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다. 몸이 안 좋을 땐 교장의 허락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 후,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곤 했다. 이때부터 데카르트는 침대에 누워 사색하는 버릇을 가지게 된다. 20대의 데카르트는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자원입대를 한다. 어느 날 그는 막사 침대에 누워 있다가 바둑판 형태의 무늬가 그려진 천장 위에 달라붙은 파리를 발견한다. 데카르트는 천장에서 움직이는 파리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좌표평면’을 생각한다.
* 김승태 《데카르트가 들려주는 좌표 이야기》 (자음과모음, 2008)
좌표평면은 x축과 y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좌표평면의 가장 큰 특징은 한 점의 위치를 수치로 도출해 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가로축(x축)의 숫자와 세로축(y축)의 숫자만 있으면 점의 위치를 표시할 수 있으며 점이 어디에 있는지 측정할 수도 있다.
* [절판] 《차원이란 무엇인가?》 (아이뉴턴, 2009)
* 《차원의 모든 것》 (아이뉴턴, 2019)
좌표의 개념을 이해하면 ‘차원’의 정의도 이해할 수 있다. 좌표를 고안한 데카르트가 차원을 정의한다면 ‘한 점의 위치를 정하기 위해 필요한 수치의 개수’라고 말할 것이다. 앞서 좌표평면에 있는 점의 위치는 가로축의 숫자와 세로축의 숫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언급했다. 가로축의 숫자, 세로축의 숫자는 한 점을 위치를 정하기 위해 필요한 수치이므로 2개이다. 따라서 좌표평면은 2차원이다. 그렇다면 좌표평면이 아닌 곳에 있는 점은 몇 차원일까? 0차원이다. 왜냐하면 이 점의 위치를 표시할 수 있는 수치가 없기 때문이다. 직선은 1차원이다. 임의의 두 점 사이를 연결하면 직선이 된다. 두 점 사이의 거리만 알면 직선 위에 있는 점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3차원이다. 기준점으로부터 ‘가로’, ‘세로’, ‘높이’ 방향을 나타내는 세 가지 수치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말로 풀어쓴 차원의 정의는 단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림을 이용해 차원의 정의를 설명하는 방식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그러므로 도판과 일러스트가 가득한 일본의 과학 잡지 <뉴턴(Newton)>을 추천한다. 매달 나오는 잡지를 구독하지 않아도 <뉴턴>을 접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정리한 <뉴턴 하이라이트(Newton Highlight)>는 잡지 정기 구독자가 아닌 독자들을 위한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이다.
필자가 데카르트의 좌표 개념을 이용해 차원의 정의를 설명한 내용은 2009년에 나온 《차원이란 무엇인가?》와 작년에 나온 《차원의 모든 것》을 참고하여 요약한 것이다. 《차원이란 무엇인가?》 인쇄본은 현재 절판되었다. 그런데 전자책(e-Book)은 판매 중이며 지금도 구매할 수 있다. <뉴턴 하이라이트> 편집자들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 《차원의 모든 것》은 《차원이란 무엇인가》의 개정판이다. 그래서 두 권의 책 초반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처음에 차원의 정의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려진 일러스트도 똑같다. <뉴턴 하이라이트> 편집 방식은 ‘복사하기, 붙여 넣기(Ctrl+C, Ctrl+V)’ 수준에 가깝다.
일러스트가 많다고 해서 <뉴턴 하이라이트>를 과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초보 독자들에게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해선 된다. 어떤 과학자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4차원 공간(3차원 공간과 시간을 합친 개념)을 넘어선 고차원 공간이 우주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론이 바로 브레인 이론(brane theory)과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이다. 이 두 개의 이론은 과학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이론으로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실험으로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증을 중요하게 여기는 과학자들은 브레인 이론과 초끈 이론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차원이란 무엇인가》와 《차원의 모든 것》에 브레인 이론과 초끈 이론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난해한 내용을 독자들이 알기 쉽도록 압축한 편집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이론물리학에 생소한 독자들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뉴턴 하이라이트>를 수집하는 마니아가 아니라면 절판된 《차원이란 무엇인가》를 굳이 살 필요가 없다. 《차원이란 무엇인가》는 2009년에 나온 책이라서 당연히 2010년대에 발견된 과학적 성과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2009년은 중력파와 힉스 입자가 발견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지금 시점으로 보면 《차원이란 무엇인가》는 오래된 책으로 느껴지지만(이 책이 나온 지 십 년이 지났으니 그렇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이 책에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특별한 내용’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리사 랜들(Lisa Randall)의 인터뷰 내용이다. 그녀는 네 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중의 하나인 중력이 약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휘어진 여분 차원 모델’을 주장했다. 리사 랜들의 ‘휘어진 여분 차원 모델’은 《차원의 모든 것》에도 언급된다. 그러나 리사 랜들의 인터뷰 내용은 《차원의 모든 것》에 수록되지 않았다.
<뉴턴 하이라이트>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책이라서 그런지 ‘직소 퍼즐(jigsow puzzle)’이 ‘지그소 퍼즐’로 표기된 점이 눈길이 간다. 《차원이란 무엇인가》와 《차원의 모든 것》을 보면서 발견한 사실인데, ‘초끈 이론’에서 말하는 초끈 길이의 수치가 다르다. 그런데 초끈 이론을 설명한 책이나 인터넷에 있는 자료를 살펴보면 초끈 길이가 제각각 다르게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끈은 관측되지 않았기 때문에(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아주 미세해서 현재의 측정 기술로는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 초끈 길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