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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위한 의료윤리학의 질문들
김준혁 지음 / 반비 / 2022년 4월
평점 :
평점
4점 ★★★★ A-
도덕과 윤리가 없으면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가 흔들린다. 도덕과 윤리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지켜야 하는 행동규범이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도덕과 윤리의 정의다. 라틴어 ‘mores’는 도덕과 풍습을 뜻한다. 도덕적 또는 윤리적 삶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공동체의 규율이나 관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도덕과 윤리는 우리 귀에 대고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Nietzsche)는 윤리가 ‘풍습을 지키기 위한 복종’과 같다고 봤다. 그는 자신의 책 《아침놀》에서 가장 윤리적인 사람이야말로 공동체의 풍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은 개인의 자유와 비판 정신을 말살하는 도덕과 윤리에 따지지 못한다.
의료윤리학자 김준혁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따지는 윤리의 역할을 따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여러 번 선다. 이때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고민한다. 김준혁은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 윤리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윤리를 가지고 의학이 우리 사회에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 따진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삶의 변화를 앞당겼을 뿐만 아니라 감염병에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지켜야 할 도덕적 관습을 낳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만든 가장 대표적인 도덕적 관습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다. 정부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식당 및 카페의 영업시간과 모임 인원을 제한했고,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시행했다. 코로나19 확진자는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비난을 한 몸에 받는다.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은 확진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과도하게 비난한다. 확진되지 않은 사람(사실 이 표현에 문제점이 있다)은 확진자들을 비도덕적 인간으로 간주한다.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았거나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 돌아다녀서 확진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백신을 안 맞았는데도 확진 판정을 받지 않았고, 게다가 감기도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건강하다고 확신하며 건강하지 못한 확진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니체는 《아침놀》 서문에서 도덕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철회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김준혁은 개인과 인간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건강의 정의와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따지기 위해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을 썼다. K-방역으로 알려진 신속항원검사는 한때 전 세계가 주목했다. 하지만 저자는 K-방역의 장점으로 주목받은 빠른 진단 검사에 지나치게 신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한다. 모든 의학적 검사 결과는 완벽하지 않다. 양성과 음성으로 판정하는 신속항원검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는데도 확진자로 진단받을 수 있고(위양성), 감염되었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올 수 있다(위음성). 위음성으로 의심되는 결과를 받은 확진자는 스스로 건강하다는 확신 속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을 ‘확진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하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확진되지 않은’이라는 표현에 결점이 있다. 우리는 건강의 정의를 질병의 부재와 동일시한다. 그러므로 확진자가 아니더라도, 몸이 아프지 않으면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착각한다.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은 질병이 생각보다 많다.
건강 상태가 안 좋으면 그 원인을 개인의 생활 습관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개인의 부주의한 건강 관리와 생활 방식을 지적하는 것을 ‘질병의 개인적 책임’ 담론이라 한다. 개인적 책임 담론은 건강의 정의를 개인의 능력과 결부시키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의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질병의 원인을 환자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게 되면 사람을 병들게 하는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저자는 개인과 사회가 건강 문제에 함께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의학과 의료 제도가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실외 마스크 의무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조치에 기분이 들뜨기 쉬운 지금 시기에 읽어야 할 책이다. 감염병 유행은 돌고 돈다. 그러면 팬데믹 시대의 문제점도 다시 나온다. 확진자를 향한 차별과 배제는 일상적인 일이 된다.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고, 몸에 이상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확진자를 비난하면서 ‘선량하고 건강한 차별주의자’가 된다. 팬데믹이 길어지면 장애인과 노인의 돌봄 사각지대는 더 커진다. 지구에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매개체로 밝혀진 야생동물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생각하게 만드는 윤리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네가 건강해지려면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명령하는 윤리와 헤어지자. 건강한 윤리는 자신을 따르라면서 우리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과 자연, 동물이 건강해질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재차 묻는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알
* 30쪽
보통 나이가 들수록 몸 여기저기의 기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청년과 노인을 비교하면 청년보다 노인의 신체 상태가 일반적으로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므로[주] 노인은 무조건 건강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경험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 나이 든 사람은 많다.
[주] ‘그러므로’라는 표현을 삭제하면 문맥이 자연스러워진다.
*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102, 104쪽에 있는 25번과 26번 주의 출처는 ‘Judith Butler, Precarious Life: The Powers of Mourning and Violence(2004)’다. 출처에 원서명만 나와 있는데 주디스 버틀러의 책은 《불확실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양효실 옮김, 경성대학교출판부, 2008)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10년 뒤에 새로운 역자와 출판사를 만나면서 제목이 바뀐 《위태로운 삶: 애도의 힘과 폭력》(윤조원 옮김, 필로소픽, 2018)으로 재출간되었다. 104쪽의 인용문은 《위태로운 삶》 서문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