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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물리학
로렌스 크라우스 지음, 곽영직 옮김 / 승산 / 2020년 3월
평점 :
엉뚱한 발언이나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의 실소를 자아내는 사람을 우리는 ‘4차원 인간’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우리는 3차원 세계에 살고 있다. 차원(dimension)은 공간의 성질을 나타내는 수를 뜻하는 용어이다. 공간의 차원은 그 공간 속에 있는 점의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 0차원은 오직 하나의 점만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0차원 속의 점은 이동할 수 없다. 1차원은 선의 형태로 되어 있다. 점은 이 한 개의 선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n차원’의 ‘n’ 은 공간 속에 있는 점이 이동할 수 있는 방향의 개수다. 2차원은 면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2차원은 x축과 y축으로만 구성된 좌표이다. 2차원 속의 점은 x축과 y축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다. 3차원에 z축이 있다. 따라서 3차원은 선(1차원), 면(2차원)이 포함된 입체 형태이다. 그래서 3차원을 ‘3D’라고 불린다. 우리는 가로(x축), 세로(y축), 높이(z축)를 이용해 3D 형체를 표현하거나 만들 수 있다.
선과 면, 공간을 넘어선 새로운 세계는 오래전부터 과학자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과학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수학이나 물리학 법칙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인슈타인(Einstein)은 3차원에 시간을 추가한 4차원 공간을 상상했다. 시간과 공간이 합쳐져 있어서 ‘시공’ 또는 ‘시공간’이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영원히 고정된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의 정의를 뒤흔드는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제시했다.
4차원 속에 있는 우주의 힘은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이다. 2016년에 중력파의 존재가 밝혀졌다. 물리학자들은 이 네 가지 힘을 단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명 ‘궁극의 이론’을 찾고 싶어 한다. ‘궁극의 이론’ 연구는 아인슈타인도 해결하지 못한 물리학계의 최대 난제다. ‘궁극의 이론’이 가능하게 하려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고차원 우주를 생각해야 한다. 물리학자들은 4차원 너머의 세계를 ‘잉여 차원’ 또는 ‘여분 차원’이라고 말한다. 고차원 우주의 실체를 이론적으로 증명한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11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 사람들의 주장이 맞으면 우리를 둘러싼 공간은 3차원이라는 믿음이 깨지게 된다. 정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차원이 어딘가에 또 있을까.
《거울 속의 물리학》은 숨어 있는 ‘또 다른 차원’을 밝혀내려는 과학자들의 여정을 보여준다. 이 책에 고차원 우주 연구와 관련된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과 M이론, 브레인[Brane, 뇌를 뜻하는 ‘Brain’이 아니다. ‘Brane’은 막(膜)을 뜻하는 ‘Membrane’의 조어이다] 이론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다만 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이 책이 어려울 수 있다. 책의 두 번째 추천사를 쓴 정광훈 박사는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에게 《거울 속의 물리학》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읽다가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우면 책을 덮으면 된다. 그러나 주눅들 필요 없다. 독자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쉬운 내용만 골라 읽을 수 있다. 《거울 속의 물리학》은 ‘체리 피킹(Cherry picking: 상품 가치가 있는 체리만 골라 따는 것처럼 어떤 대상에서 좋은 것만 고르는 행위를 뜻하는 관용어)’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7장(‘평평한 세상에서 피카소로’)과 12장(‘다른 차원에서 온 외계인’)은 과학 비전공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7장과 12장의 주제는 작가와 예술가들이 생각해낸 다양한 고차원 세계이다. 작가와 예술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고차원 세계는 흥미진진하다. 7장과 12장에 차원을 주제로 한 문학 작품들이 소개되는데, 여기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국내에 알려진 작품은 에드윈 애벗(Edwin Abbott)의 《플랫랜드》와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의 《타임머신》, 그리고 로버트 하인라인(Robert Heinlein)의 단편소설 『그리고 그는 구부러진 집을 지었다』(And He Built a Crooked House) [주] 등이 있다. 《거울 속의 물리학》을 읽다가 책을 덮은 독자에게 방금 소개한 세 편의 작품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거울 속의 물리학》의 저자 로렌스 크라우스(Lawrence Krauss)는 또 다른 세상을 찾으려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이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상상력의 중요성을 예찬한다. 하지만 그는 지나친 상상을 경계한다. 초끈 이론과 M이론, 브레인 이론은 실험으로 검증이 불가능하다. 사실 세 가지 이론 모두 ‘이론’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도 많다. 저자는 초끈 이론의 한계를 강조하면서 초끈 이론의 매력(복잡한 우주를 단순하게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푹 빠진 과학자들의 태도를 비판한다. 초끈 이론을 비판한다고 해서 저자를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보수적인 학자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는 회의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 고차원 우주론을 설명한다. 저자는 고차원 우주론 연구가 신비주의 또는 종교의 영역으로 변질되는 것을 염려한다. 그는 고차원 우주론을 불신하는 입장을 드러내지만, 고차원 우주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노력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물리학자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은 과학이 모든 현상의 수수께끼를 완전히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이 등장함으로써 그의 예언은 틀렸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 숙제의 답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론’으로 나올 수 있어도 과학자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호기심과 탐구 정신을 이어나갈 것이다.
[주] 국내 번역명은 ‘그리고 그는 비뚤어진 집을 지었다’이며, 《하인라인 판타지》(시공사)에 수록되어 있다.