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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 신화 대사전 ㅣ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히가시 마사오 지음, 전홍식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2월
평점 :
평점
3점 ★★★ B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는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와 함께 미국 공포문학의 대가로 평가받는 작가이다. 러브크래프트의 에세이 《공포문학의 매혹》(Supernatural Horror in Literature, 1927)은 기성 문학에 가려진 공포문학 작품들을 양지로 드러나게 한 글이다. 이 글의 시작을 알린 첫 문장은 공포문학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된다.
* 《공포문학의 매혹》 (홍인수 옮김, 북스피어) 중에서, 9쪽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미지에 대한 공포다.
러브크래프트가 선호한 공포소설은 ‘미지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에는 초자연적인 미지의 존재 앞에서 두려워하고, 정신이 처참히 무너지는 무력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은 꿈도, 희망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 부닥친다. 러브크래프트의 단편소설 『크툴루의 부름』(The Call of Cthulhu, 1928)은 그의 작품 세계관이 드러난 작품이다. 크툴루는 인류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지구에 지배했던 신적 존재이다.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 이외에 다양한 고대의 신들을 묘사했다. 후대의 작가들은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고대의 신들을 모티프로 한 창작물을 썼고, 러브크래트프의 작품 세계관이 반영된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를 완성시켰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이 일찍 소개된 나라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감명받은 일본 작가들이 많았고, 크툴루 신화는 일본의 대중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크툴루 신화 대사전》은 러브크래프트와 크툴루 신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1995년에 처음 발간되었고, 현재까지 개정 5판이 나왔다. 국내에 번역된 《크툴루 신화 대사전》은 2018년에 나온 개정 5판이다.
이 사전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과 크툴루 신화 세계관에 나온 고대의 신들, 등장인물 이름, 지명, 기타 용어들을 소개하고 집대성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준 작가(《공포문학의 매혹》에 언급된 작가들)와 그에게 영향받은 후대의 작가들도 나온다. 이 책의 뒤표지에 ‘크툴루 신화 체계와 러브크래프트 문학에 입문하는 최고의 안내서’라는 문구가 있다. 냉정하게 보자면, 《크툴루 신화 대사전》은 입문용 도서로 적합하지 않다. ‘최고의 안내서’도 아니다.
국내에 생소한 서구권 작가들이 많다. 공포문학에 조예가 깊은 독자가 아니라면 그들의 이름과 작품명이 생소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전 항목의 구성 방식 아쉽다. 러브크래트트의 작품에 등장한 가상 인물과 작품에 언급된 실존 인물을 명확히 구분해서 소개해야 하는데, 가상 인물과 실존 인물이 ‘용어’라는 범주(category)로 분류되어 있다. 스페인의 화가 고야(Goya, 사전 14~15쪽)와 이탈리아의 화가 살바토르 로자(로사, Salvator Rosa, 사전 152쪽)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에 잠깐 언급된 실존인물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용어’에 포함되어 있다. 반면에 소설을 쓴 실존 인물은 ‘작가’라는 범주에 들어있다. 흔히 ‘작가’를 글 쓰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작가의 의미는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다. 사전의 항목 분류가 세밀하지 않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는 국내에 출간된 작품명을 번역본 제목으로 소개했으며 출판사 이름까지 밝혔다. 사전을 보는 독자가 번역본을 읽을 수 있도록 역자가 꼼꼼하게 번역 작업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엄청 많은 사전 항목의 내용(항목이 몇 개인지 세어보지 않았으나 대략 500개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을 한 사람이 전부 옮기다 보면 실수할 수 있고, 오역도 할 수 있다. 정체불명의 이름과 오자가 많이 보인다(사전에 있는 모든 오자와 오류를 정리한 글은 다음에 공개하겠다. 그 글의 제목은 ‘크툴루 신화 오식 대사전’이다). 오류가 많고, 정확성이 떨어지는 사전은 ‘최고의 안내서’라고 할 수 없다.
그래도 《크툴루 신화 대사전》은 ‘최악의 안내서’는 아니다. 사전의 완성도는 높지 않지만, 부록은 읽어볼 만하다.『그 후의 크툴루 신화』는 크툴루 신화의 탄생 배경과 신화 창작에 기여한 작가들의 활동을 보여준다. 『러브크래프트가 있는 일본 문학사』는 러브크래프트가 일본 문학에 영향을 끼친 장면들을 정리한 글이다. 독자는 이 글에서 일본 문학사를 정리한 책에서 보기 힘든 일본 장르 문학의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부록은 러브크래프트와 크툴루 신화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 요긴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내 눈에는 이 사전의 배꼽이 배보다 더 크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