의를 보여준다. 그리고 시대별로 유행했던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목욕법도 소개한다.
윌리엄과 호르헤는 목욕을 좋게 보고 있지만, 실제로 성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씻지 않았다. 성 히에로니무스(St. Jerome, 성 제롬)는 목욕하면 신에 관한 관심을 잃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성인들의 가르침을 물려받은 기독교인들은 ‘더러움’을 성스러움의 징표로 여겼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St. Francis of Assisi)는 때를 찬양했다고 한다. 우리는 피부에 묻은 더러운 때를 없애기 위해 씻고 있지만, 중세 성인들은 때를 소중하게 여겨서 일부러 씻지 않았다.
* 자크 르 고프, 니콜라스 트뤼옹 공저 《중세 몸의 역사》 (이카루스미디어, 2009)
* [품절] 쥘 미슐레, 정진국 옮김 《마녀: 마녀의 탄생, 마녀축제, 마녀재판과 화형의 역사 또는 슬픈 추방자들을 위한 자유의 이야기》 (봄아필, 2012)
이렇듯 중세가 경건한 기독교적 삶을 강조하는 시대이다 보니 중세를 오해하는 우리는 중세인들은 목욕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Jules Michelet)는 《마녀》에서 중세 천 년 동안 목욕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썼다. 하지만 중세사 연구의 권위자인 자크 르 고프(Jacques Le Goff)는 미슐레의 주장에 반박한다. 중세인들은 목욕했다. 중세에도 공중목욕탕이 있었다. 십자군 전쟁이 끝난 뒤에 고국으로 돌아온 전사들은 튀르키예식 목욕을 전파하여 발전시켰다. 그래서 중세의 공중목욕탕에는 한증탕이 따로 설치되어 있다. 중세인들은 씻기 전에 먼저 몸에 증기를 쐬었고, 나무로 만든 욕조에 몸을 담갔다. 중세의 공중목욕탕은 혼탕이었는데 중세의 남자와 여자는 벌거벗은 몸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혼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당연히 공중목욕탕 안에서 매춘이 성행했다.
호르헤는 기독교적 교리에 부합하지 않은 것을 이교도적이라고 규정하면서 배격한다. 그런 보수적인 수도사가 목욕을 긍정적인 행위로 보고 있는 점은 의외다. 호르헤는 신의 권위를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았던 성인들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런데 호르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아퀴나스가 웃음을 권장했다는 사실을. 아퀴나스의 스승은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다. 그 역시 웃음의 기능을 긍정적으로 인식한 신학자다. 장서관에 보관된 모든 책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호르헤가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만약에 윌리엄이 웃음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 마그누스와 아퀴나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호르헤를 논박했다면, 호르헤는 자신이 너무 늙어서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얼렁뚱땅 넘어갔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 무너질 수 있는 다른 견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무시한다. 이런 얍삽한 인간을 실제로 만나서 대화하면 답이 안 나온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알
* 《시시콜콜 목욕의 역사》 중에서, 58쪽
사람들은 흑사병이 쥐를 통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들어왔고 쥐의 몸에 기생하는 벼룩 때문에 인간에게까지 전염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최근에 일부 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흑사병은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고[주] 한다.
[주] 흑사병, 즉 페스트의 가장 주된 감염 경로는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에 기생한 벼룩이다. 이 벼룩에게 물린 사람은 패혈증성 페스트에 걸린다. 폐렴형 페스트는 페스트 환자가 배출한 침과 콧물이 호흡기에 전파될 때 발생한다. 따라서 좀 더 정확하게 써야 한다. 폐렴형 페스트는 페트스 환자의 몸에서 나온 비말(침방울과 콧물)이 공기를 통해 전염되면서 일어나는 질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