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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하는 세계 - 과학과 예술의 충돌이 빚어낸 전혀 새로운 현대예술사
아서 밀러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서로 다른 두 가지 분야가 만나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시대지만, 과학과 예술은 ‘가깝고도 먼’ 관계이다. 대부분 사람은 과학과 예술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이에게 과학과 예술 모두 어려운 분야가 되기도 한다. 예술은 미학을 중시한다면, 과학은 객관적인 정보를 선호한다. 이 두 가지 분야의 뚜렷한 특성을 생각하면 협업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소재와 기법을 찾으려는 예술가들(나중에 언급하지만, 이들은 자신을 예술가와 과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은 도전에 힘입어 과학과 예술의 적극적인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
《충돌하는 세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형성된 과학과 예술의 협업 관계를 되짚어보는 책이다. 이 관계는 20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아인슈타인(Einstein)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4차원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4차원은 3차원 공간과 시간(1차원)이 결합한 ‘시공간’이다. 아인슈타인과 동시대에 살고 있던 피카소(Picasso)는 재현을 추구하는 회화에 거스르는 그림을 공개했다. 그는 회화의 기본인 원근법을 무시하고, 다양한 시점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 피카소의 등장은 입체주의(cubism)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당시 예술가들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상대성이론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4차원 시공간에 흥미를 느꼈다. 특히 피카소는 4차원 기하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가 과학 지식을 활용해서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아비뇽의 여인들>이다.
그동안 미술사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시대 순으로 기술하는 통사(通史) 방식으로 다뤄왔다. 이렇다 보니 난해한 현대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 현대미술의 동향을 모르는 사람들은 과학과 예술의 협업 관계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러므로 《충돌하는 세계》는 미술사에 관심 있는 대중의 빈틈을 채워주는 책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대중은 과학과 예술이 함께 작업하면서 현대미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사실을 모르면서 살아왔을까?
대중과 현대미술 간의 괴리감을 무관심한 대중 탓으로 돌릴 수 없다. 과학과 미술의 협업 자체를 아예 모르거나 새로운 시도를 애써 외면하는 미술 전문가들도 책임이 있다. 《충돌하는 세계》는 과학과 예술의 협업 관계를 통해 나온 성과들만 조명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가들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예술가들의 작업 방식과 예술관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고충까지 보여준다. 저자가 만난 예술가들은 대체로 과학과 예술을 구분하지 않으며 자신을 과학자도, 예술가도 아닌 ‘연구원’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과학, 기술, 예술을 하나로 통합하려고 한다. 저자는 과학의 영향을 받은 예술, 또는 예술에 영향을 받은 과학을 ‘아트사이(artsci)’라고 부른다. 아트사이는 기존의 과학과 예술이 만나면서 탄생한 ‘제3의 문화’이다. 그러나 ‘순수미술’을 지향하는 미술 전문가들은 ‘아트사이’의 등장을 의심한다. 이들도 사람인지라 새로운 예술의 등장에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주류 미술의 영향력이 사그라지지 이상 ‘아트사이’의 창작품이 대중과 소통하는 전시장은 부족하다. 그래서 아트사이 종사자들은 직접 갤러리를 만들어 작품 홍보에 주력하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과학과 예술은 우리가 학습하면서, 당연하게 인식하는 사물과 현상에 새로운 눈길을 던지는 동시에 독특한 창작 활동을 통해서 이전에 없는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낸다. 과학과 예술이 서로 만나 부딪히는 경험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이 세상은 다양한 생각과 경험들이 들끓는 거대한 용광로가 될 것이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과학, 남의 것으로 여겼던 예술을 나만의 것으로 느끼고 싶지 않은가. 그러려면 지금 과학과 예술이 ‘충돌하는 세계’를 만나 보시라.
※ Trivia
The critic Lucy Pippard noticed that one of the five sculptures was the “most crowed and most business element; it lacks the absurdity of the other four and is the least individually beguiling.
비평가 루시 피파드는 다섯 개의 조각 중 하나에 대해 “가장 번잡하고 실용적인 작품이며 다른 네 개의 조각처럼 부조리한 부분이 없는데, 개별적인 매력은 가장 떨어진다”고 평했다. (68쪽)
책에 ‘루시 피파드’라는 미술비평가 이름이 두 차례 나온다(68쪽, 314쪽). 원서 본문에 ‘Lucy Pippard’라는 이름이 나오며 참고문헌에 ‘Lucy Pippard’가 쓴 글의 출처가 있다.
그러나 구글에 ‘Lucy Pippard’를 입력하여 검색하면 ‘Lucy Lippard’와 관련된 정보만 나온다. 즉 ‘Lucy Pippard’와 관련된 정보가 없다는 셈이다. 루시 리파드(Lucy Lippard)는 미술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실존 인물이다. ‘Lucy Pippard’는 저자가 잘못 쓴 이름, 아니면 원서의 오자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