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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쓴 괴물들 - 호러와 사변소설을 개척한 여성들
리사 크뢰거.멜라니 R. 앤더슨 지음, 안현주 옮김 / 구픽 / 2021년 8월
평점 :
평점
3.5점 ★★★☆ B+
미국의 작가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별명은 ‘호러 킹(horror king)’이다. 그가 쓴 공포소설들은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완성도도 높다. 킹이 태어나기 전에 활동한 ‘호러 킹’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몬터규 로즈 제임스(Montague Rhodes James),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 앨저넌 블랙우드(Algernon Blackwood), 리처드 매드슨(Richard Matheson) 등이다. 그렇다면 킹에 견줄만한 ‘호러 퀸(horror queen)’이 있을까? 있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다. 시대별로 대표하는 여성 공포 소설 작가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호러 퀸’이라 부르고 싶다.
고딕 문학 연구자인 두 명의 저자가 합심하여 쓴 《여자가 쓴 괴물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호러 퀸들을 소개한 논픽션이다. 공포 문학은 남성 작가들이 독점한 장르가 아니다. 남성 중심 사회에 저항한 여성 작가들이 마음껏 뛰놀던 ‘블랙 오션(black ocean)’이다. 남성 중심 사회 속의 여성은 주변부에 머물렀으며 창작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에게 글쓰기는 시간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지적 활동이 아니다. 가사 노동으로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하며 여성의 존재를 투명하게 만드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힘껏 낼 수 있게 해준다. 글을 쓰면 세상을 새롭게 해석할 힘을 얻는다. 글쓴이가 이 힘을 얻으면 자기주장을 할 수 있게 되며 세상에 반기를 들 수 있다. 글 쓰는 여성은 이성을 대표하는 유일한 인간이라고 확신한 남성들이 만들어낸 관습에 도전했다. 보수적인 남성들은 글 쓰는 여자의 등장을 반기지 않았고, 그들을 광인 또는 괴물과 같은 존재로 취급했다. 여성 작가는 남성 중심 세상을 조롱하면서 파괴할 수 있는 괴물과 유령들을 창조했다. 공포 소설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주제로 한 문학 장르다. 대다수 사람은 공포 소설이 오컬트에 심취한 사람들이 즐겨 쓰는 장르로 이해하거나 심심풀이용으로 읽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공포 소설에 대한 선입견이다. 지금까지 공포 문학이 발전하는 데 기여한 여성 공포소설 작가들의 재능을 잘 모르는 데서 생긴 착각이다.
《여자가 쓴 괴물들》에 소개된 여성 작가 중에는 남성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던 철학자로 알려진 마거릿 캐번디시(Margaret Cavendish)가 있고, 아멜리아 에드워즈(Amelia Edwards)나 마저리 로렌스(Margaery Lawrence)와 같은 여성의 권리나 젠더 평등에 목소리를 높인 페미니스트들도 있다. 19세기를 대표하는 호러 퀸이라 할 수 있는 메리 셸리(Mary Wollstonecraft Shelley)는 여권 신장을 주장한 사상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의 딸이다. 셸리의 대표작 《프랑켄슈타인》은 페미니즘 비평으로 해석 가능한 공포 소설이다. 여성 공포 작가들은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상식과 교양을 넓히는 ‘고전’으로 알려진 작품을 쓴 작가들에 주목한 문학사에서 배제되어 왔다. 《여자가 쓴 괴물들》의 등장은 장르문학을 하대하는 주류 문단과 남성 작가 중심 문학사의 허를 찌르는 도전이다.
이 책에 여성 작가들의 삶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읽어야 할 작품들에 대한 정보도 있다. 역자는 국내에 출간된 공포 소설의 작품명과 출판사 이름을 꼼꼼하게 표기했다. 공포 소설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다. 하지만 국내에 나온 작품임에도 출판 정보가 없는 것도 있다. 두 명의 저자가 엄선한 여성 공포소설 작가들은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호평받을 만한 이야기꾼이다. 그러나 《여자가 쓴 괴물들》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여성 공포소설 작가들이 있다.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이라는 필명으로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문학동네, 2006)를 쓴 카렌 블릭센(Karen Blixen), 《기이한 이야기》(만복당, 2021)의 작가이자 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여한 메이 싱클레어(May Sinclair), 괴담 형식의 공포 소설을 쓴 일본의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등이다. 이 세 사람 역시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여성 공포소설 작가들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호러 퀸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와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인 조이스 캐롤 오츠(Joyce Carol Oates)가 이 책에 짤막하게 소개돼서 아쉽다. 두 사람은 이 책에서 곁다리로 분류되어 있다.
백과사전은 ‘죽지 않은 책(undead book)’이다. 백과사전 편찬자가 죽어도 백과사전에 새로운 정보가 담긴 항목이 계속 추가되기 때문이다. 《여자가 쓴 괴물들》이 ‘여성 공포 소설 작가들에 대한 최고의 백과사전’[주]이라면 새로 발굴되거나 재조명받은 여성 작가들이 추가되어야 한다. 《여자가 쓴 괴물들》 2판이 나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알
* 107쪽: 월터 스코트 → 월터 스콧
29쪽에 ‘월터 스콧’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 168쪽: <밤의 갤러리>, 194쪽: 로드 셜링의 쇼 <나이트 갤러리>
명칭을 하나로 통일해서 써야 한다.
* 170, 172쪽의 ‘무셔운 짚’은 오자가 아니다. ‘무셔운 짚’의 원제는 ‘Horrer Howce’다. ‘Horrer Howce’는 ‘Horror House(무서운 집)’의 철자를 틀리게 쓴 단어다. 역자는 원제의 의미를 살린 제목을 표현하기 위해 ‘무서운 집’이 아닌 ‘무셔운 짚’으로 썼다.
* 303쪽: 『레스타트 왕자와 아틀란티스 왕국』 → 『레스타 왕자와 아틀란티스 왕국』
[주] 책 뒤표지에 있는 문구다. 그런데 ‘백과사전’이라면서 100여 명의 작가 이름과 그들이 쓴 작품 제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색인(찾아보기)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